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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5도민’과 ‘이북9도민’ 이름이 맞다

 

통일인터뷰.jpeg

 

남한 사회에는 3만 탈북민을 지칭하는 이름이 ‘귀순자’ ‘자유민’ ‘새터민’ ‘통일인’ ‘하나인’ 등 10여 개도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탈북민 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공론이 있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등을 쓴다.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탈북자’ ‘탈북민’ 등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분명 탈북민은 물론 미래세대에도 부담이 된다. 분명히 “먼저 온 통일”이고 함께 살아야 할 동포라면서 그들에게 ‘탈’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탈북민 사회에 예전부터 ‘탈북민’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이북9도민’ 이라고 강력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인민군 군관(장교) 출신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 임영선 이북9도민정착위원장이다. 시간이 지나 공감하는 사람도 다소 있다. 북한사회를 뛰쳐나온 3만 탈북민이 대한민국에 산다. ‘이북5도민’ 이라고 불리는 실향민들과 함께 말이다. 남한으로 온 시기만 다를 뿐 같은 이북고향 사람들이다. 얼마 전 서울 모처에서 임영선 이북9도민정착위원장을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평양에서 1964년 7월 태어났고 형제는 3남 2녀였다. 부친은 ‘평양체육관’ 시공설계를 맡은 건축가였는데 공사마감 총화에서 수훈에 누락되었다. 그에 반발이 결국 반당적 문제가 되어 내가 12살 때 온 가족이 함경북도 연사군으로 추방되었다. 부친은 그곳에서 분을 삼키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고 모친은 주부였다.

 

- 인민군대에는 언제 입대했나.

1980년 청진시 군사동원부에서 입대했다.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 군사건설국에 발령받았다. 본부가 평양에 있는 이 부대의 주요임무는 유사시에 이용할 전략기지들을 비밀리에 건설하는 것이다. 거기서 모범적인 사병생활을 거쳐 7년 뒤 강건군관학교 강습반(12개월)을 나왔고 1988년 본부대 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당과 수령을 위해서 이 한 몸도 불속에 던지리라 열의가 끓던 시절이었다.

 

- 북한군에서 반체제 활동을 한 걸로 안다.

강건군관학교 시절 동료들로 결성된 비밀단체가 있었다. 호위총국 출신 A씨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김일성도 만탄창이 장전된 권총을 든 우리 앞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이 나라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A씨와 함께 내가 주도하여 우리만의 비밀조직 ‘구국항쟁위원회’를 만들었다.

 

-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1993년 4월 어느 날, 김일성이 만경대(김일성 생가지역)로 자기조상 성묘를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거사를 준비했다. A씨가 저격을 맡고 나는 전단을 맡았다. 허나 황당하게 당일 A씨가 술에 취에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북한의 특정 지역을 다니면서 “김일성은 죽었다!” 내용의 전단을 뿌렸다. 3개 팀으로 16명이 움직이었다. 모두 강건군관학교 동기들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내가 보위부로부터 은밀히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탈북동기와 경로는 어떻게 되나.

군인신분으로 비밀리에 황해도 지역에서 반체제전단을 뿌린 사실 하나만 갖고도 나는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즉각 총살형에 처해진다. 허나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1993년 7월 중순 압록강 일대의 여러 지역을 탐문했다.

당시 보위부에서 나의 행불을 확인하고 국경봉쇄 특별경비 명령을 하달했다. 2주간을 시도하던 끝에 압록강도하로 탈출에 성공, 조선족 동포를 만나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을 경유하여 1993년 8월 10일 서울로 왔다.

 

- 서울생활 초기를 말해 준다면.

1994년 현대건설 건축부에 입사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경제학를 졸업하고 다시 현대건설 재무팀에 복직했다. 남한에서 자유는 가졌는데 엄격한 통제규율 속의 직장생활은 어쩐지 육신의 자유가 없는 북한과 똑같았다. 고민 끝에 2001년 회사에 사표를 냈으며 이후 탈북민구출, 무역, 제조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시작했다.

 

- 이북9도위원회는 어떤 단체인가.

실향민 사회를 대표하는 ‘이북5도위원회’가 있듯이 탈북민사회를 대표하는 ‘이북9도위원회’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2011년 11월에 만들었다. 나는 탈북민의 권익과 정착 등을 위해 우리 서로가 도모하는 공동체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일부 탈북민들이 들어와 훼방을 놓는 바람에 정식 발족은 하지 못했다. 어느 조직이나 집단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있기 마련이다.

 

- 그러면 현재 사무실은 없겠다.

초기에는 여의도에 40평 규모로 사무실을 마련했었다. 허나 임대료도 제대로 못내는 수준이어 나왔다. 단체를 운영하는데서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탈북민들은 돈도 없으니 제대로 된 단체 하나 만들기도 사실은 매우 버겁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임의의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단체 규정과 정관 등은 완벽하게 되어 있으며 인터넷상에서는 비교적 잘 되어 있다. 그래도 만나서 소통하고 화합을 다지려면 적도라도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 통일부가 탈북민담당 부처로 비 적합한가.

