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실향민은 탈북민의 ‘통일선배’ 함께 손잡고 나가야”

48819E7A-DD8E-434F-8AF0-488FB30092F5.jpeg

 

지난 4월, 탈북민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에게서 초대장을 받았다. 내용은 자신이 수상자로 선정된 ‘2018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식에 초대한다는 것이다. 제정 21년의 이 상을 탈북민이 받기는 처음이다.

필자가 안 박사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2009년 가을, 사단법인 한정협(한국기독교탈북민 정착지원협의회)의 월례조찬 기도회에서다. 귀 단체의 초청으로 신앙 간증을 마친 안찬일 박사가 내 명함을 받으며 “아! 림일 작가님이군요. 책 많이 쓰고 신문칼럼 잘 쓰는 거 압니다” 하며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소 놀란 것은 초면이면서 나이, 학력, 탈북연도 등에서 한참 아래인 나를 깍듯이 존경하여 불러 준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후 각종 세미나, 기자회견, 워크숍, 현장견학 등 여러 탈북민 관련 행사에서 눈을 마주친다.

서울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수상식에는 정호준 ‘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정대철 전 국회의원 등 내외빈 200여 명이 참석했다. 안 박사의 열렬한 지지자 등 탈북민 30여 명이 동참했다. 얼마 전 실향민들이 자주 찾는 충무로 <필동면옥>에서 안찬일 박사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54년 7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부모님이 모두 노동당원인 그야말로 수령 절대충성의 모범적 가문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5남매 중 장남이다. 1971년 고등중학교를 우수성적으로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3개월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은 부대는 2군단 3사단 민경대대(DMZ 수색대대)이다. 21살 때 조선노동당에 입당하였고 9년간을 당과 수령을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였다.

 

- 귀순 동기와 경로를 말해 달라.

인민군 제대 무렵 나는 군관(장교)이 되고 싶어 ‘김일성군사정치대학’을 가려고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상급 장교(정치부장)는 사회의 일반대학으로 보내려고 했다. 아마도 어떤 후보자에게 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에 반발하여 1979년 7월 휴전선을 넘어 남한으로 귀순했다. 내가 DMZ 귀순병사 원조이다.

- 그 시대 귀순자 대우가 궁금하다.

소가 말할 때다.(웃음) 우선 30평대 아파트 1채(당시 평균 매매가 3천만 원 정도)를 무상으로 주었다. 정착금으로는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액수의 돈과 선물(상품)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본인이 원하는 대기업에 취직되었던 것이다. 나는 귀순자특혜로 이명박 사장이 이끄는 현대건설주식회사에 대졸자격으로 취업했다. 내가 온 해에는 귀순자라고 2명뿐이었니 정말로 영웅대접 받은 때이다.

 

- 자세히 말해 달라.

그때는 북에서 내려온 사람을 ‘귀순용사’라고 불리였다. 서울은 기본이고 전국을 순회하며 ‘시민환영대회’에 참석하였다. 각 도, 광역시까지 10여 개의 자치단체를 순회하며 국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인사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용감한 영웅용사의 손을 한 번 잡아보자!”며 난리법석이었다. 한 지역에 가면 보통 1톤 트럭 한 대 분량의 가전제품이나 살림도구(가구)를 구일할 수 있는 돈과 상품권을 받기도 했으니 꿈같은 시절이었다.

 

- 프라이드가 대단했겠다.

정말이지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그때는 남한이 어려운 시절이었고 많은 국민들이 부러운 눈길로 귀순자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남한 처녀들이 결혼하고 싶은 상대 3~4번째로 ‘귀순용사’를 선호하기도 했겠는가. 당시 정부의 귀순자 조사기간은 대략 1년 정도였다. 나는 사회로 배출된 후 3개월 만에 결혼을 하였다. 그만큼 귀순자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라고 보면 정확하다.

- 전문 공부를 많이 하였던데.

귀순하여 와서 지금까지 서울에 살고 있다. 고려대학교 학사 4년, 석사 3년, 합의 7년간 정치 외교학을 공부했다. 이후 건국대학교 대학원 7년을 마쳤다. 모두 14년간의 대학공부를 하였으니 결코 적게 한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인민군대시절에 죽도록 하기 싫어했던 공부를 여기 남한에 와서 죽으라고 하였다.

 

- 최초의 탈북 1호 박사이다.

남한에 온지 18년 만인 1997년에 귀순자(탈북민) 1호 박사가 되었다. 휴전이후 최초의 탈북민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례여서 당시 언론에도 요란히 소개되었다. 지금은 대략 40여 명의 탈북민 출신 박사가 있는 걸로 안다.

다소 웃기는 것은 요즘 탈북민들은 저마다 자기가 1호 박사라고 한다. 북한학1호, 여성1호, 정치학1호, 부부1호, 약사1호, 공무원1호, 한의사1호 등 뭐가 되었다하면 탈북민출신 1호라고 하니 말이다. 분명 1호 원조는 나다.

 

- 세계북한연구센터는 어떤 단체인가.

