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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정일 부인 성혜림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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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특정기관에서 신분조사를 받을 때 “당신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놀랍지만 거의 모든 탈북민들이 “인권이 뭡니까?” 하고 되묻는 것이 현실이다.

22년 전에 입국한 필자도 그랬고 요즘 입국하는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주민들에게서 인권은 “민족의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시고 사는 공민최고의 영예” 라고 가르친다. 70여 년을 그렇게 교육시켜 온 북한당국이다.

매해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다. 1948년 12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UN총회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하였다. 이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계인권의 날>이 지정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기념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지극히 존엄하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세계가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지의 세계 북한에서는 당국의 통제로 인해 주민들이 <세계인권의 날>을 전혀 모르고 산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북한요덕수용소 수감자 출신의 김영순 정치범생존자모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일제강점기인 1937년 5월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이 경북 안동이다. 8살 때 해방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오빠가 있는 평양으로 나오면서 북한주민이 되었다. 오빠는 김일성과 함께 항일운동을, 해방 후 철도경비대장을 하였다. 그 덕에 우리가족은 1960년대까지 평양에서 상류층으로 살 수 있었다.

 

- 김정일의 내연녀 성혜림의 친구였다

성혜림(1937년 경남·창녕 태생, 해방 후 월북)과는 1950년 여고시절부터 평양예술대학 졸업(1956년)까지 동창이었다. 그녀는 대학졸업 후 영화촬영소에 갔고 나는 인민군협주단에 갔다. 성혜림이 처음 출연한 영화는 ‘온정령’이다.

1970년대는 김정일이 영화부문업무를 맡은 시기다. 그때 성혜림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녀는 월북 작가인 이기영 조선작가동맹위원장의 아들 이평과 결혼을 하여 딸을 두었다. 유부녀 성혜림에게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태어났다.

 

- 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나?

성혜림이 어느 날 친구인 나에게 자기는 ‘5호댁’(김정일이 거주하는 특각)에 있다고 했다. 이후 나는 영문도 모른 채 1970년 8월부터 두 달간 보위부에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았다. 성혜림이 내게 한 발언과 그걸 아는 지인이름 모두 토설했다. 그해 10월 연좌제가 적용돼 가족 7명과 함남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

 

- 수용소 안의 풍경을 말해 달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5시에 작업현장에 나간다. 어두운 밤까지 대략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이다. 농산대대는 농사(여름에는 모내기, 김매기. 겨울에는 거름생산) 일을 하고 공업대대는 보위원 주택건설 및 목재생산가공 등을 한다.

농산대대, 공업대대는 각각 4~5개씩 있으며 한 개 대대 안에는 3~4개 소대가 있다. 한 개 소대 인원은 대략 25~30명 정도. 한 개 대대 인원은 약 100명, 전체 인원은 1000여 명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일하는 기계’다.

 

- 의식(옷과 식사) 문제는 어떠한가?

수용소 내부 수감자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옷은 수십 군데 더덕더덕 기운 것이고 신발은 끈이 없이 새끼줄로 동여매었다. 말이 사람이지 짐승보다 못한 더러운 몰골이나 다름없다. 하루 세끼 주는 식사는 돼지죽보다 못한 멀건 죽이다. 그것만 먹고 너무도 배가고파 눈에 보이는 어떤 생물체도 전부 잡아먹는다.

 

- 자세히 말해준다면...

쥐, 개구리, 참새, 도마뱀, 미꾸라지 등이다. 산에 있는 어떤 식물도 뜯어 먹는다. 그러니 죽는 사람도 많다. 뱀을 잡아 먹어 뱀독에 걸려 죽는 사람, 테라그라(아프리카 토종병, 영양실조병)에 걸려 항문이 열려죽는 사람 등이다.

여름철 산에서 독풀을 잘못 먹어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하루 평균 1~2명 씩 각종 노동사고 및 독성물질 감염으로 죽었다. 전체 인원의 2% 정도가 사고나 병으로 죽었는데 주로 면역력이 약한 늙은이와 어린이들이다.

 

- 시신은 어떻게 처리하나?

