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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산태양궁전’에 바친 인민의 피땀

통일인터뷰.jpeg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북한의 건국자 김일성이 급사했다. 원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 평양에서 김일성은 5천년 민족사에서 가장 애국적이며 세계와 인류사의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런 위인도 죽으니 사람들은 놀랐다. 10일간의 애도기간이 끝나고 생전 김일성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은 김일성 시신보관소인 ‘금수산기념궁전’으로 탈바꿈했다. 최고의 건축자재와 재료를 들여 100년이 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호화롭고 멋지게 건립되었다.

나는 평양에서 살 때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당국의 지시에 따라 ‘금수산기념궁전’ 수목원 식수노동에 참여하였다. 다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본 ‘금수산기념궁전’ 건물은 황홀하고 웅장한 자태를 봐도 감탄이 절로 날 정도였다.

탈북민사회에 평양의 ‘금수산기념궁전’ 개건공사(리모델링)에 참여한 사람이 있다. 송철남 쌍용자동차 시흥목감영업소 과장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모 탈북민단체 여름수련회에 참가한 송철남 과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기소개를 해 달라.

1967년 8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3남 1녀 중 내가 장남이다. 아버지는 회령식료품가공공장 통계원(회계사),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1983년 8월 회령남자고등중학교를, 1985년 12월 청진철도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86년 1월부터 청진철도국 회령객화차대중대에 배치 받아 근무했다. 사실 나는 군대보다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남포체육학원’ 입학시험을 쳤는데 아쉽게도 부결되었다. 회령에서 고등학생 아이스하키선수인 나를 포함해 3명이 시험을 봤는데 2명은 합격되고 나만 탈락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1948년 남조선(한국)으로 월남한 것이 문제였다. 그 ‘반동이력’으로 인해 아버지도 나도 당원이 되지 못했고 북한사회에서는 그것이 정말 수치였다.

 

- 북한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가.

직장생활 6개월 뒤, 수도(평양)건설총국 철도여단 삼봉대대 2소대장으로 임명되었다. 1986년 6월이었다. 당시 평양에서 열릴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사회주의나라 청년들의 최대국제행사) 준비로 대규모 건설이 진행되었다. 철도여단이 맡은 대상물 공사는 광복거리 42층 아파트 건설이었다. 1개 대대 인원은 대략 600~700여명. 약 900세대(가구)인 42층 아파트 건설에 4.000~5.000명이 동원되었다. 기계가 없어 대부분 사람의 힘으로 한다.

 

- 이후 어떤 직무를 수행했는가.

1987년부터 1년간 자재 인수원(각종 건설자재 및 재료 조달 담당자)을 거쳐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후방참모(식료품 및 생필품 조달 담당자)로 일했다. 후방참모는 인기 있는 직종이다. 600명 이상 되는 돌격대원(대략 20~30대 나이의 건장한 사람들, 남자 60% 여자 40%)들의 부식물 조달은 쉽지 않은 일이다.

 

- 물자구입 방법을 말해준다면.

국가에서 돌격대원들에게 주는 것은 쌀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행표(국가돈표, 남한의 어음수표)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갖고 식료 및 생필품공장 등에 가면 물건이 있어야 말이지. 그것도 인맥을 통해 먼저 받아간다.

그러니 우리는 그 행표를 평양시내 각 구역직매점에 가서 1.000원을 주고 700원의 현금을 받아온다. 현금은 어디서나 환영이다. 농장에서는 행표를 비교적 잘 받는다. 그런데 사람이 야채만 먹고 어떻게 일하겠는가.

 

- 지방출장을 많이 다녔겠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자재와 후방물자를 조달해 와야 했다. ‘고난의 행군’시기 사리원으로 출장 갔는데 역전에서 꼬마들이 김정일 찬양노래를 부르며 구걸행위를 하더라. 씁쓸한 풍경이었다. 또 언제인가 함흥에 출장을 갔는데 세숫물 파는 여인들의 모습도 보았다. 그걸 보면서 마음만 아팠지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미제와 남조선괴뢰들 때문에 경제제재를 받는다는 노동당강연을 항상 듣기 때문이다.

 

- ‘금수산기념궁전’에 대해 말해 달라.

1977년 4월에 준공한 이 건물의 본래 이름은 ‘금수산의사당’(일명 주석궁, 김일성의 집무실 겸 종합생활시설)이었다.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에 소재한 궁전은 총 부지면적 350만㎡, 지상 건축면적 34.910㎡의 석조 건물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 시신보관 및 기념관)으로 바뀌었다. 단지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시설의 안 밖은 물론 주변의 환경(녹지, 호수)까지 전부 바뀌었다.

 

- 궁전 개건공사(리모델링)를 어떻게 하였나.

