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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는 조국 대한민국의 아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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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인민군이 군사분계선인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기습 남침함으로써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3년 1개월간 진행된 동족비극의 상잔에서 수백만이 넘는 사상자, 20만의 전쟁미망인, 10만의 전쟁고아, 1천만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탈북민인 필자가 평양에서 받은 6·25전쟁 교육은 “해방 후 지하자원이 풍부한 이북지역을 강탈하려고 호심탐탐 기회를 노리던 리승만 괴뢰도당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군과 함께 38선 위로 침략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사상학습 목적의 교육은 노동당에서 만든 ‘계급교양강연제강’으로 2천만 인민들의 머릿속에 강제적으로 침투된다. 해방 후 5년간 권력 맛을 톡톡히 들인 김일성이 통일한반도의 첫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으로 도발한 6·25전쟁(한국전쟁)의 내막을 엉뚱하게 날조하여 인민들을 감쪽같이 기만하는 북한정권이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68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6회 남짓 되는 시간이다. 비극적인 역사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최수경 6·25국군포로가족회 대표를 서울의 모처에서 만났다.

 

- 고향과 이력을 소개해준다면...

1964년 3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김정은의 조모 김정숙의 고향이다. 형제는 2남 2녀 중 장녀이다. 1980년 회령여자고등중학교를, 1983년 회령고등중공업전문학교 피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7년까지 회령시편의봉사관리소 고급양복점 재봉사로 일했으며 이후 결혼을 하였고 주부로 생활하였다.

 

- 아버지가 국군포로인가?

그렇다. 이름은 최학연, 1928년 9월 3일 생인데 고향이 전라남도 강진군 서산리이다. 23살이던 1950년 6·25전쟁이 터졌고 국군에 입대하였다. 그해 10월 인민군에 포로가 되어 북한에 강제로 끌려왔다. 1953년 8월 경 ‘143호 정령’이 발표되었는데 내용은 “김일성 원수님의 사랑과 노동당의 결정에 의해 국군포로들은 오늘부터 공화국공민이 되었으며 그동안 거처하던 포로수용소는 해체한다”는 것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아버지는 그동안 당국의 직업배치로 여러 탄광, 광산으로 떠돌다가 1959년부터 회령탄광기계공장에서 일을 하였으며 오랫동안 앓던 기관지천식으로 1997년에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의 농민이었는데 토대(출신성분)가 안 좋아 추방되었던 사람이며 두 분이 회령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 형제들은 무엇을 했나?

아버지가 국군포로출신이니 당연히 북한에서는 성분이 나쁜 계급이다. 나를 제외한 3남매 모두 탄광에 배치 받아 노동자로 일을 하였다. 그래도 아버지가 나만은 꼭 공부해서 탄광일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아버지가 용접기술자였는데 개인금고를 간부들에게 만들어주며 나의 전문학교 입학에 힘썼던 것이다.

 

- 유년시절 회령의 생활수준은...

내 기억으로 1978년부터 회령의 식량배급이 들쑥날쑥하였다. 옥수수 70%, 쌀 30%인 성인 1인당 하루식량이 600그램인데 그것 먹고는 정말 배고프다. 그것도 한 달에 10일분, 잘 줘야 15일분, 어떤 달은 건너 띄기도 했다. 1989년부터 식량배급은 농장 밭의 옥수수를 껍질 채로 저울에 달아 공급하였다. 가을에는 감자배급인데 그것도 쭉정이가 대부분이었고 1994년부터는 그것마저도 없었다.

 

- 아버지가 사회에 불만이 없었나?

언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몰래하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해방 후 전라남도 광주시내 모 인쇄소장의 집에서 머슴살이 했는데 밥은 배불리 먹었다. 남조선에서는 아무리 막노동을 해도 밥은 먹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12살 때의 기억으로 회령탄광기계공장에서 사소한 사고가 생겨도 항상 아버지는 공개비판대상 1순위였다. 이유는 단 하나, 남조선출신으로 혁명사상과 계급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그걸 보고 가슴이 아팠겠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내 아버지가 수백 여 대중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 아버지 입에서 ‘남조선’이란 소리만 나오면 너무 무서워 내 손으로 아버지의 입을 막았다. 어찌된 일인지 누가 어디서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은 보위부에 속속 보고되었다.

