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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주리 병사의 고향과 인민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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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가 인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풍요한 들판과 마을에 물어보라/ 그러면 말해주리 농장을 도와 가꿔준 이삭들이/ 등에 업혀 물 건너간 유치원 아이들이...” 1980년대 많이 불린 북한가요 ‘말해주리 병사의 사랑’ 중 한 대목이다.

북한은 ‘하나의 대 가정’, ‘군민일치’를 강조하는 사회여서 군인과 인민의 다정다감한 모습이 흔하게 있다. 사회적 노동현장에 많이 동원되는 군인을 쉽게 접하는 인민들이어서 어쩌면 한 집안 식구 같은 마음이 더 드는지도 모른다. 북한에서 17살의 고교졸업생 다수가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에 입대하며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이라며 군인선서를 한다. 이후 장장 10~13년간의 군사복무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군사복무기간이다. 3만 탈북민사회에 인민군장교 출신은 흔치않다. 60여년 탈북군인(제대군인 포함) 역사에 군사칭호가 가장 높은 탈북민은 전 조선인민군 제9군단 262사단 포병부대 연대장 임강진 상좌다. 얼마 전 서울 모처서 그를 만났다.

 

- 자기소개를 해 달라.

1965년 2월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태어났다. 황해도는 벼농사의 대중심지로 북한 제일의 농업생산 지대이다. 형제는 6남매의 다섯째였고 부친은 사리원제2사범대학 철학과 강좌장(학과장)이었다. 1981년 4월 사리원 경암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8월이 졸업인데 인민군대 입대자는 4월부터 조기졸업 했다. 빨간 연장의 군복을 입고 처음으로 간 곳은 평안남도 개천군 소재 조선인민군 제208 탱크병 운전수 양성소(1년제)이다. 영예감이 대단했다. 전쟁이 터지면 남조선으로 제일 먼저 진군하는 탱크병은 가장 멋진 군종이다. 이후 제5군단 45사단 포병연대 2대대 4중대 탱크운전병으로 배치 받았다. 1985년 10월 김철주포병종합군관학교(2년제)를 졸업, 소위 군사칭호를 받고 소대장에 임명되었다. 91년 3월 상위칭호를 받고 중대장, 93년 2월 소좌칭호를 받고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대대장까지의 승진 및 이동은 모두 동(同)사단에서 진행된다.

 

-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1995년 여름,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에 주둔한 조선인민군 제6군단에서 다소 놀랄만한 사건이 터졌다. 군단정치위원(정치장교)이 군단장 몰래 보위부장(비밀정보장교)과 손잡고 중앙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사전에 정보원한데 첩보를 넘겨받은 인민군보위국장은 즉각 제6군단에 대한 특별검열을 실시하였고 다음해 7월까지 수많은 군관들을 제대시켰고 6군단을 해산시켰다. 그 자리에 9군단이 생겼다. 그때 전후방부대 교방이 있었고 나는 5군단 45사단에서 9군단 335방사포여단 대대장(소좌)으로 동격조동 되었다.

 

-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는데.

1997년 10월 북한최고의 명문 군사학교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였다. 굳이 비교하면 남한의 육·해·공군대학과 국방대학원을 합친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약 30만평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본 대학 군인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1계급 진급과 함께 상급직위에 배치되는 것이 기본이다.

 

-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준다면.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각급 부대에서 선발된 상위(남한의 중위와 대위 중간)에서 중좌(남한의 중령급)까지의 현역 군관을 입교대상으로 한다. 교육기간은 보병, 정찰, 포병병과의 경우 3년이며 통신, 공병, 화학병과의 경우 4년이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간부학습반(1년간)에서는 상좌(남한의 중령과 대령 사이 계급)이상 육·해·공군 고급군관들의 재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재교육의 내용은 김일성·김정일의 군사부문의 사상교시, 정세 및 직무분석 등이다.

 

- 이후 연대장이 되었는가.

2000년 10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제9군단 266사단 333연대 포병부연대장(중좌)으로 임명되었다. 2개월 뒤인 12월 26일 제9군단 262사단 포병연대 연대장(상좌)으로 임명되었는데 36살 때였다. 아마도 그 나이에 연대장으로 된 것은 조선인민군 전체적으로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 당시 부대 실태를 소개해 달라.

평상시 부대를 관리하는데서 가장 큰 애로가 원유(휘발유) 문제이다. 인민무력부(남한의 국방부)에서 내려오는 원유는 중간에 군단, 사단에서 모두 떼어 먹으니 연대, 대대에는 전혀 없다. 모두 자체로 해결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규정에 위반되지만 전투차(탱크, 장갑차 등)에 채워진 기름(휘발유)을 뽑아 쓴다. 전투차에는 1년에 한 번씩 대형군사훈련을 마치고 가득 채워 놓는다. 허나 그 기름은 몇 달씩 묵었기에 발효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 부대관리에 원유가 그렇게 많이 쓰이나.

