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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가면 서울음식 이야기 하겠다”

통일인터뷰.jpeg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서 눈길을 끈 것 중의 하나가 ‘옥류관 냉면’이었다. 평양의 초대형 냉면전문점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통일각서 만든 냉면이 38선을 넘어 남측지역 평화의집서 열린 남북정상 만찬장에 올랐던 것이다.

한민족 국토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서 남북의 두 정상이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냉면을 먹는 장면은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이제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가 아니라 평양냉면으로 바뀌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4·27 냉면데이(day)” “점심은 냉면으로” 등을 외치며 평양냉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옥류관 냉면’은 그동안 모두 평양이나 북측지역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북한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덕에 그 유명세를 톡톡히 하며 광고효과도 분명히 본다. 그 평양냉명은 똑같지는 않지만 남한에서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은 바로 탈북민들이다. 3만 2천 명의 탈북민 중 음식 및 식품업종서 사업 혹은 일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다. 이들 중 최고 1인자는 20년 남짓 ‘냉면장사의 달인’의 이력을 가진 전철우 주식회사 고향에프에스 대표이사다. 얼마 전 서울 모처에서 그를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북한의 국제항구도시인 남포에서 1967년 6월 9일에 태어났다. 형제는 누이 세 명이 있고 당시는 북한이 잘 살던 때였다. 아버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항공협회 부회장, 모친은 평양학원(지금의 김일성정치군사대학) 교원이었다. 놀랍게도 부모님의 결혼식을 축하해 김일성이 금가락지와 반지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나는 당시 5년제인 고등중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전자공학 분야에 관심이 무척이나 많았고 우수한 학업 성적이었다. 고교졸업 후 1983년 9월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김책공업종합대학 기계제작학부에 입학하였다.

 

- 독일 유학생 출신이다.

남한에서는 외국유학이 별 것 아니지만 북한에서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나는 1986년 가을, 사회주의국가인 독일민주공화국(동독) 드레즈덴 공업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 대학에 나를 포함하여 10여 명의 북한유학생이 있었다. 라이프찌히 의학대학에도 10여 명이 있었고 동독에 모두 30~40여 명의 북한유학생이 있었다.

 

- 당시 북한유학생의 최다 시기 아닌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해외유학생 역사는 전쟁이 끝난 후부터 시작되었는데 1980년대 정점을 찍었다. 당시 소련(현 러시아)에 가장 많은 유학생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 등에도 적게는 2~3명 씩, 많기는 수십 명씩 있었으며 유럽 전체적으로 수백 명 있은 걸로 안다.

 

- 해외 유학생의 프라이드는.

우선 당국에서 해외로 유학을 파견할 때부터 수령의 크나큰 사랑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설명해준다. 다시 말해 당의 정치적 신임을 가슴 깊이 새기고 해외서 자본주의 황색바람에 조금도 유혹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평양에서 해외로 파견 할 때는 유학생의 학업실력도 보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하게 살피는 것이 가족토대(출신성분)이다. 집안 내력에 먼 친척이라도 미해명, 정치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단호히 배제되는 것이 원칙이다.

 

-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

북한 유학생들은 독일의 각 대학 기숙사에서 외국의 유학생들과 똑같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현지용어로 소통하다보니 세상물정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또한 자유로운 생활 속에 TV와 뮤지컬, 영화 등을 관람하며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가 그동안 평양에서 김일성·김정일 정권에 철저히 속아 살았음을 알았다.

 

- 유학생활 중 부러운 것이 있었다면.

정말이지 모든 것이었다. 독일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판해도 불이익이 없었다. 북한처럼 외국은 고사하고 국내도 자유롭게 여행 못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거리의 상점과 식당에는 상품과 음식이 넘쳐났다. 베를린의 상징 라인강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맥줏집에서 시민들이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며 낭만을 노래했다.

 

- 탈북할 생각을 가진 이유는.

유학생활 3년 뒤, 독일통일이 있었다. 사회주의 동독이 붕괴되고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통일이었다. 한반도에 빗대면 사회주의 북조선이 자본주의 남조선에 먹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일통일은 북한 유학생들께 커다란 충격이었다.

우리 유학생들이 깨달은 세상의 정의가 아무리 분명하다고 해도, 거대하고 탄탄한 북한독재정권을 비판하고 공격하기는 너무나 역부족이라는 걸 알았다. 하여 평양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서울로 가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 탈출경로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동독에서 유학을 하던 동료와 함께 1989년 11월 10일, 서부베를린으로 넘어왔다. 사회주의진영에서 자유민주진영으로 이주한 것이다. 서독 주재 한국대사관을 경유하여 일주일 뒤인 11월 16일 서울에 왔다. 당시 동유럽국가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유학생은 나를 포함해 대략 14명 정도였는데 매일 언론에서 최고이슈였다.

