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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주민들이 평소 타는 철도열차를 말하다

 

통일인터뷰.jpeg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간혹 전용기도 타지만 선대수령들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해외방문에 주로 열차를 이용했다. 김일성은 1984년 봄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하여 소련(현 러시아) 및 구라파사회주의 나라들을 방문하였다. 기간은 무려 한 달 가까이고 지구 한 바퀴 둘레 거리이다.

김정일은 생전에 있은 외국방문 여덟 차례 모두 열차를 이용하였다. 2001년 여름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 때는 24일간 왕복 4만km를 열차로 이동했다. 북한의 기록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수령 전용열차는 정말 고급이다. 모두 20여개의 객차로 이뤄진 김정은 전용열차는 위성전화가 놓인 집무실, 대형TV가 설치된 회의실, 영화관, 침실, 목욕탕 등이 갖추어져 있다. 물론 최고지도자의 전용열차이니 최고급일 것이라는 추측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북한에서 일반주민들이 타고 다니는 열차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 전 북한철도 열차원(승무원) 경력을 가진 탈북민 유정은 의정부은혜하나교회 담임목사를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 자기소개를 해 달라.

1977년 8월 함경북도 은덕군에서 태어났다. 은덕군의 옛 이름은 경흥군이다. 내가 태어나 한 달 뒤인 1977년 9월 ‘경흥군’이 ‘은덕군’으로 개칭되었다. 학송리에 남한에서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려진 그 유명한 ‘아오지탄광’이 있다. 공식적인 정확한 이름은 ‘6월 13일 탄광’이다. 4살 때부터 평안북도 선천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선천장독공장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1993년 8월 선천OO고등중학교를, 1996년 가을 청진철도전문학교(2년제)를 졸업하였다. 이후 청진철도국 열차승무대 열차원(승무원)이 되었다. 사회여성들 속에서 철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열차원이 되는 것은 일반 주민들에게 있어서 꿈같은 직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인기가 좋은 직종의 하나다.

 

- 열차원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지.

열차원은 한 객차(좌석 90석 정도) 당 2명씩 배치된다. 객차내부 정리정돈과 청소, 손님 중 불편사항 관찰 및 발견, 승객들에 대한 차표검열 등을 전문으로 한다. 열차 운행 중 양쪽에서 열차원이 손님들의 차표를 꼼꼼히 검열하는 방식이다. 무임승객을 적발하면 지정된 역에서 하차시킨다. 손님들은 열차원의 자리까지 뇌물을 주고 이용하는 형국이니 승객들에게 큰소리 탕탕치는 열차원이다.

 

- 무임승차 손님이 그렇게 많은가.

내가 열차승무대에 입직한 1996년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객차 당 정원 초과인원이 기껏 5~6명 정도였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7년과 ‘고난의 강행군’이 있은 1998년에는 사정이 확 달라졌다. 정원에 무려 4~5배에 달하는 승객들이 무임승차로 열차를 이용하였다. 승객 전부는 생계를 위해 장사를 다니는 사람들인데 보통 자기 체구만한 커다란 짐을 2~3개씩 갖고 다닌다.

 

-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준다면.

승객들로 꽉 찬 열차 내부는 허약자들이 질식되어 죽을 정도이다. 실제로 하루에 2~3명 정도 질식되거나 혹은 승객들의 발길에 짓밟혀 죽는다. 시신은 발견되면 무전기로 다음 정차역에 알려주고 시신을 그 역에 내려놓는다.

차량 유리창은 전부 깨졌고 승객들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비닐을 창문에 가리고 추위를 견딘다. 열차 지붕에도 무임승차 승객이 꽉 찬다. 열차가 터널에 진입할 때는 몸을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 허리를 조금 폈다가는 고압선이나 겨울철 터널천정에 매달린 고드름에 부딪쳐 죽는 경우가 다반사다.

 

- 철도 이용자가 많은 이유가 뭔가.

북한에서는 전국 지역을 합법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철도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며칠에 한두 번 정도 도(道)와 군(郡) 안에서 운행하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원유사정으로 모두 정지되었다. 화물차 적재함에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은 보통이지만 그 화물차도 귀한 보물단지 마냥 흔하지 않다.

 

- 당시 승무했던 열차는.

청진-무산-평양 행 제13, 14열차였다. 평양으로 갈 때는 열차번호 13이고, 반대로 평양에서 청진으로 올 때는 열차번호 14가 된다. 청진에서 무산까지는 완행으로, 무산에서 평양까지는 준급행(중간급 급행)으로 운행한다.

청진을 떠나 종착역인 평양까지 걸리는 시간(정차시간 제외한 운행시간만)은 23시간이고 평양에서 무산까지 오는 시간은 19시간이다. 그런데 열차가 운행시간보다 정차시간이 더 오래되어 무산에서 평양까지 7일간 소요된다.

 

- 정차의 기본 원인은 무엇인가.

