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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1호 인쇄기업인이 되기까지

통일인터뷰.jpeg

 

 

지난 4월 27일 군사분계선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있은 <2018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탈북민사회 일부는 다소 희망으로 부풀었다. 북한이 과감하게 핵 폐기를 실행하고 남한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국가경제건설에 집중한다면 가난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생활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3만 탈북민에게 두고 온 북한은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이고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이 사는 정든 곳이다. 하루빨리 고향에서 어려운 경제사정이 회복되어 가난에 찌든 그들의 식의주생활이 보다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은 늘 변함이 없다.

지금처럼 불법적으로 중국을 통해 비싼 수수료를 감한하면서 고향에 보내는 가족부양 송금도 언젠가 남한에서 북한으로 직접 보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금 더 큰 희망이 있다면 가족서신거래와 이산가족상봉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남북의 정상이 “우리 그냥 통일합시다!”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많은 탈북민들이 자유통일이 되면 떳떳한 마음과 성공한 모습으로 귀향하려고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 탈북민사회 1호 출판인쇄 기업인으로 활동 중인 김인철 지원인쇄출판사 대표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72년 11월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OO공장 지배인이었기에 다소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1989년 OO외국어학원, 94년 OO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무역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면서 중국 사람들과 밀수교류를 하게 되었다.

바깥세상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또 물건을 교환하며 몰래 느끼게 된 것은 “중국 사람들은 풍요로운 사회에서 유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구나.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갇혀진 속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 언제 탈북을 하였는가?

고향을 등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폐쇄적 북한체제의 특성상 나로 인해 남겨진 가족에게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말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것이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려는 욕망이 있지 않은가? 2010년 6월 중국으로 밀입국하였고 심양, 쿤밍, 태국을 거쳐 북한을 떠난 지 36일 만에 서울에 왔고 2011년 1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 이후 어떠한 일을 하였나?

내가 남한사회에 첫 걸음을 뗀 나이는 39세이다. 북한에서 대학졸업생이라는 고학력은 차치하고 남한에서 이 나이 때는 한창 일하거나 혹은 은퇴를 걱정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디에 머리를 내밀어도 취직이 안 되더라.

그래서 자동차부품 제조현장 등을 전전하며 노가다(일당제 노동)를 하였다. 그렇게 2년 남짓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차라리 그럴 바에는 선진국에 가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 독일로 가게 되었다.

 

- 자세히 말해 달라.

2013년 12월 서울 발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일의 이민자 허가제도는 대단히 까다롭다. 일단 정부가 발급한 ‘노동허가증’이 없기에 5년 동안 어떠한 일도 못한다. 4년 뒤 9개월간 언어학습 및 시험을 보고 취직을 시켜준다. 5년 동안 최소한의 생계비(식비, 숙박비 정도)는 국가에서 지원을 해준다.

 

- 한 때 탈북민 사회 해외진출 붐이 있었다.

대략 2007년부터 탈북민 사회에서 요란한 해외진출 풍조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불법 해외 도피’나 마찬가지이다. 나 같은 고학력자도 남한에서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더 할 나위 있겠는가.

또한 탈북민 사회에서 입소문으로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면 현지국가에서 돈도 많이 주고 큰 집도 제공해주며 월급도 한국보다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귀맛 좋은 소리’가 자자했다. 결국은 그러한 환경이 ‘탈남붐’을 만들었다.

 

- 탈남의 이유를 뭐라고 보나?

우선 남한에서 ‘2등 국민’ 취급을 받기 싫다는 것이다. 솔직한 말로 남한 사람들이 탈북민들을 ‘조선족’(중국에서 태어나 중국국적을 갖고 임시로 남한에 일하러 왔거나 귀화한 동포들)보다 못하게 보는 따가운 시선도 없지 않아 있다.

탈북민들이 목숨까지 걸고 꿈과 희망을 찾아서 남한으로 왔는데 막상 와보니 자신들이 가진 기능이나 능력은 전혀 쓸 데가 없다. 북한에서 배웠던 것은 거의 불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로인한 상실감은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이다.

 

- 해외체류 탈북자 실태는 어떠한가?