당연하다. 통일부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적 분야의 대북부처이다. 우리 탈북민은 북한을 벗어난 사람들인데 왜 대북부처에서 관장해야 하는가? 실향민(이북5도민)들은 행전안전부에서 관할한다. 실향민과 탈북민은 남하한 시기만 다를 뿐 동향인 이북사람이다. 우리도 똑같이 행정안전부에서 관할해야 한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한국에 현재 베트남, 태국, 중국 등 동남아에서 일하려 혹은 시집 온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정착지원금 안줘도 잘 정착하고 돈을 잘 벌고 있다. 그런데 탈북민은 뭔가? 정착지원금 준다면 관리를 하고 있다.

임대아파트를 배정해주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냥 얼마간의 정착금을 주고 알아서 살라고 해도 잘 사는 사람들이 바로 탈북민이다. 설령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지옥의 땅 북한에서 살던 것과는 여기 남한이 천국이다.

 

- 이를테면 탈북민 문화권 소리인가.

그렇다. 한국에는 현재 각 나라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들의 문화권이 지역별로 잘 형성되어 있다. 경기도 안산, 서울 영등포와 광진 등 지역마다 외국인들의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그 문화권은 분명 그들의 정착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 탈북민들도 우리만의 문화권이 있어야 한다. 단점도 있겠지만 장점도 있다.

 

- ‘이북5도민’과 ‘이북9도민’은 어떤 차이인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실향민을 ‘이북5도민’ 이라고 한다. 김일성 공산당 집권시기인 이북5도 체제는 해방 후 존재했던 이북의 행정체제이다. 쉽게 말하면 이북5도 체제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해서 ‘이북5도민’ 이라고 한다.

우리 탈북민은 엄연히 이북9도민 체제에서 내려왔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이북9도민’으로 불러야 합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통일부나 행정안전부에 가서 관계자들에게 이에 대해 말해보라 하면 모두 꼬리를 감춘다.

 

- 그러면 김일성이 만든 이북9도를 인정하자는 건가.

이북5도는 일제시기에 만들어졌다. 어쩌면 일제문화를 청산하면서 이북9도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밀히 해방 후 이북5도 체제는 김일성 체제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김 씨 수령이 통치하는 이북체제이다.

지금처럼 ‘탈북자’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등 ‘탈’자가 들어간 이름은 어쩌면 ‘범죄’에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탈주자’ ‘탈영병’ ‘이탈자’ 등의 표현은 UN과 국제사회에서 중국 내 있는 탈북민들 난민인정요구에도 걸림돌이 된다.

 

- 듣고 보니 그렇다.

우리는 이 땅에 와서부터 평생토록 듣는 ‘탈북자’이어서 감각이 무디지만 남한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럽고 경계해야 할 이름이기도 하다. ‘탈북자’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황장엽 전 탈북자동지회장이다. 이전에는 귀순자, 이탈주민 등으로 썼는데 1998년 ‘탈북자동지회’를 창립하면서 공식 사용하였다. ‘귀순자’라는 말은 투항했다는 소리이고 ‘탈북자’라는 말은 북한체제를 탈출했다는 뜻으로 정치성이 짙다.

 

- ‘실향민’과 ‘탈북민’의 차이는 뭔가.

‘이북5도민, 실향민’ 이라는 이름에는 정치성이 없다. 그런 것 없어도 이 땅에 잘 정착하고 살아 왔다. 우리는 왜 꼭 ‘탈북자, 이탈주민’ 같은 이름을 갖고 살아야 하나? 이는 남북분단을 악용하는 정치인들의 처신에서 비롯되었다.

탈북민도 이 땅에 들어오면 일반 외국인과 별 차이 없이 법무부에서 신원조사 간단히 하고 행전안전부 산하 각 도·시·군 지역으로 보내어 정착시키면 된다. 탈북민 타운 같은 것이 생기면 오히려 그것이 정착에 도움이 된다.

 

- 북한이 외국과 달리 특수하지 않나.

북한은 남한의 한 개 군(郡)의 재정자립에도 못 미치는 가난한 나라이다. 세계경제순위 10위권의 한국이 세계 10대 빈곤국가에 가까운 북한에게 쩔쩔 매는 것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 해 약 1.000명의 탈북자가 입국하는 지금의 방식을 바꿔 한 해에 1만 명씩은 입국 시켜야 한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한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이지 탈북민정책은 근 40년 전에 세워진 케케묵은 조항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당시는 귀순자(탈북민)를 정보입수, 자유민주주의 체제 우월성 홍보에 적극 이용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군이나 경찰 등 공안기관에서 전담했다.

지금도 똑같다. 우리나라에 수백만의 외국인이민자 및 노동력이 들어와도 공안기관 안 거쳐도 전혀 문제없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탈북민은 정보수집용이 아닌 노동력해결 일환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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