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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조국, 대한민국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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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3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선거(남한의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번에 당선된 대의원은 687명.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당선자 명단에 없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선거 역사상 처음이다. 영토는 남한보다 크지만 북한의 인구수는 남한의 절반 정도인 2천 500만 명. 허나 최고인민회의대의원은 남한 국회의원 300명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대의원 임기는 5년(9기까지는 4년)이고 대략 인구 3만 명당 1명이 선출된다.

1948년 8월 제1기로 시작된 최고인민회의(남한의 국회)는 헌법상 국가최고 주권기관이다. 입법권을 가진 점에서는 남한의 국회와 같지만 북한서는 인민, 국가, 당, 헌법 위에 있는 수령의 결정을 절대 추인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이다. 탈북민들은 복수후보 중 한 명에게 투표하는 남한의 선거에 크게 놀란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고 만끽한다. 얼마 전 서울 모처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5~8기 대의원을 역임한 탈북민 김화순 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49년 2월 황해도서 태어났다. 부모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조부가 사실 황해도 유명 지주였기에 당의 주민등록 기준으로 보면 ‘반동집안’이지만 운이 좋게도 고모가 항일투사에게 시집가면서 우리 집은 ‘충성가문’으로 바뀌었다.

나는 김일성 저택 관리사로 있던 고모 덕에 1957~63년까지 평양에서 남산인민학교와 고급중학교에 다녔다. 당시 내 별명이 ‘맹렬이’었고 김경희(김정은의 고모)와 단짝친구로 김정일(김경희의 오빠, 김정은의 부친)과도 친했다.

 

- 학력을 말해준다면···

1963년 9월 원산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당시 입학생은 500명, 그중 여학생은 나를 포함해 5명이었다. 재학 중 18살 때 화선입당(1년간의 후보당원 자격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당원이 되는 것)을 하였고 68년 8월에 졸업하였다. 이후 평양으로 올라와 1년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특별교육을 받았다.

 

- 특별교육을 받은 이유가 뭔가?

당시 원산경제대학 교수는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한 지식인들이었다. 당국은 은밀하게 이를 교체할 목적으로 대학졸업자 중 우수생들을 선별하여 특별교육을 주고 본 대학 교수로 임용하였다. 나는 가족이력 중 특정경력이 탈로나면서 부결되었다. 대신 함경북도 소재 ‘조선34화학건설연합기업소’ 재정과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지배인이 전문화(남) 이었는데 김일성의 동료 항일투사 전문섭의 막냇동생이었다.

 

- 그 회사에 대해 말해 준다면···

북한굴지의 화학, 비날론, 섬유공장 등을 건설하는 전문대형건설회사인데 예산 대부분은 외화다. 재정과장은 미화 수백만 달러를 주무르는 직책이어서 중앙당비서처 대상(김일성의 사인으로 임명받는 직책)이다. 나는 매해 평균 외화예산 15~20%를 절약하여 국가에 바쳤으니 그 공로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 김일성을 공식 접견했다는데···

1969년 승리화학공장 준공식장에 김일성이 김정일과 함께 현지지도(시찰)를 나왔다. 참고로 김정일은 64년 6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부친(김일성)이 “아랫단위서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우며 올라오라!”는 교시에 따라 평안남도 강서군당 조직부장에 재적을 두고 실제는 김일성의 현지지도에 많이 따라 다녔다.

관계자한데 승리화학공장건설에서 예산을 아껴 쓴 ‘처녀재정일군’에 대한 보고를 받은 김일성이 의아해 했고 김정일이 “수령님! 김화순 동무는 OOO동무(고모)의 조카입니다”고 보고 드렸다. 순간 김일성의 안색이 환해졌다.

 

- 그때 처음 김일성을 뵈었는가?

아니다. 평양에서 김경희와 여고시절 김일성 저택에서 뛰어놀 때 자주 뵈었다. 허나 공식석상에서 만나기는 그때가 처음이다. 참고로 김경희는 장성택과 결혼하기 전에 다른 유부남과 눈 맞아 딸 둘을 낳았었다. 북한에서는 수령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15분 이상 만난 사람에게만 ‘접견자’로 규정하는 노동당 내부규칙이 있다.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어떻게 되었나?

2시간 이상 점심식사를 겸한 환담을 마친 김일성은 “당에서 김화순 동무를 잘 키우도록 하시오!” 라는 교시를 남겼는데 이는 곧 법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대의원은 전부 노동당에서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이 있는 사람들을 지명하여 뽑는다. 굳이 비교하자만 남한의 비례대표와 비슷하다고 할까. 나는 1972년 12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5기 대의원선거에서 화학공장 건설 분야에서 선출되었다.

 

- 24살의 여성 대의원이었다.

당시 최고인민회의 5기 대의원은 541명이었고 내가 최연소였다. 전체 대의원 중 70%는 중앙당 및 내각의 고위간부들, 도급기관장들이고 나머지 30%는 인민경제 각 분야 대표들이다. 군당책임비서(남한의 군수)도 대의원이 아닌 경우가 있다. 당시 함경북도에는 나를 포함한 3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있었다.