훈련을 하려고 해도, 군사시설 건설에 참여하려고 해도, 심지어 군인들의 후방물자를 운반하려고 해도 꼭 필요한 것이 원유이다. 오죽하면 사회에 나가서 원유를 구입해올 수 있는 병사에게 특별휴가를 줄 정도이다. 정말이지 사람 사는데서 식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원유라는 사실을 연대장이 되고서 더욱 알았다.

 

- 원유 때문에 문제도 많이 생기겠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 내 운전병이 개인 중국무역 장사꾼들의 밀수품을 운반해주면서 뒷돈과 뇌물을 받았다. 그 돈으로 원유를 구입하여 내 차를 운행하기도 하였다. 나도 알면서 묵인했다. 그렇지 않으면 차가 움직이지 못한다.

2010년 7월 경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검열이 군단, 사단을 거쳐 내가 속한 연대까지 내려왔다. 검열에서는 비사회주의(부정축적, 뇌물수령 등), 전투력실태 등을 점검한다. 여기서 내 운전병의 그간 비리가 발각되었던 것이다.

 

- 어떤 비리이고 어떤 처벌인가.

내 운전병이 운반한 밀수품에는 중국서 유입되는 알판(남한의 드라마, 영화, 음악CD)도 있었다. 사회 보위부에서 밀수꾼들을 수사하던 중 운전병의 비리가 탄로 났다. 다른 물건과는 달리 알판은 신중하게 처벌한다. 기타 문제로 하여 무산에 주둔해있던 3개 연대(보병, 방사포, 포병) 연대장이 동시에 철직 제대하였다.

 

- 그때의 심정을 말해준다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근 30년 군복을 입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는데 연대장 철직 제대이니 말이다. 내 운전병이 자신을 위해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국가공급이 없는 원유 때문에 그랬다.

정말이지 탱크를 몰고 군단지휘부를 파괴하고 싶은 불같은 마음까지 불쑥 들었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생으로 꼭 사단장, 군단장까지 하고 싶었던 나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 얼른거려 굳세게 참았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두 자식의 구만리 같은 앞날을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지더라.

 

- 배치 받은 사회 직장은 어딘가.

2011년 1월부터 무산광산연합기업소 대상설비과 양성과장으로 근무했다. 군대에 있다가 사회에 나와 보니 눈이 딱 감겼다. 어려운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기업소의 생산라인이 절반 이상이 가동을 멈춘 상태이고 이것도 원유가 문제였던 것이다. 사회에서는 노골적으로 원유 해결 자에게 공식휴가를 주었다.

 

- 탈북을 결심과 경로는.

제대할 때부터 남 몰래하였다. 과거 인민군 연대장 경력을 가진 내가 탈북을 한다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북한에서 몰래 알기로 탈북군인 중에는 소좌도 없었는데 비록 제대군인이지만 나는 상좌였던 것이다. 내가 군복을 벗은 뒤로 처제가 먼저 탈북을 하였다. 훗날 알기로 처제는 나 때문에 그나마 늦게 탈북했다고 한다. 내가 가족과 함께 탈북할 결심이 섰을 때 처제가 브로커를 고용하여 탈북루트를 만들었고 그 길에 들어섰다. 2013년 10월 3일 늦은 밤 무산에서 물살 사나운 두만강을 건넜다. 대기하고 있던 봉고차에 탑승하여 6~7시간을 달려 곤명에 도착하였다. 라오스 국경을 지나 메콩강을 건너 10월 10일 태국이민수용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일정 기일을 지나서 2013년 11월 22일 인천국제공항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도착하였다.

 

- 그동안 어떤 일을 하였나.

세 식구가 탈북하다 보니 브로커에게 근 1000만원의 빚을 지고 왔다. 그것을 갚느라고 사회에 나온 첫날부터 건설현장, 제조공장, 대형음식점 등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을 하였다.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유가 있는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3년 전부터 충청북도 청주에 내려가서 대게음식점을 하고 있다. 직원 6명과 함께 일하는데 5명이 탈북민이다. 그중 남자 2명, 여자 3명이다. 남과 북 두 사회에서 모두 사람관리를 해보지만 아무래도 남한에서 좀 더 힘들다.

 

- 국군과 인민군인을 비교한다면.

글쎄, 군사장비는 남한이 상당히 월등하겠지만 군인들의 정신상태는 인민군이 우월하다고 본다. 인민군대는 군인선서를 하고 자기 몸을 국가에 바쳤다고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국군은 부모나 연인을 만나러 외출을 하고 또 요즘은 일과 후 휴대폰게임도 한다니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도무지 군대 같아 보이지 않는다.

 

-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2011년 봄 무산에서 행방불명 된 딸의 소식을 모른다. 두만강을 건네준 브로커와 중국 심양에서 보았다는 탈북민이 있었다. 아마도 중국 어디에 있으리라 본다. 중국에는 아직도 19세기처럼 세상과 단절된 미개한 지역도 많다.

그 딸을 찾고자 우리 부부가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또 어떻게 하면 딸을 찾을까 해서 TV에도 가끔 출연하여 내 존재를 알리고 있다. 하루빨리 딸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우리를 알고 이곳 한국으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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