내가 소장(대표)인 사단법인 세계북한연구센터는 2010년 7월 강남구 역삼동에서 개소했고 현재는 종로구 관철동에 있다. 본 단체는 탈북민출신 북한전문가들과 외국의 저명한 북한연구학자들로 구성된 북한체제연구 싱크탱크이다. 현재 탈북민단체 70~80개가 있는데 이중 ‘세계’문자가 붙은 것은 우리 단체가 유일한다.

 

-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직속 자문기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기관은 대통령에게 국내외 통일여론수렴, 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도출, 범민족적 통일의지와 역량결집, 기타 평화통일정책 등을 제안하고 있다.

5년 전부터 ‘통일천사’(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공동상임의장이다. 이 단체는 전국적 및 글로벌통일운동단체이다. 국내 통일행사는 물론 해마다 평균 5~6회씩 미주,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각 지역을 다니며 통일강연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이 성황리에 열렸다. 이 역사적인 행사 환송식에서 피날레 곡으로 “원드림원코리아”가 불리어졌는데 4년 전 통일천사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통일염원 노래이다. 이 음악이 나가는 순간 TV시청률이 40%까지 육박하였고 전 세계로 송출되었으니 수십 억 명이 보고 들었다.

 

-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를 소개해 달라.

2014년 초 조선일보 측에서 탈북청년학생들을 위주로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고 두 손을 들어 환영하였다. 국내 유수의 신문사와 손을 잡고 통일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좋은 일을 하자는데 말이다.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 원장직무를 내가 맡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하여 해마다 상반기 하반기로 나뉘어 두 기씩 교육을 진행한다. 한 기는 3개월간, 매주 2시간 씩 대부분 인문사회 교육이며 현재 9기 교육 중이다.

 

- 구체적으로 말해 주었으면 한다.

한 기에 수강생은 대략 40여 명, 20~30대 청년학생들이다. 수강생 90%가 탈북청년이고 통일에 관심이 많은 남한청년도 간혹 있다. 강사진으로는 전 현직 고위공직자 및 기업인, 사회단체장, 교수, 정치인 등 우리 사회에서 내 노라 하는 쟁쟁한 사람들이다. 교육장소는 서울 광화문 TV조선 건물 1층 라온홀이다.

 

- 최근 ‘자유민주상’을 수상했는데 어떤 상인가.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실현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금연 정일형 박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로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운영을 통해 평생을 여성권익성장을 위해 노력한 이태영 박사 부부의 활동과 높은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 지난 1997년에 제정된 상이다. 매년 1회 민주평화부문과 사회봉사부문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상금은 500만원.

 

- 수상소감 한 마디 해준다면.

탈북민 최초의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자로 된 것에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탈북1호 박사’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써왔는데 이제는 ‘탈북1호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자’ 타이틀을 써야겠다.(웃음)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주는 상인 줄 안다. 이번에 나를 시작으로 우리 3만 탈북민들 속에서 2호, 3호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자가 계속 배출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시상식 주최 측에서도 보람이 있을 것이다.

 

- 탈북민과 오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통일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북한사회주의 배신자가 아니라 미래자본주의 선구자들이다. 북한도 언젠가 시장경제사회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시장경제화 더 나아가 민주화, 자유화까지 이룩해야 할 사람들이다. 이북오도민(실향민)은 우리 3만 탈북민이 존경하고 받들어야 할 ‘통일선배’다. 용감한 그들과 굳게 손잡고 역사적인 통일대업 사명을 반드시 수행자는 것을 호소한다.

?

윤숙자(개성) 한식재단 이사장에 취임
  1.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임예진 예사랑노인주야간보호센터 대표 -

    "대한민국의 고마움에 봉사로 보답해요" 북한당국은 “사회주의 제도에서 60청춘, 90환갑을 누리는 공화국 인민들” 이라고 선전한다. 참고로 그 ‘위대한 수령’ 김일성은 82세, 김정일은 69세에 사망했다. 당국이 정치적으로 애써 선전...
    Read More
  2.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박정순 늘푸른상담협회 대표 -

    탈북민들이 말하는 ‘우리 어머니!’ 내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을 거느리고 / 귀밑머리 어느덧 희여졌건만 / 지금도 아이적 목소리로 때없이 찾는 / 어머니 어머니가 내게 있어라. // 기쁠 때도 어머니 괴로울 때도 어머니 / 반기여도 꾸짖어도 달려...
    Read More
  3.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송철남 쌍용자동차 시흥목감영업소 과장 -

    ‘금수산태양궁전’에 바친 인민의 피땀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북한의 건국자 김일성이 급사했다. 원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 평양에서 김일성은 5천년 민족사에서 가장 애국적이며 세계와 인류사의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런 위인도 죽으니 ...
    Read More
  4.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임영선 이북9도민정착위원장 -