 

- 탈북동기가 뭔가?

내가 시집간 곳은 회령시 망향구 농촌으로 중국 국경 두만강 근처이다. 1997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긴 유언은 “너희들 중 누구라도 남조선에 가서 아버지의 친척을 찾아봐라. 아마 이 아버지가 6·25전쟁에서 전사한 줄로 알 것이다. 죽지 않고 여기 북조선 회령에 와서 지금까지 살았다고 전해라” 이었다. 자식으로써 아버지의 유언을 꼭 지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 탈출경로는 어떻게 되는가?

1999년 1월 추운 겨울 어느 날, 두만강 건너 중국소식을 비교적 잘 아는 동네아주머니를 알게 되었다. 그의 친척(청진여자)이 도강할 계획이었고 나도 같이 합류했다. 이름은 서로가 알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만약 도강이 불발되어 보위부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을 때 “진짜 모른다!”고 답하기 위해서이다.

 

- 자세히 말해 달라.

다행히 북한경비대의 눈에 발각되지 않고 중국 땅에 들어섰다. 룡정시 삼합진 남로2대 지역이다. 오후 5시 경 어두운 밤인데 집집마다 문을 꼭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하도 탈북자들이 많아서 그런 풍경까지 생겼다고 한다. 새벽에 겨우 찾은 곳이 먼 친척집이었다. 남조선으로 가려는 마음은 있었으나 도무지 방도를 몰라 4년간 식당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탈북자 신분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2003년 4월 아버지의 고향 대한민국으로 왔다.

 

- 6·25국군포로가족회는 어떤 단체인가?

2008년 8월 국방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국군포로 자녀들의 탈북민단체이다. 단체의 목적은 국가수호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에 강제로 억류된 후 귀환한 국군포로들과 그 가족의 권익보호이다. 또한 북한에서 사망한 미귀환국군포로 가족들 중의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안정된 정착생활을 하도록 돕는다.

 

- 북한의 국군포로 실태는...

6·25전쟁 때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전향한 사람들은 대우를 받고 그 자녀들도 연좌제에 해당되지 않아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미전향 국군포로들은 아오지 탄광이나 검덕광산 등 노동사고위험이 높은 현장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 자녀들 또한 혁명화대상(반동으로 찍혀 누군가의 감시를 항상 받음)으로 취급받아 탄광 등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

 

- 남한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는 몇 명인가?

휴전이후 제일 먼저 돌아온 분이 1994년에 입국한 조창호 씨(2006년 사망)다. 그로 인하여 국군포로귀환보호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모두 80여 명이 돌아왔고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30여 명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한민국에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들에 대한 보호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 가장 시급한 것은 뭐라고 보나.

국군포로를 위한 관계법령 개정이다. 국군포로 자녀들 또한 국가유공자의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국방부는 1998년에 6·25전쟁 행방불명자, 국군포로 등에 대해 ‘1950년 입대, 1953년 전사’라고 일괄적으로 처리했다. 북한에 끌려갔던 국군포로의 자녀가 탈북하여 남한의 친인척과 DNA검사를 마치고 친자임을 확인하고도 법을 고칠 수 없기에 부모의 호적에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

2015년 7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청사 앞에서 매일 같이 북한에 끌려간 국군포로송환을 위한 요구로 본 단체의 집회를 하였다. 오죽했으면 거기서 “대한민국 부모들이여!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말라! 6·25국군포로를 나몰라하는 이 나라 정부를 어떻게 믿고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는가?”고 했겠는가.

 

- 끝으로 할 말이 있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의 숙원인, 국군포로 해결문제에 작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님과 정부, 특히 정치권에서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좀 도와 달라. 조국 대한민국을 지킨 아들들인 국군포로! 우리의 부모님들이 저 세상에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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