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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고마움에 봉사로 보답해요"

통일인터뷰.jpeg

 

북한당국은 “사회주의 제도에서 60청춘, 90환갑을 누리는 공화국 인민들” 이라고 선전한다. 참고로 그 ‘위대한 수령’ 김일성은 82세, 김정일은 69세에 사망했다. 당국이 정치적으로 애써 선전하는 ‘90환갑’도 못 맞고 저승으로 갔다.

필자가 살아봤지만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1년에 서너 번의 국가명절 때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보기 힘든 실정이다. 그러니 여성과 어린이 40%가 영양실조, 일반주민 60%가 하루 두 끼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형국이다.

북한도 근로자가 60세 정년이다. 60세 성인 중 과반이 머리카락이 희고 허리가 구부정하다. 평생토록 영양부족으로 살았으며 질병이 생겨도 제때에 치료를 못 받는 원인도 있다. 전형적인 후진국의 사회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은 65세 이상 노인들에 한에서 국가의 부담으로 건강관리를 지원해주고 있다. 노인요양보호 분야에서 일하는 탈북민들도 다소 있다. 얼마 전 인천 논현동에 위치한 ‘예사랑노인주야간보호센터’를 찾아 임예진 대표를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함북 어랑에서 1975년 5월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OO기계사업소 기사(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친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인민군군인으로 남한지역에 내려갔다가 불행히도 포로가 되어 ‘포로맞교환’으로 귀환하였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는 노동당 입당도 못하고 항상 우울한 표정이었다. 또한 나도 1991년 8월 고등중학교 졸업성적이 좋아 학과경연에서 도(道)적으로 우수해 평양기계단과대학에 추천 받았으나 학교 내에서 부결되었다.

 

-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1995년 4월 어랑기계전문학교 자동차공학과를 졸업하고 청진여객자동차사업소에 배치 받았다. 버스차장, 사령실경리 업무를 1년 정도 하였다. 이후 청진시 수남구역 인민위원회 군수동원과 상무로 3년간 근무했다. 맡은 업무는 유사시 자동차부품 조달 및 관리에 대한 체계를 현장에서 점검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 탈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열심히 일해도 밥 먹고 살기 힘든 북한사회에 실망했다. 그러던 중 중국보따리 장사꾼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중국에 가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에 2005년 초겨울 4촌 여동생(22세)과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넜다.

브로커의 안내로 위생저가락공장에 취업했으나 주변 환경이 너무 불안하여 2개월 후 탈출하여 목단강으로 이동했다. 목단강서 조선글(한글) 간판을 찾아 방황하던 중 어느 교회에 들어갔고 거기서 8개월간 생활하였다.

 

- 남한에는 언제 왔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당국은 탈북자 색출에 여념이 없다. 내가 체험했지만 탈북자 신분으로 중국에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다행히 한국선교사와 중국지인의 도움으로 20명(여 17명, 남 3명)의 탈북자가 그룹이 되어 중국-몽골 국경을 넘어 울란바토르로 갔고 2008년 8월 서울에 왔다.

 

- 남한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는가.

내가 북한에서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어르신 돌봄을 위한 사회복지학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숭실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에 편입하여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하여 2015년 2월에 졸업하였다.

이듬해 3월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관리 석사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서 그 놈의 출신성분 때문에 전문학교(전문대) 공부도 겨우 했던 내가 남한에 와서 대학공부를 실컷 했다.

 

- 예사랑노인주야간보호센터를 소개해 달라.

3년 전에 설립하여 주로 복지대상 가정을 방문하여 노인들을 위한 재가복지 서비스를 진행하였다. 재가복지 사업을 하면서 통합재가 서비스의 필연성을 절실히 느꼈고 사업장을 7월 초에 호구포역 근처로 이전 확장하였다. 어르신들의 다양한 욕구에 초점을 맞춰 낮 동안 돌봐드리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기존의 사업장은 15평, 이곳은 105평 규모이다. 지자체 사업승인도 어르신 생활시설로 적합해야만 허가된다. 어르신들의 인지 및 신체활동,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서는 각종 시설을 갖춰 놓아야 한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준다면.

노인보호센터는 쉽게 말해서 ‘어르신유치원’ 이라고 보면 된다. 때 식마다 어르신들이 식사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어야 한다. TV시청을 하고 가벼운 운동과 레크리에이션 등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요가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에 안마기, 물리치료기, 족욕기, 러닝머신 등이 구비되어 있다.

