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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사의 영예감

통일인터뷰.jpeg

 

22년 전 이맘때 조선노동당 국제비서 황장엽 선생이 북한정권에 등을 돌려 남한으로 망명해왔다. 1997년 2월 그는 공식적인 일본출장을 마치고 귀국 차 중국을 경유하던 중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요청을 하였다. 평양의 위협 공갈 속에 그 곳에서 36일, 필리핀에서 32일 보냈으며 4월 20일 서울에 왔다.

분단이후 최고위급의 탈북민인 황장엽 선생은 2007년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를 설립하여 북한의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인민의 자유를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탈북자들의 역량을 양성하는 일에 노년의 열정과 시간을 바쳤다. 생전에 황장엽 선생은 “탈북민 모두가 성공적으로 남한에 정착하는 것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들에게 떳떳한 모습” 이라고 늘 강조하였다. 또한 그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며 우리를 배척한 노동당간부들에 대한 당당한 복수” 라고 역설하였다. 3만 탈북민들이 새겨들어야 할 귀중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10월 필자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주최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있은 황장엽 7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행사진행을 맡은 본 단체 최복화 총무를 처음 알았다. 이후 7개월이 지났고 얼마 전 경기도 모처에서 그녀를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74년 1월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2남 1녀 중 둘째였다. 부친은 무산군 상업관리소에서 근무하였고 모친은 무산여자고등중학교 교사였다. 나는 1993년에 무산광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연상임산사업소에서 일을 하였다.

내가 4년간 대학생활 기간에 부친은 ‘과오’(남조선 노래를 들은 것)를 범하여 청진에 있는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되었고 우리 가족은 무산군 연상리로 추방되었다. 하여 연상임산사업소에 배치를 받아 거기서 일하게 되었다.

 

- 어떤 일을 하였는가?

포시공(모래를 살포하는 사람), 검축공(벌목수량계산원)으로 일했다. 불을 피워 흙을 녹여서 하는 모래살포는 겨울에 하는데 굳이 비교하면 동절기에 도로에서 얼음 때문에 차가 미끄러지니 염산을 뿌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모래를 뿌리지 않으면 수천 톤의 나무더미가 미끄러져 대형사고가 난다. 임산사업소에서 노동자 1인당 하루 벌목량은 1.3입방인데 직경 20cm, 길이 10m이상 나무 3~4대 정도이다.

 

- 임산 일을 자세히 말해 달라.

무산군 연상임산사업소 아래 10개의 작업소가 있다. 각 작업소 안에는 4~5개의 작업반이 있고 작업반원 10명 중 2~3명은 여성이다. 벌목 일은 주로 겨울에 진행되며 전체 물량의 80~90%를 생산한다. 봄에는 벌목한 자리에 어린 나무모를 심고 여름에는 홍수대비, 가을에는 겨울철벌목 준비에 돌입한다. 무산군에만 해도 아무리 벌목을 해도 끝이 없을 정도의 무성한 자연림이 많다.

 

 

- 선전대 예술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부친이 2년간의 교화생활을 마침과 동시에 우리 가족도 연상임산사업소에서 퇴소하였다. 이후 나는 무산광산연합기업소 지하분광산 선전대(예술공연단)에서 대원(성악가수)으로 근무하였다. 물론 친인척의 힘을 빌려서 취업한 자리이다. 나는 유년시절 음악에 소질이 있어 고등중학교 때 음악소조에서 활동하였다. 함경북도에서 진행하는 각종 청소년노래경연 대회에 출연하여 시상을 받은 적도 다수 있었다.

 

- 탈북동기와 시기는...

군대에서 제대한 오빠가 생활난 때문에 중국밀수 및 탈북브로커를 하였다. 불행히도 김정일의 “인신매매꾼(브로커)에게도 혁명의 총소리를 울려라!”는 방침에 걸렸다. 1년 7개월간의 예심을 받고 1999년 9월에 공개사형 되었다.

4월에는 부친이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오빠로 인해 정치범가족이 되었다. 외삼촌이 “너라도 중국에 가서 새롭게 살라!”며 강제로 떠밀었다. 단 2~3시간의 고민 끝에 탈북결심을 마쳤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26살 때이다.

 

- 중국에는 얼마나 체류했나?

처음으로 간 곳이 길림성 화룡시였다. 이후 료녕성 북전시에서 1년 반 체류하며 두부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나는 중국생활 1년 만에 신문보고 글을 쓰게 되었다. 이후 신문광고를 보고 판진시로 옮겨 ‘청룡금형원’에서 일을 했다.