거짓말 같지만 관이 없어 거적이나 가마니로 시신을 둘둘 말아 밭고랑이나 길가에 버린다. 혹은 한군데 모았다가 손수레에 실어 주변 산에 올라가 묻는다. 나보다 석 달 먼저인 1970년 7월 다른 수용소에 수감된 남편의 생사는 아직도 모른다. 막내아들은 출소 후 남한으로 탈출하려다 붙잡혀 공개 총살되었다.

 

- 수감자 부류를 말해 달라

우선 나처럼 수령(최고지도자)의 가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당과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거역한 사람들, 수령의 사진을 찢거나 낙서한 사람들, 외국으로 도주하려 했거나 외국방송을 들은 사람들 등이다.

또한 해방 후 지주·자본가의 후손들, 목사·선교사·장로 등 기독교인의 후손들, 월북한 사람들 중에 노동당사상으로 개조가 안 된 사람들, 외국에서 남조선 목사를 접촉하고 성경책을 본 사람들인데 이들은 종신 수감자다.

 

- 언제 석방되었는가?

1979년 2월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후 함남 중흥광산에서 일했다. 1989년 평양의 보위부간부가 찾아와 “성혜림은 장군님(김정일)의 처도 아니며 아들도 낳지 않았다. 그와 관련한 사소한 말을 하거나 퍼뜨리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났다. 이후 내가 공화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인물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느꼈다.

 

- 그것이 탈북동기였겠다

그렇다. 김정일 부인 성혜림의 친구인 사실이 공화국에서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처지임을 뒤늦게 알고 원망스러웠다. 추운 겨울 국경경비 대원에게 뇌물을 주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탈북했다. 2001년 2월 1일이었다.

놀랍게도 중국당국은 목숨 걸고 살겠다고 찾아온 탈북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해주지 않았다. 고민 끝에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2003년 7월 배를 타고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그해 11월 25일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 서울에서 혼자 사는가?

남한에 함께 온 아들(53)이 있는데 중국에서 2번이나 북송된 적이 있다. 함남에서 5개월간 감옥옥살이 한 이후 노동력을 상실했다. 북한에서의 혹독한 고문후유증으로 호흡기장애 2급 진단을 받았다. 나이 팔순을 넘긴 내가 나이 쉰 넘은 아들을 간호하는 형국이며 혼자 사는 그 애를 보면 어미로써 가슴이 미어진다.

 

- 그 연세에 많은 활동을 한다

내 나이에 집에 있으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유엔 3차 인권결의안 채택 참가 및 영국국회를 방문하여 증언하는 등 2004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캐나다, 독일, 스위스, 호주 등 12개 나라를 방문하여 북한의 인권실태를 고발했다.

또한 대한민국 안보강화를 위하여 교회, 학교, 관공서, 회사, 군부대 등을 방문하여 500여 회의 특강 및 강연을 하였다. 탈북민의 사명은 첫째도 둘째도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알리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안보정신을 함양시키는 것이다.

 

- 힘에 부치지 않는가?

왜 안 힘들겠는가? 그러나 그때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잔인한 수령 독재정권에 한을 품고 눈감은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 단지 수령과 국가를 비판하거나 반대했다고 죽은 그들이다. 내가 그들의 원한을 세상에 전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면 아마 대한민국에 온 의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안 되었다

안타깝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 된지 2년이 지나도록 아직 출범하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다. 또한 내년도 북한인권재단 예산을 108억여 원에서 8억 원으로 92% 삭감된 것은 탈북민으로써 분개할 일이다.

정말이지 대한민국 정부가 평화를 위해 다방면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실태와 인권에도 작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참 모습이라고 본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북한에서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에서 짐승처럼 살던 우리 탈북자들을 자유와 인권을 마음껏 누리는 참 사람으로 살라고 당당한 국민으로 받아준 대한민국 정부에 자나 깨나 감사하다. 남한은 우리에게 어머니 품이다. 21세기 가장 야만적인 독재자 김정은이 버린 우리 탈북자들을 어머니 조국 대한민국이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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