 

- 남한의 국회의원과 어떤 차이가 있나?

남한의 국회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전부 자기 사무실이 있지만 북한의 대의원은 그렇지 않다. 평양 만수대의사당에는 대의원 개인사무실이 전혀 없으며 대의원에게 붙는 보좌관이나 비서도 물론 없고 관용차도 없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특정시기 평양에서 열리는 대의원회의(남한의 국회 본회)에 참석하는 것이 전부이다. 정부정책에 관한 수령의 결정에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인민의 대표’라는 대의원들이 손을 들어 지지하는 것이다.

 

-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의 대의원은 모두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며 대의원수당이 따로 없다. 어쩌면 명예직이나 마찬가지다. ‘대의원증’을 보이면 기차, 여객선, 버스 등 대중교통은 무료이다. 대의원은 자신의 판단으로 군안전부장의 계급장(좌급 군사칭호)을 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당시 외화상점에서 파는 상품도 내화로 구매할 수 있었다.

 

- 대의원 선물이 따로 있는 줄 안다

당시 수령의 여러 종류 선물에는 항일투사(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동료)에게 주는 것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게 주는 선물이 달랐다. 항일투사가 받는 선물이 좀 더 크고 고급스럽다. 대의원이 받는 선물은 주로 식료품, 옷감 등이다.

선물정치는 김정일이 만든 것이다. 당자금(국가예산)으로 ‘당중앙’(김정일) 명의의 선물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1972년 4월부터였다. 새해 첫날, 김일성 생일, 조국해방 기념일, 공화국 창건일, 당 창건일 등 명절 때마다 받았다.

 

- 대의원 이후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2001년 1월부터 황해북도 인민위원회 무역국장 직무를 수행했다. 도(道) 인민위원회를 대표하여 중국무역을 하는데 품목은 약초, 잣, 누에고치, 철광 등 다양하다. 중국출장 허가는 국장 월 3회, 과장 2회, 지도원 1회만 승인한다. 중국을 제집 드나들 듯 하며 열심히 일한 이유는 인민들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서였다.

 

- 심경변화의 계기가 있었다면···

경제자본주의 국가인 중국을 10년 가까이 드나들면서도 사상동요는 없었다. 그만큼 당성이 강했으니까(웃음). 그런데 정작 다른데서 생겼다. 2008년 1월 보위사령부가 전국서 돈 좀 벌었다는 무역일군 180명을 평양에 불러 들였다.

버스에 태워 전국의 텅텅 빈 국가예비물자 창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비판서(반성문)를 쓰게 하였으며 이후로 하나둘씩 사라지는 무역일군들이었다. 한 달간 모두 32명이 숙청되었고 어떤 경우는 대중 앞에서 공개총살을 하였다.

 

- 그걸 보며 무슨 생각이 들던가?

심장이 멎고 머리가 터질듯 했다. 무역일군들이 일을 하다가 개인적으로 크던 작던 외화를 다소 착복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어찌 보면 그것도 국가의 장래가 어두우니 자기와 가족의 미래 경제생활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육체적 생명을 죽일 만큼 중대범죄는 아니지 않는가.

 

- 탈북 경로를 말해 달라

2009년 9월 초 업무출장 차 중국으로 나왔다. 마지막 출장이니 탈북이나 마찬가지다. 출국하기 전 두 딸과 사위, 손자에게 두만강 접경지역으로 오라고 비밀리에 부탁을 하였다. 거기에 드는 비용도 충분히 주었고 다행히 자식들은 그렇게 하였고 브로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북했다. 11월 17일 온 가족이 재회하여 심양, 곤명, 라오스, 태국을 거쳐 12월 30일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입국하였다.

 

- 그동안 무슨 일을 하였는가?

나이 60세 여성이 생소한 땅 서울에 와서 무엇을 하겠는가? 질병을 앓는 작은딸을 2년간 간호하다보니 세월이 빨리도 지나더라. 시간이 되면 특정기관, 교육부문, 군부대 등으로 안보강연을 나가기도 한다. 장성택 처형(2013년 12월) 이후 여러 종편TV에 출연하여 북한실상을 증언 및 해설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 온 큰딸의 세 자식은 모두 북한에서 질병과 사고로 죽었다. 큰딸 부부는 대구에 정착하여 잘 살고 있다. 한국에 와서 2년 만에 질병치료 도중 의료사고로 죽은 작은딸의 아들인 외손자가 이번에 서울 숭실대학교에 입학했다.

어쩌면 우리 집안의 유일한 후손이다. 10살까지 살았던 북한서도, 이후 한국서도 공부를 잘 했다. 이 애가 앞으로 꼭 잘 되었으면 한다. 미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통일한국에 반드시 기여하는 멋진 인재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북한에서 18년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인민의 딸’로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성했지만 남은 것은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북한에서 60년, 남한에서 10년 살았다. 곡절 많은 인생의 고목에도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은혜로운 삶을 주신 어머니 조국, 대한민국에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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