    ‘이북5도민’과 ‘이북9도민’ 이름이 맞다 남한 사회에는 3만 탈북민을 지칭하는 이름이 ‘귀순자’ ‘자유민’ ‘새터민’ ‘통일인’ ‘하나인’ 등 10여 개도 남아 있다. 이에 대...
    Read More
  5.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한용수 서울지하철공사 과장 -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북했다” 북한의 2천만 인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간부든, 노동자든, 군인이든, 학생이든, 주부든 똑같이 수령사상 학습 및 정치 조직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매주 각자 소속 조직에서 하는 생활...
    Read More
  6.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임강진 전 조선인민군 포병연대장 -

    “말해주리 병사의 고향과 인민 사랑을” “병사가 인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풍요한 들판과 마을에 물어보라/ 그러면 말해주리 농장을 도와 가꿔준 이삭들이/ 등에 업혀 물 건너간 유치원 아이들이...” 1980년대 많이 불린 북한가요 &l...
    Read More
  7.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유정은 의정부은혜하나교회 담임목사 -

    북한주민들이 평소 타는 철도열차를 말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간혹 전용기도 타지만 선대수령들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해외방문에 주로 열차를 이용했다. 김일성은 1984년 봄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하여 소련(현 러시아) ...
    Read More
  8.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박명호 탈북1호 선주 겸 잠수부 -

    "이삿짐까지 배에 싣고 탈북한 가족" 3년간의 한국전쟁 휴전(1953년 7월) 이후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탈북(북한영토에서 벗어나 남한영토로 들어오는 것)이다. 탈남(탈북의 반대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탈북이 훨씬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
    Read More
  9.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김화순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대의원 -

    "어머니 조국, 대한민국에 고맙습니다" 북한은 3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선거(남한의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번에 당선된 대의원은 687명.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당선자 명단에 없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선거 역사상 ...
    Read More
  10.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전철우 (주)고향에프에스 대표이사

    “고향에 가면 서울음식 이야기 하겠다”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서 눈길을 끈 것 중의 하나가 ‘옥류관 냉면’이었다. 평양의 초대형 냉면전문점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통일각서 만든 냉면이 38선을 넘어 남측지역 ...
    Read More
  11.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

    "김정은을 배신한 나는 탈북민 태영호다" 지난 2017년 12월 어느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인권포럼과 아시아인권의원연맹의 주최로 <2017 올해의 인권상> 시상식이 있었다. 그 영광의 수상자는 탈북외교관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
    Read More
  12.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김영순 정치범생존자모임 대표 -

    "나는 김정일 부인 성혜림의 친구였다"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특정기관에서 신분조사를 받을 때 “당신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놀랍지만 거의 모든 탈북민들이 “인권이 뭡니까?&...
    Read More
  13.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정 남 (주)글로브 대표이사 -

    "남한에는 분명 근로의 대가가 있다" 북한에서는 모든 고교졸업생, 인민군 제대군인의 직장배치를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남한의 도·시·군청에 해당) 노동행정과에서 취급한다. 또한 대학졸업생, 인민군 제대군관(장교)은 도&mid...
    Read More
  14.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 -

    "남북의 정상이 자주 만나다 보면..." 2018년 9월 18~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지난 2000년 6월 시작하여 남북정상이 만나 회담하기는 통상 5번째이고 문재인 정권에서는 3번째이다. 그만큼 남북의 평화유지가 중차대한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
    Read More
  15.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차경숙 통일교육전문강사-

    “나는 ‘혁명의 수도’ 평양의 인민반장이었다”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서 볼 때 북한은 신비로운 사회가 분명하다. 수령인 최고지도자의 지시 한마디에 2천만 주민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민·관·군 할 것 없이, 평양에...
    Read More
  16.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한유진 남북러브스토리아 대표-

    “남북커플의 결혼이 진짜 통일이다” 2018년 여름, 남한 사회에 탈북민이 더 이상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니다. 탈북민들이 일상에서 일반 국민들과 어울려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모습이 TV나 신문, 라디오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
    Read More
  17.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정광일 노체인 대표 -

    "북한인권은 인류 양심의 문제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동남아시아 최남단에 위치한 여러 섬으로 이뤄진 도시국가, 면적 697㎢, 인구 570여만 명)에서 미합중국(USA)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간의 역사적인 정상(최고지도자) 회담이 진행됐다...
    Read More
  18.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최수경 6·25국군포로가족회 대표 -

    국군포로는 조국 대한민국의 아들들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인민군이 군사분계선인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기습 남침함으로써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3년 1개월간 진행된 동족비극의 상잔에서 수백만이 넘는 사상자, 20만...
    Read More
  19.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김인철 지원인쇄출판사 대표이사-

    탈북민 1호 인쇄기업인이 되기까지 지난 4월 27일 군사분계선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있은 <2018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탈북민사회 일부는 다소 희망으로 부풀었다. 북한이 과감하게 핵 폐기를 실행하고 남한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국...
    Read More
  20.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실향민은 탈북민의 ‘통일선배’ 함께 손잡고 나가야” 지난 4월, 탈북민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에게서 초대장을 받았다. 내용은 자신이 수상자로 선정된 ‘2018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식...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