정전(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 때문이다. 짧으면 3시간, 길면 10시간 이상 정차된다. 열차가 운행 중 정전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노천 삶터가 되는 것이다. 여름이면 그나마 나은 편인데 겨울에는 정말 죽을 맛이다. 열차칸 내부는 냉장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열기, 담배연기가 그나마 온도를 보장해준다.

 

- 열차 내부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우선 상급차(칸)와 침대칸이 있다. 상급차는 미닫이문이 설치된 4인 1실의 특별칸이 모두 10여 개 있는 차량이다. 주로 도(道)급 이상 단위의 간부들이 사용한다. 침대칸은 6인 1칸 부스의 자리가 10개 이상 있는 차량으로 이곳을 이용하는 승객은 모두 간부들과 돈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군인칸과 일반칸이 있다.

 

- 열차 안내방송은 어떤 내용인가.

열차가 출발하면 “즐거운 여행길에 오른 손님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본 열차의 담당열차원으로 이 열차의 종착역인 평양역까지 함께 갑니다. 손님들이 차 안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준칙을 알려 드리겠습니다”고 방송한다.

이어서 사회질서를 잘 지키라는 내용의 김정일의 교시를 낭독한다. 종착역을 가까이 할 때는 “손님여러분! 우리 열차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역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조선혁명의 성지인 평양은 주체조선의 수도로 세계 5대양 6대주의 사람들이 무한히 부러워하는 도시입니다”고 한다.

 

- 종착역에 도착 후 일과는.

13열차가 평양에 도착해서 14열차로 무산을 향해 출발할 때까지 옹근 하루하고 반나절의 시간이 있다. 이 시간에 쉬기도 하고 평양시내 구경도 할 수 있다. 공원, 극장, 유원지 등을 찾아 휴식할 수 도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배부를 때 하고픈 행동이다. 열차원도 그 시간에 열심히 장사를 하는 것이다.

 

- 무슨 장사를 어떻게 하는가.

북한에서는 열차원만큼 공개적으로 크게 장사를 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주로 평양에서 식량을 사서 청진으로, 청진에서 평양으로 중국산 공산품을 열차에 실어 운송한다. 그러면 보통 적게는 20%, 많기는 50%의 이윤을 남긴다.

고난의 행군시기 열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차운송 장사를 하였으며 돈 없는 열차원은 남의 짐을 운송해주는 운임이라도 받을 정도였다. 당시 “열차원의 가정은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 탈북동기를 말해준다면.

2002년 1월 중순 쯤, 5년 전 중국으로 먼저 탈북한 언니한데서 브로커를 통해 연락이 왔다. 다른 특별한 소리는 없었고 “그냥 돈을 주겠으니 회령 부근 두만강 지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귀가 솔깃하여 언니의 말을 따랐다. 중국 연변에서 언니 말대로 며칠을 있어보니 “세상에 북한 같은 독재국가가 없구나. 북한처럼 세뇌 교육하는 나라도, 가난하고 굶주린 나라도 세상에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 한국으로 입국 경로는 어떻게 되는가.

2개월 뒤 청도로 옮겨 거기서 수개월 머물렀다. 청도에서 ‘Happyi’ 회사에서 일할 때 한족들은 미싱을 하고 조선족들은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나는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검사일과 통역을 했다. 나는 완전한 조선족으로 신분을 감추었다. 2002년 6월 청도를 떠나 곤명,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12월에 한국에 왔다.

 

- 통일부 하나원 퇴소 후 생활은.

나를 수양딸로 삼아주신 OO교회 모 장로님과 권사님의 주선으로 남한남성과 결혼을 했다. 회사원인 남편은 성실했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마음만큼은 세상 최고남자다. 2005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 입학하여 2010년에 졸업하였다. 도중에 아이를 키우느라 1년 휴학했다. 이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신학대학원 M.DIV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2018년 10월 목사안수를 받았다.

 

- 신앙생활에 대해 말해 달라.

신앙은 탈북과정에 가졌다. 베트남에 머물고 있을 때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으니 죽으나 사나 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부터다. 2013년부터 ‘의정부신곡교회’ 교육전도사로 3년간, 2016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양주강북제일교회’ 전임전도사로, 이후 지금의 ‘의정부은혜하나교회’를 개척하였다.

 

- 의정부은혜하나교회를 소개한다면.

지난 2017년 8월에 설립된 ‘의정부은혜하나교회’는 의정부시 신곡동에 위치하고 있다. 교회 규모는 25평, 성도 절반이 탈북민이다. 나는 처음부터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지향했다. 개척한지 얼마 안 되어서 성도 수는 많지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물질과 욕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 고맙고 감사한 분이 누구인가.

신앙인으로 답하면 당연히 하나님이다. 저 지옥의 땅에서 벗어난 이 비천한 몸을 남한으로 안전하게 보내주신 분이 아버지 하나님이다. 남들이 하기 힘든 결혼도 빨리하고 금쪽같은 두 아이도 주셨으니 왜 고맙지 않겠는가? 자유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꿈만 같은데 이 행복 모두 하나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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