 

- 서울생활 초기는 어떻게 보냈나.

1991년 2월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고 이듬해부터 방송연예활동을 시작하였다. MBC, SBS 개그맨에 공채되었고 방송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1997년 5월 최양락, 김미화, 이봉원 등 유명개그맨들의 도움으로 서울 남영동 지하2층에 30평대의 작은 냉면집을 열었다. 그게 ‘전철우 고향냉면’의 시조이다.

 

- 탈북민 전철우! 하면 냉면을 떠올리는데.

개업 2년 뒤에는 체인점이 무려 50~60개로 늘었으며 사업은 날개를 달은 듯 잘 되어 나갔다. 허나 그런 점을 노리는 사기꾼도 많은 곳이 서울이다. 두 번의 사기를 맞아 크게 무너졌지만 탈북을 하던 그 용기로 재개하였다.

2013년 4월에 설립한 식품제조유통회사인 ‘고향에프에스’는 전국의 백화점, 마트 등에 수십 종류의 식품을 납품하며 홈쇼핑과 인터넷에서 80~90종의 우리 회사만의 고유브랜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해외로 식품을 수출한다.

 

- 베트남에 법인을 설립했다는데.

대략 1년간의 준비를 거쳐 작년 5월에 베트남에 법인회사를 설립하였다. 현지 직원을 50여명 고용하였는데 관리직원 2명 제외하고 전부 베트남인이다. 한류 덕분에 한국음식이 베트남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특수도 있다. 요즘 베트남의 영웅으로 부상한 베트남축국국가대표 박항서 감독의 인기도 도움이 된다.

 

- 꾸준히 판매되는 식품은 무엇인가.

‘전철우 갈비탕’ ‘전철우 냉면’ ‘전철우 장터국밥’ ‘전철우 고향순대’를 비롯하여 식용유, 간장, 식초, 다시다, 된장 등 다양한 식품이 있다. 모든 음식은 진공포장이 되어 국내 유통은 물론 해외에도 동일한 제품으로 수출된다.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된 모든 음식과 제품에는 ‘전철우’라는 고유브랜드가 표시되어 있다.

 

- 과거와 현재의 해외투자 차이점은.

사업초기에는 해외투자에 돈과 시간을 많이 들였다. 해외사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업가들의 로망이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음식과 식품분야에서는 해외투자가 그렇게 마진이 많이 남는 것도 아니다.

4~5년 전부터는 해외투자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편이다. 그동안 미국, 일본 등에 별러놓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지역인 동남아시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베트남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으로 확대하려 한다.

 

- 냉면 장사만 20년이 넘었는데.

남한에 와서 공부도 하고 연예활동도 하다가 사업을 한다며 처음 시작한 것이 1997년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다. 꾸준히 한 길을 오다나니 자부심도 든다. 어떤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그만하게 개인 가게를 열어 내가 직접 요리를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아름다운 풍경도 가끔 잠자리서 그려본다.

 

- 작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덕을 좀 봤나.

우리 회사는 오래전부터 평양냉면, 함흥냉면을 같이 만들고 판매해오고 있다. 작년 4월 판문점서 남북정상이 ‘평양냉면’을 먹은 것이 톡톡한 효과를 보았다. 젊은 층의 고객들로부터 구매가 늘었는데 평소에 비해 3~4배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맛을 들이면 깊이 빠지는 것이 북한음식 특히 ‘평양냉면’의 진미이다.

 

- 남북관계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없나.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내가 탈북민이고 북한은 내 고향이다. 허나 오늘까지 그 어떤 사심도 없이 양심적 기업인으로서 정도를 걸어왔기에 많은 고객들이 변덕스러운 남북관계의 영향에 관계없이 우리 회사를 꾸준히 사랑해준다.

개인적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내 고향 남포에 투자를 하여 사업을 확대하고 싶다. 남북경협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고향을 누구보다 사랑하기에 작게나마 꼭 해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분명하게 있다.

 

- 좀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내가 20대 시절에 서울에 와서 그동안 북한음식이야기로 명성과 부를 얻었으니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늘 다짐한다. 내 고향 남포에 가서 전철우의 서울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게 평양과 서울의 음식이야기를 하다보면 분단으로 인한 원망과 아픔도 서서히 치유될 것이다.

 

-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

올해로 독일체류 북한유학생 생활을 접고 남한에 입국한지 꼭 30년이 된다. 그동안 서울서 살아보니 어디서 공짜로 돈이 생기는 것은 절대 없더라. 대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아주 작게라도 도와주는 사람은 있더라. 뭐든 꾸준히 5년, 10년 이상을 전문으로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최고가 되는 것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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