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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배신한 나는 탈북민 태영호다"

 

태영호.jpeg

 

지난 2017년 12월 어느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인권포럼과 아시아인권의원연맹의 주최로 <2017 올해의 인권상> 시상식이 있었다. 그 영광의 수상자는 탈북외교관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였다.

행사 시작에 앞서 필자가 그에게 명함을 건네며 “공사님! 반갑습니다. 림일 작가입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다. 다소 밝은 표정을 짓고 “이름 많이 들었습니다. 림일 작가님!” 하며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해하는 태 전 공사였다.

2019년 새해가 밝았다. 3만 탈북민은 누가 뭐라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든든히 지키는 확실한 수호자다. 폐쇄적인 북한사회를 온몸으로 체험하였기에 목숨 같은 자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는 존재들이다.

잔인한 김정은 독재정권을 강력히 규탄하며 노예와 같은 2천만 인민의 해방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통일선봉대오의 맨 앞장에 태영호 전 공사와 3만 탈북민이 있다. 얼마 전 서울 모처에서 태 전 공사와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62년 7월 25일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에서 태어났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평양의 대표적 뉴타운 지역으로 변신한 창전거리와 그 유명한 ‘옥류관’이 있는 지역이다. 형제는 누이와 남동생이 있는 3남매 중 둘째이다. 부친은 평양건설건재대학 시공강좌 교원(교수)이었고 모친은 평양서문인민학교 교원(교사)이었다.

 

- 학력(유학)을 소개해준다면···

1974년 9월 평양외국어학원 영어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76년 2월 중국 베이징외국어대학 부속 중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공부했다. 이후 1984년부터 88년까지 베이징외국어대학을 다녀 도합 8년간 중국에서 영어공부를 하였다.

1990년대 전후로 북한서 해외유학생들에 대한 대대적 소환·숙청이 있었다. 동독 및 유럽, 소련(현 러시아), 중국유학생 등 모두 수백 명을 반정부모략 공모자로 낙인찍어 정치범수용소에 보냈다.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평양의 경력은 어떻게 되나?

대동강구역에 소재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1984년 8월에 졸업했다. 참고로 평양국제관계대학(외교일군 양성), 김일성고급당학교(당일군 양성), 금성정치대학(청년일군 양성)은 조선노동당 간부양성기관이다. 여기는 공부실력보다 성분토대를 기준으로 입학한다. 1988년 10월부터 외무성 유럽국 지도원으로 근무했다.

 

- 외무성에 대해 소개해 달라

평양의 김일성광장 주석단을 마주 볼 때 오른쪽 건물이 외무성청사다. 11개 국(지역국 6개, 행정국 5개), 3개 연구소가 있으며 직원은 1500명이다. 평양의 다른 중앙기관에는 제대군인(당원, 대학졸업생) 출신 직원이 대략 전체의 70~80%인데 외무성은 45%이다. 외무성 전체 직원 중 당원비율은 75% 정도이다.

 

- 안 좋은 추억이 있다면···

1996년 3월 어느 날 당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외무성직원 수 십 여명이 지원음식(빵, 국수, 떡)을 갖고 평양시 형제산구역 간리집결소로 갔는데 깜짝 놀랐다. 그곳에 있는 수백 명은 모두 굶어죽기 직전의 성인꽃제비(방랑거지)이었다.

간리 철도역은 신의주, 청진 등에서 평양으로 오는 열차가 만나는 지점이다. 지방의 꽃제비들이 “장군님 계시는 평양으로 가면 굶어죽지 않는다!”며 평양에 몰리던 것을 당국의 조치에 따라 강제로 단속하여 집결해놨던 것이다.

 

- 당시 가족의 생활수준은 어떠했나?

김일성 사망(1994년) 이듬해 5월부터 평양시 식량배급이 중단되었고 외무성은 그나마 외화로 밀가루나 옥수수(강냉이)를 구입해 직원들에게 조금씩 공급했다. 모란봉구역 개선동의 우리 집은 3칸짜리였는데 부모님, 동생부부, 내 가족 등 3가족 8명의 대식구였다. 저녁마다 온 가족이 옥수수국수로 끼니를 에웠다.

 

- 외무성 직원 가족인데···

외무성이 아니라 중앙당, 보위부 직원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북한서 간부들과 인민들의 공통점은 당의 정치사상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눈만 뜨면 당국에서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이 사회주의 공화국을 고립말살하려고 지독한 경제제재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해준다. 황당한 거짓말도 계속 듣다보면 진짜 믿게 된다.

 

- 첫 해외 발령지가 어느 나라인가?

1996년 6월 덴마크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발령받아 나왔다. 현지 도착 첫날부터 대사(리태균)와 함께 덴마크 외무성 아시아국과 국제협력국, 적십자와 민간자선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평양으로 보낼 식량지원을 호소하였다.