여기서 지금의 남편(한국남자)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처녀였고 남편도 총각이었으니 자연히 결혼을 약속하였다. 남편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동시에 위조중국인 신분증을 가진 나는 국제결혼비자를 받아 2007년 2월에 입국했다.

 

- 탈북여성을 며느리로 맞은 시부모님은...

남편형제가 남자 셋, 여자 셋인데 80세 넘으신 시부모님께 유일한 친손자를 안겨준 며느리가 바로 나다. 그러니 시부모님의 기쁨과 만족은 말로다 표현 못한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서는 나를 ‘무산댁’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식구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때마다 이북의 고향에 계시는 친정엄마 생각에 목이 멘다. 주변에서 우리 부부를 ‘통일부부’라고 부르는데 정말 행복하다.

 

- 정부의 탈북자 인정은 어떻게 받았는가?

신혼시절 집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남편이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에서 고향친구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하였고 이후 거기서 먼저 온 친구를 알게 되었다. “하나원 몇기 인가?”하는 친구의 말에 “하나원이 뭐냐? 나는 한국남자 만나 시집왔다!”고 했더니 “당장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라”고 하더라. 하여 지역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 설명했고 40일 뒤 탈북자 확인을 마쳤다. 2007년 9월이었다.

 

- 중국어 통역 전문가이다.

남한에 와서 처음부터 전문 중국어통역을 하고 싶었다. 입국 1개월 뒤 ‘HSK중국어어학능력시험’을 보았다. 이후 서울에 있는 ‘현대통번역어학원’(6개월)과 ‘세종어학원’(3개월)을 다녔다. 2008년에 시작하여 모두 2회 시험, 1회 특별시험을 보았고 세 번째 만인 2010년에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급하는 ‘관광통역안내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분야에서 외대 졸업생들도 따기 힘들어하는 자격증이다.

 

- 마음이 뿌듯했겠다.

중국어통역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역경찰서에서 탈북민자매결연(탈북민 가족과 남한사람 가족 간의 친분관계를 맺는 일)이 있었다. 나와 자매결연을 한 모 기업체 사장님은 중국과 단기무역을 하였는데 마침 통역원이 필요했다.

사장님의 요청으로 10일간 그 회사 통역 일을 해주었다. 만족한 사장님이 수고했다며 사례비로 220만을 봉투에 넣어주었다. 내가 남한에서 자격증을 갖고 당당하게 일해 받은 첫 임금이었으니 그때가 제일 뿌듯했다.

 

- 탈북민 1호 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사다.

처음에는 담당형사의 소개로 지역경찰서에서 몇 번 통역을 하였다. 이후 자격증을 갖고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을 하게 되었다. 일종의 프리랜서 격으로 일하는데 한 달에 적으면 1~2회 많으면 5~6회도 한다.

통역비는 시간당 3만원, 교통비 2만 4천원이며 보통 1회에 3~5시간 통역을 한다. 경찰서에서 일하는 임시통역원은 대부분 귀화한 중국 사람이다. 전국에 탈북민출신 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사로는 내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 영예감이 있겠다.

물론이다. 경기지방경찰청에 출입할 때는 낯익은 의경들이 나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수사경찰관들 속에서 ‘탈북민출신 중국어 수사(搜査) 통역사 최복화!’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당당하게 경찰에 출입하여 경찰관들도 어려워하는 통역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도록 영예로운 마음이 든다. 그럴수록 늘 겸손하고 성실히 살아야 한다고 자상한 남편이 귀띔을 해준다.

 

- 실향민(이북 오도민)들을 자주 만나던데...

프리랜서로 북한예술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가끔 강원도로 이동공연을 가는데 그때면 실향민 어르신들을 쉽게 만난다. 고향에서 왔다고 내 손을 꼭 잡고 우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모두 연로하신 실향민들이 귀향의 꿈을 한으로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는데 다소 안타깝다. 세월이 무심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무쪼록 실향민 어르신들이 건강하셔서 통일이 되는 날 고향으로 함께 가셨으면 좋겠다.

 

- 탈북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자본주의국가에는 다양한 직업, 특히 여자들이 쉽게 돈 버는 직업도 많다. 글쎄, 그런 직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취업을 하든 개인사업을 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10년 이상 해야 한다. 그 속에 있는 고생과 시련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다보면 주변에서 많이 공감을 한다. 그것이 곧 경력이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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