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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는 분명 근로의 대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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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모든 고교졸업생, 인민군 제대군인의 직장배치를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남한의 도·시·군청에 해당) 노동행정과에서 취급한다. 또한 대학졸업생, 인민군 제대군관(장교)은 도·시·군 당위원회 간부(인사)과에서 담당한다.

오래전 기계가 멈춘 공장에도 할 일은 많다. 일주일에 5~6시간의 사상학습 및 강연이 있으며 1년에 3~4개월 농촌작업 및 방호공사(전시용 대피시설 건설)에 참여한다. 또한 건설현장 인력지원 및 여러 정치행사에 강제로 동원된다.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누리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정말 꿈같은 일이다. 물론 만족스러운 직업 찾기와 창업의 어려움도 있다. 그래도 좋던 싫던 적성에 맞던 안 맞던 당국에서 강제 배정한 직업에 평생 종사하는 북한보다는 훨씬 낫다.

최근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들 과반이 회사취직보다는 창업이나 개인사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주식회사 <글로브>를 찾아 정 남 대표이사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73년 4월 평양시 선교구역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내 위로 형님 세 분이 있었고 내가 막내였다. 아버지는 조선인민경비대 0000군부대 여단장(대좌)이었고 내가 다섯 살 때에 순직하였다. 어머니는 평양도시계획설계사업소 책임설계기사였다. 나는 1989년 평양제1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생활 1년 뒤 당국에서 어머니에게 “당신 맏아들이 외국유학 도중 국가에 피해를 끼쳤다”며 함경북도 온성군으로 ‘퇴거증명서’(추방영장)를 발급해줬다. 나는 대학퇴학, 어머니와 두 형과 함께 지방으로 쫓겨났다.

 

- 어머니가 주체사상탑 설계자다

평양의 심벌인 주체사상탑은 북한당국이 김일성의 생일 70주년(1982년 4월 15일)에 맞춰 대동강반 동평양지역에 건설한 높이 170m의 화강석 탑이다. 어머니를 포함한 유능설계가들이 합동으로 설계한 건축물이다. 이후 광복거리의 교량, 능라다리 등을 설계하여 김정일 표창, 국기훈장, 김일성 명함시계 등을 받았다.

 

- 추방지에서 어떤 일을 하였나?

북부철도총국 삼봉철길대 온성소대에서 철길원으로 일을 했다. 추방 된 이듬해 평양철도대학 전기공학부에 통신(남한의 방송통신대) 입학하여 1996년에 졸업했다. 이후 전철대(철도 전기선 관리하는 작업반)에서 일하기 원했다.

그러나 “너는 철길대(철도 노선을 관리하는 작업반)에서 일해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에 다소 의심이 갔다. 우리 가족이 평양에서 추방된 정확한 사유도 모르고 대학졸업생인 내가 전공분야에서도 일 못하는 것이 의아했다.

 

- 반전의 계기가 있었다면...

황해도 전연지역에 먼 친척이 있었다. 그가 언제인가 온성으로 출장을 왔는데 사람들 몰래 우리 가족에게 무엇(삐라)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맏형이 서울에서 대학 공부를 하면서 또 어느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 사진이 있었다. 그 안에 “남조선은 자유와 인권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라는 글이 있었다.

 

- 추방된 이유가 그 때문이겠다.

그렇다. 맏형은 평양에서 김책공업종합대학 재학 중 소련(지금의 러시아) 키예브국립대학을 유학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다. 맏형은 소련 대학졸업과 동시에 한국으로 망명하여 왔으니 우리가족이 평양에서 온성으로 추방되었다.

둘째 형도 유학생 출신이다. 1987년부터 89년까지 3년간 독일에서 군사대학 유학을 마치고 조국에 귀국하여 평양방어사령부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셋째 형은 만경대혁명학원 졸업생으로 경성비행군관학교에 4년간 재학했다.

 

- 남한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맏형이 중국 조선족을 통해 연락이 왔다. 이유를 더 묻지 말고 무조건 북한을 떠나서 한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고민을 했다. 한국(남조선)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지만 나서 자란 정든 곳을 뜬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거기에 북한은 조국을 탈출하면 ‘민족반역자’의 감투를 씌워 극형에 처형하는 잔인한 국가이다.