9월경 덴마크 개발협조상(장관)에게서 “덴마크 정부는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100만 달러분량의 식량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는 공식적인 통보를 전달 받았다. 그 순간 조국에 공헌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1997년 덴마크에서 일할 때다. 금수산경리부 간부가 와서 운곡농장(수령전용 축산농장)에서 쓰일 소 종자를 구입해갔다. 얼마 뒤 다시 와 김일성 사망 3주기 때 김정일과 간부들이 마실 덴마크 ‘칼스버그’ 생맥주를 대량 수입해갔다. 그걸 보면서 마음속에 분노가 찼다. 수십만의 인민이 굶어죽는데 고위간부들이 마실 생맥주까지 북유럽에 와서 구입해가니 말이다. 해외서 수령전용 상품구매는 혀가 찰 정도이다.

 

- 외교관이 받는 월급은 어느 정도인가?

내가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근무하며 받은 월급은 500달러(한화 60만원). 북유럽은 물가가 비싼 지역이며 이 돈으로 한 달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외교관들은 알게 모르게 외교관면책권을 이용해 불법 장사를 하기도 한다. 나는 해마다 평양의 부모님이 계시는 우리 집과 처갓집에 각각 1000달러씩 보내주었다.

 

- 또 다른 고통이 있었다면···

공개적으로 당에 바치는 충성의 자금 외에도 알게 모르게 직속상부(과장, 국장 등)에게 바쳐야 하는 뇌물(달러 혹은 유로)이다. 평양서 공식적으로 해외발령 받을 때도 뇌물을 바쳐야지만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서도 마찬가지다.

액수는 미화 1~2천 달러, 1990년대 초반까지는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음지에서 남몰래 이루어졌다. 허나 고난의 행군이 있은 90년대 중반이후 노골적으로 뇌물조달이 진행되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북한 말로 ‘고이는 문화’다.

 

- 영국에서는 언제부터 근무하였나?

2004년 6월부터 영국주재 북한대사관(2003년 개설) 참사로 일했다. 참고로 세계 각국의 북한대사관은 사무청사와 주거공간이 한 곳에 있다. 이유는 직원들에 대한 감시를 쉽게 하기 위해서다. 4년 뒤 귀국하여 2008년부터 5년간 외무성 부국장(유럽국)으로, 2013년 4월부터 한국으로 올 때까지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로 근무했다.

 

-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15년 5월 김정철(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둘째 형)이 영국의 유명 기타연주자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기위해 런던에 왔고 내가 공연장으로 안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혀가 찰 노릇이다. 북한에서 대다수 인민들이 멀건 죽을 먹고 사는데 수령의 아들은 수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외국으로 공연 보려 나오니 말이다.

 

- 또 다른 추억이 있을 것 같다

2014년 4월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대사관에서 3km 안팎의 모처 미용실에 광고포스터로 김정은의 사진과 “머리모양이 마음에 안 드는 날인가요? 남성고객은 15% 할인” 이라는 글이 있었다. 즉각 주인에게 강력 항의하여 떼어냈다.

영국 외곽의 뉴몰든 지역에는 한국교민과 탈북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매월 1~2회씩 식품구매 차 그곳에 갔다. 다소 어리둥절한 것은 탈북민 같아서 “서울 거쳐 여기에 왔는가?”고 물으면 대부분 “중국에서 직접 왔다”고 하더라.

 

- 심경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대학생인 두 아들의 미래 때문이다. 북한외교관들은 당국의 조치로 자식 중 한 명은 반드시 평양에 남겨두고 해외근무를 한다. 이거야 말로 세계에 유례가 없는 북한당국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리고 김정일의 특별한 신임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해외로 나올 수 있었다. 임기가 끝나면 가족과 함께 평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 대한민국에 입국한 소감은

2016년 8월 중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서울에 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웃음) 남한에서는 정부가 무직자도 굶어죽지 않도록 최저생계비를 지원해주더라. 현재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 남북동행아카데미 원장으로 강연, TV출연, 세미나, 신문기고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올해 안에 범탈북민단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연합체 형식의 법인단체를 발족시킬 계획이다. 그 안에는 인권운동 및 대북 방송하는 단체, 정착지원 활동하는 단체, 예술 및 종교단체 등 다종다양한 여러 탈북민단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단언컨대 앞으로 통일이 되면 우리 탈북민연합체가 북한에 들어가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그때를 대비하여 지금부터 차분히 연습을 하자는 것이다. 북한에서 우리가 잘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력갱생 혁명정신’이 아니겠는가.

 

-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맙다.

과찬이 말이다. 내가 고마운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대한민국에 와서 북한사회의 참혹한 실상을 낱낱이 증언해준 3만 탈북민들이다. 김정은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2천만 인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통일운동을 과감히 펼치는 탈북단체장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이 태영호! 통일의 그날까지 우리 탈북동지들과 함께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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