금수산의사당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집무실과 생활시설인 청와대나 같은데 그것을 영구적인 김일성 개인역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건물 내·외부를 통째로 새롭고 현대적인 시설로 교체하였다고 보면 된다. 1996년부터 기본공사는 1년 6개월, 보조공사는 5~6년, 모두 7년간 진행되었다. 나는 5년간 참여했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수도건설에 동원된 각 여단에서 20명 씩 선출된 600명의 돌격대원들은 민간인으로 최고의 기술자로 엄선된 인력들이다. 궁전 경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00% 군인건설자(현역 군인 사병)들이었다. 그 인원은 민간인의 10배 이상은 되었다. 경내 건설장에는 공사차량도 철저한 확인을 거쳐 입출입이 가능했다.

 

- 특이한 작업 모습이 있었다면.

생전에 김일성이 타던 특별열차 1개 차량이 궁전 내부에 있다. 그걸 건물 안에 들이기 위해 한 쪽 벽면을 헐었으며 대형크레인 4대가 들어 2층으로 올렸다. 또한 김일성이 사용하던 벤츠리무진, 유람선도 같은 방식으로 올렸다.

금수산기념궁전 경내(뒷마당) 특정지역에 커다란 지하공사장 입구 같은 것이 보였다. 주변에는 군인들이 24시간 무장보초를 섰으며 아마 유사시에 김일성의 시신을 지하로 대피시키기 위한 시설이 아닐까 한다.

 

- 공사장에서 맡았던 일은.

우리가 맡았던 공사는 넓이 10만㎡ 광장바닥 작업이었다. 천연화강석 70만개를 20여 가지 모양의 규격으로 다듬어 깔아놓았다. 광장바닥은 탱크가 지나가도 파괴가 안 될 정도로 최고의 재질 화강석으로 되었는데 이유가 있다.

최고사령관(김정일)이 조국통일개시 명령을 내리면 영웅적 인민군장병들이 이 앞을 지나가며 수령님(김일성)께 보고를 올리고, 전승의 그날 승리의 열병식도 바로 이 광장에서 한다고 군인과 건설자들에게 선전하였다.

 

-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1997년 12월 중순 경 어느 날, 김정일이 현장시찰을 나왔다. 시간은 약 10분 정도. 다음날 간부(금수산기념궁전 초급당비서)가 나와 우리의 생활실태를 확인했다. 공사기간 우리는 900그램의 식량과 2~3일에 한 번 씩 돼지고기, 두부, 콩나물, 김치, 미역국 등 배불리 공급받았다. 그런데 간부가 “이렇게 부실하게 먹고 어떻게 일하냐?” 했고 이후 1인당 300그램의 빵과 열대과일, 초콜릿 등이 공급되었다.

 

-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그 간부는 생전에 김일성을 모시던 책임간부였다. 김일성 사망 후 영원히 김일성을 모신다는 의미에서 그 직책에 임명된 것이다. 수령을 가까이 하는 최고위 간부일수록 세상 물정에는 너무도 모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인민들은 하루 100그램의 죽도 없어 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사는데 말이다.

 

- 보조공사는 어떤 것이 있었나.

궁전지역 일부를 감싸 흐르는 인공적으로 만든 강이 있다. 유사시에 적의 탱크나 기계부대가 침범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강을 더 깊이 파고 강변로에 천연화강석을 깔았으며 주변에 10만평의 수목원이 조성되었다.

시내에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가는 노정에 왕복6km 구간 궤도전차(트램) 노선을 깔았다. 건설자들에게 ‘금수산기념궁전’은 적들의 원자탄 공격에도 전혀 끄떡없이 설계 및 시공된다는 노동당 특별강연이 수차례 있었다.

 

- 지금에 와서 어떤 마음이 드나.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 후방물자 구입 차 지방을 많이 다녔다. 지방 인민들은 쌀이 없어 굶어죽는데 죽은 수령의 시신을 세계 최고의 수준에서 보관한다며 거액의 나랏돈을 퍼부어 ‘금수산기념궁전’을 건설한 북한당국에 분노한다. 참고로 2011년 12월에 사망한 김정일의 시신도 궁전에 들어갔고 이듬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다시 리모델링했는데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이다.

 

- 탈북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16년간 평양건설 생활을 마치고 2001년 고향인 회령으로 내려와 철도객화차대 기술검사로 일을 했다. 직장에는 돈을 바치는 대가로 출근을 안했고 대신 중국인들과 희금속장사를 하였다. 그 와중에 한국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2009년 5월 23일, 탈북을 희망하는 7명의 북한주민을 인솔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연길에서 5일간 보내고 9일 만에 태국에 입국했다. 거기서 한 달 보내고 7월 10일 마침내 남한으로 왔고 11월 중순 하나원을 나왔다.

 

-남한에서의 생활이 궁금하다.

6개월 기간의 전문학원을 다녀 회계사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자격증이 있으나 취업은 무척 어려웠다. 2015년 9월 탈북민들과 함께 NK하나사랑협회를 만들어 4년간 운영했다. 올해 3월 지인의 소개로 현재 회사(쌍용자동차 시흥목감영업소)에 취업했다. 남한에서는 열심히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변에서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정착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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