탈북민들의 탈남 형식은 해당나라 여행 비자를 받고 출국한 뒤 현지에 눌러앉아 “나는 북한에서 왔다!”는 방식이다. 탈남자는 대략 3000~4000명으로 추정한다. 영국 런던과 캐나다 토론토에만 각각 1000명 이상의 탈북자가 살고 있는 것으로 본다. 탈북민 10명 중 1명은 탈남 목적의 제3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셈이다. 2010년부터 한국정부가 세계 각국과 탈북자지문정보를 공유하기에 탈남이 주춤해졌다.

 

- 독일에서 언제 돌아왔는가?

나는 그렇더라도 우리 아이만큼은 ‘2등 국민’으로 취급받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독일에서 얼마 안 있어 아기가 태어났다. 시민권자 등록이 전혀 안 되었고 나 또한 5년이 지나야 겨우 일을 할 수 있었으니 앞길이 막막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워 못 살겠더라. 언어와 행동, 생활풍습 등 어느 하나 편하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해외에서 잠시 살아봤는데 그래도 한국만큼 탈북민을 잘 대우해주는 나라도 없음을 알았고 2014년 3월 귀국했다.

 

- 이후 무엇을 하였나?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석사공부를 하였다. 그러던 중 함께 공부를 하던 실향민 2세출신의 인쇄기업인 사장님을 알게 되었다. 그 분 아래서 1년 남짓 일을 하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2015년 12월 ‘지원인쇄출판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물론 대출을 받아서 하였다.

 

- 회사를 소개해 달라.

주식회사 ‘지원인쇄출판사’는 탈북민 1호 출판인쇄 기업이다. 다가 올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예비사회적기업(통일형 제2016-4호)으로 기획, 디자인편집, 인쇄 등 다양한 공정으로 이루어졌다. 직원은 모두 6명 남한사람 반, 탈북민 반이다.

2016년 9월 ‘인쇄사신고필증’을 시작으로 ‘출판사신고확인증’을 거쳐 2017년 1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행하는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획득하였고 조달청장이 발급 허가하는 ‘경쟁입찰참가자격등록증’을 취득하였다.

 

- 김 사장의 회사경영 철학은?

가장 이상적인 회사는 사장과 직원이 일심동체가 되어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회사의 경쟁력과 질적 수준을 더 한층 높이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30년 이상의 베테랑기업과 손잡고 기술기능 전수 및 생산혁신을 강화하고 있다. 언젠가 꼭 오고야 말 통일시대는 물론 남북협력 분야의 인쇄 및 출판을 담당하는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 어려운 점이 뭔가?

남한에는 여성기업, 장애인기업 등이 있다. 이런 기업들에 정부의 우선구매제도가 법제적으로 잘 되어 있다. 거기에 비하면 통일형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냥 ‘구매할 수 있다’는 애매 모모한 법령으로 되어있다.

정부에서 탈북민 정착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탈북민 기업을 사회적 기업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탈북민상품 우선구매제도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말로만 통일, 정착 등 하지 말고 실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폈으면 한다.

 

- 탈북민의 한계는 뭐라고 보나?

남한에서의 기업경영은 무엇보다 학연, 지연, 인연 등이 중요하다. 내 경우를 봐도 북한에서 배운 것은 남한에서 전혀 쓸모가 없고, 내가 아는 고향사람은 고작 10여 명, 남한에 지인은 전혀 없으니 정말 힘들다.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지금까지 왔다. 아직도 남한사회에서는 탈북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열려있지 않다. 그러한 풍경은 통일대한민국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 계획이나 할 말이 있다면...

작년 한 해 5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였다. 부족하고 미숙하지만 앞만 보고 열심히 뛰어 이룩한 작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함께 해준 직원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3~4년 안에 주식회사 ‘지원인쇄출판사’를 2배로 키우려고 한다.

언제인가 반드시 오는 한반도 평화통일이라고 확신한다. 그 날이 오면 평양에 ‘김인철문화출판사’를 설립하여 남북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와 소식을 나누는 구심점이 되어 통일대한민국의 영광과 번영에 다소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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