 

- 어르신들의 센터 입소 기준은 따로 있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장기요양판정을 받은 요양등급을 가진 65세 이상 어르신을 기본으로 한다. 간혹 65세가 안 되었더라도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이면 가능하다. 이런 경우 노인성 질병을 확인하는 서류가 구비되어야 한다. 정부의 사업 보조비로 운영되는 기관이고 시설이기에 정부의 점검이 까다롭다.

 

- 센터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오전 8시부터 아침송영이 시작된다. 어르신들을 차로 모셔온다. 도착해서부터 맨 먼저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이어 영양식을 드시고 30분간 체조, 그림색칠, 종이접기 등을 한다. 점심식사 후 1시간 정도 휴식한다.

오후에는 센터 내에 구비된 여러 시설을 이용하며 각종 물리치료를 받는다. 또한 외부강사가 와서 레크리에이션, 노래연습, 웃음치료 등을 한다. 저녁식사 후 저녁송영으로 어르신들을 집에까지 모셔다 드린다.

 

- 사업 현황에 대해 말해 달라.

현재 우리 센터에 등원(출근)해서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은 11명이다. 사무실에 사회복지사 3명, 간호조무사 1명, 요양보호사 2명, 조리사 1명, 운전기사 1명 등 모두 8명이 있으며 계약직 근로자이다. 대부분 탈북민이다.

우리 센터가 관리하는 가정방문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은 48명이다. 이들을 위한 방문요양 보호사는 30명으로 절반이 탈북여성이다. 한 가정에 보통 3시간, 하루 2~3가구를 방문하는 이들은 시간제 근로자이다.

 

- 어르신들을 어떤 마음으로 돌보나.

쉽게 표현하면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이라 할까.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먹으면 지능과 신체 동작이 저하된다.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규칙을 어기기도 한다. 직원들에게 어르신들을 돌보는데서 항상 부모님을 모시듯 정성과 친절을 다하라고 당부한다.

 

- 겸해서 운영하는 ‘통일한울회’를 소개해 달라.

지난 2014년 10월 친목동아리를 만들어 봉사와 친교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발했다. 내가 거주하는 인천에서 우리 탈북민들도 멋지게 봉사하며 사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초기 5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여러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회원 숫자가 늘어났다. 우리 탈북민들이 통일을 위해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겠다는 자긍심이 들어 시작한 ‘통일한울회’ 단체 설립 및 활동이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있나.

최근 계속하는 자원봉사로는 도시환경미화 활동이 있다. 매월 한 차례씩 지하철 소래포구역 주변에서 2시간 동안 담배꽁초, 휴지, 쓰레기, 캔 등을 줍는 일을 한다. 이 지역에 인천에서 유명한 수산시장이 있어 사람들이 항상 붐비고 그러다나니 버려지는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 이 일을 5년째 계속하고 있다.

 

-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매주 독거노인과 장애인의 집을 찾아다니며 사랑의 나눔과 집안일을 거들어주고 있으며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말동무를 해준다. 또한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들을 찾아가 위로해주는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통일합창대회에 2회 연속 출연하여 각각 인천시에서 1등과 시민평화상을 받았다. 매달 한 차례씩 노숙자 200명에게 무료급식 나눔 행사를 하며 해마다 김장김치를 직접 만들어 소외계층, 불우이웃 100명에게 나눠주고 있다.

 

- 가장 고마운 분은 누구인가.

거두절미하고 남편이다. 내가 남한에 와서 늦깎이로 대학공부 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하나뿐인 외동딸 양육과 가사 일을 도맡아하면서 날보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주었으니 그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학업을 마치고 정작 사회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해가 안 된다며 다소 화도 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나를 이해하였고 이제는 내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든든한 사업동업자가 되었다.

 

- 또 다른 분이 있다면.

이강호 인천남동구청장이다. 인천 남동구에 대략 1.800명의 탈북민이 있다. 이들에게 깊은 관심과 따뜻한 사랑을 갖고 계시는 이강호 구청장이다. 우리 단체 행사는 만사를 제쳐놓고 격려해주시려 오시는 고마운 분이다. 올해 7월 7일 센터사무실 이전식 행사는 휴일에 했는데 그날도 기꺼이 오셔서 축하해주었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한 달에 쌀 20kg만 있어도 부자로 생각하며 살았다. 여기 남한에서는 하루 벌어 자그마치 세 달분 쌀을 살 수 있으니 여기는 분명 ‘천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민의 지상낙원이 여기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굿은 일 마른일 가리지 말고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최선을 다해라. 뭐든지 준비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이곳 남한이 살 맛 나는 세상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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