 

- 탈북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 3형제가 불안해하며 망설일 때 어머니가 결단을 내리었다. 어머니는 자신은 평생을 당과 국가에 충성했는데 말년에 이런 고생을 겪어야 하는 북한사회에 환멸을 느끼신 것 같았다. 말은 안했지만 내심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중국의 상황을 파악할 겸 내가 먼저 두만강을 넘었다. 1997년 8월 5일이었다. 이후 3일 뒤 어머니와 셋째 형이 넘어왔다. 우리 가족은 길림에서 15일간 보냈고 이후 항공기편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1997년 8월 하순 경이었다.

 

- 서울생활 초기를 말해 달라

1998년 2월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북한에서 철도대학을 졸업했으니 남한에서 철도청(지금의 한국철도공사)에서 일하고 싶어 입사지원을 했다. 당시는 북한에서의 대학졸업을 인정해주지 않던 시기다. 6개월 뒤 철도청에서 건물보일러실 인턴(실습 직원)으로 취업요청이 왔기에 입술을 꾹 깨물고 정중히 사절했다.

 

- 이후 무엇을 하였는가?

북한과 전혀 다른 세상에 왔으니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었다. 2000년 3월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법학, 신문방송학과, 영상예술학과를 복수 전공하였으며 2005년 2월에 졸업하였다.

이후 취업원서를 하루에 적게는 3~4곳 많기는 20여 곳에 넣었다. 그렇게 1년간 1000개 넘는 곳에 취업원서를 냈으나 답변이 온 곳은 보험회사, 카드회사 등뿐이었다. 그곳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 희망과는 안 맞았다.

 

- 한 때 ‘전철우고향국밥’에서 근무했다.

대학생활 기간 휴학을 하고 얼마간 ‘전철우고향냉면’에서 일을 하였다. 독일유학생 출신의 탈북민 전철우 대표는 식품회사를 경영하는 대표적 탈북기업인이다. 대학졸업 후 1년간 ‘전철우고향국밥’에서 영업과장으로 근무했다. 탈북으로 보나 기업인으로 보나 선배인 전철우 대표에게서 사회생활의 다양한 지혜를 배웠다.

 

- 국회에서 일한 경력도 있던데...

2008년부터 당시 통합민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최용규 국회의원(재선)의 6급비서로 근무하였다. 그때 최용규 의원은 한국우크라이나의원협회 회장이었다. 이후 (주)도울건축사무소에서 인사총무부 차장으로 3년간 근무했다.

2012년 5월부터 탈북민 최초의 국회의원인 새누리당(지금의 자유한국당) 조명철 의원 5급 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맡은 업무는 국회에서의 정부정책 업무도 했지만 탈북민 관련 규제입법, 개선문제 등 민원업무를 기본으로 맡아 하였다.

 

- 국회에서 나온 이유는 뭔가?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2014년 2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였고 2017년 3월부터 현재 북한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공부벌레인 것 같다.(웃음) 20년간 남한생활 전체 기간에서 절반 이상을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 (주)글로브를 소개해 달라

글로브는 우크라이나 산 해바라기기름을 수입하여 유통하는 회사이다. 2018년 5월 통일형 예비사회적기업을 인증 획득했고 2018년 7월 품질경영인증 ISO 9001, 14001을 받았다. 지금은 지역형 예비사회적기업을 신청한 상태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바라기 산지이고 기름 자체가 좋다. 한국에는 콩기름이 대표적 기름인데 콩은 GMO콩이다. 용매식추출 방식으로 짜낸 것이며 여기에 비하면 해바리기 기름은 저온 압착 NON-GMO다.

 

- 한 해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2014년 매출은 240만원(웃음), 2015년 6.500만원이고 2016년에는 6.800만원이다. 그리고 2017년에는 4억 7.000만원, 올해 10월까지 매출은 8억 3.000만원이다. 거래처는 주로 전국의 급식업체, 식용유유통업체, 소비자주문방식 등이다. 내년에는 중개무역을 뺀 순수 식용유유통 매출만 10억 이상을 계획하고 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해 안에 식용유(우크라이나 산 해바라기기름) 포장을 위한 자동화설비를 현장에 들여 놓을 예정이다. 그와 동시에 2명의 직원을 더 채용하려고 한다. 제품의 질을 높이고 직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 회사의 당면한 과제이다.

현재 6명의 직원이 모두 탈북민이다. 길게는 3년 가까이, 짧게는 4개월 정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다. 이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많이 부족한 나를 대표이사로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이기에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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