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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성옥 모자(母子)의 명복을 빕니다”

통일인터뷰.jpeg

 

2019년 탈북민 사회에서 핫이슈는 여름에 있은 아사(餓死) 한성옥 모자의 비극이다. 서울 봉천동 임대APT서 살던 탈북여성 한성옥(42) 씨와 아들 김동진(6) 군이 아사한지 두 달 넘어 7월 31일 발견, 2주 후 언론에 보도되었다.

한성옥 씨는 김정은의 무능한 통치로 많은 인민이 굶어죽는 지옥의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태국을 거쳐 2009년 남한에 왔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하면서 10개월 만에 기초생활 수급자에서 벗어났을 만큼 희망이 컸었다.

8월 14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 주변에 ‘아사 탈북모자 추모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고(故) 한성옥 모자를 애도하여 일부 탈북민들이 자체로 설치했다.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많은 탈북민과 애국시민들의 추모 발걸음이 이어졌다.

9월 21일, 청와대 주변서 있었던 고 한성옥 모자 추모관련 문재인 대통령 규탄 집회는 66년 탈북민 역사에 초유의 사변이다. 이 행사에서 연설 방송 마이크를 잡았던 김충성 서울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를 시내 모처서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76년 2월 함흥에서 태어났다. 3형제 중 맏이다. 부모님은 함흥OO고등학교 체육교사였다. 1992년 8월 고등학교를 졸업, 조선인민군 수도방어사령부(91훈련소)에 입대했다. 이듬해 2월부터 조선인민경비대 7총국에서 근무, 1993년 8월 감정제대(의가사제대)를 했다. 우연히 대열(인사)참모, 군의소장과 담화 때 할아버지가 6·25전쟁 치안대원임을 알게 되어 ‘군복무 중 노동당 입당은 어렵겠다’고 직감했다.

 

- 제대 후 무슨 일을 하였나.

3년간 함흥체신소 선로작업반 전화수리공으로 근무했다. 1995년 4월 평양소재 ‘청년중앙예술선전대’ 모집에 합격했으나 가족경력에 ‘치안대’ 딱지가 있어 평양시 임시거주가 허용되지 않았다. 2년 후 ‘철도성예술단’으로 이직, 1년 뒤 ‘함경남도예술단’으로 왔다. 함흥예술대학을 통신(남한의 방송통신대학)으로 재학했다.

 

-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전국 노래경연대회서 2등 한 여가수가 있었다. 고난의 행군시기 예술극장 무대 커튼을 훔쳐 시장에 팔아 대략 쌀 20Kg 가격을 받았다. 이것이 정치·도덕적 문제가 되어 사상투쟁이 있었고 그 가수는 결국 예술단에서 쫓겨났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아버지 학교제자)이 구리(동) 30kg을 맡기고 800원을 빌려갔다. 약속한 날짜 며칠 지나도 오지 않아 내가 그걸 혜산으로 갖고 가서 9.000에 팔았다. 이때 처음으로 ‘금속장사’에 발을 붙였다.

 

- ‘금속장사’란 무엇인가.

고난의 행군시기 국경지역에서 중국인들이 구리를 비싸게 산다는 소문에 혜산지역 위주로 북한 전역에서 구리도둑이 번창했다. 각 지방서 장사꾼들이 원가 3~4배로 사들인 구리를 국경지역의 거간꾼(도매상인)에게 넘기면 7~8배 가격을 받았다. 금속이라고 하면 전화선, 고압전기선, 기계부품 등을 말한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이 일로 ‘나라의 동맥’인 철도가 멈추었고 ‘나라의 신경’인 통신이 두절되는 그야말로 최악의 국가 마비상태 지경에 달했다. 이런 비정상의 행태도 간부들은 책임이 두려워 중앙에 잘 보고 안 한다. 언젠가 김정일이 함경북도당으로 전화를 하다가 안 돼서 이런 일도 발각되었다. 대노한 김정일은 2000년 초 “금속에 손을 대는 자는 현장에서 총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로 사태가 다소 잠잠해졌다.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2000년 7월 ‘금속장사’를 하던 중 현장에서 안전원(경찰)에게 단속되어 혜산안전부에 수감되었다. 김정일의 방침에 따라 사형수 대상인데 너무나 분했다. 나라에서 식량배급을 안주니 먹고 살려고 밀수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새파란 청춘을 거두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깊은 밤 구류장 창살을 뜯고 탈출하여 다음날 국경을 넘어 중국에 입국했다. 장백현서 1주일 뒤 길림성으로 이동해 2년간 조선족교회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성경공부를 했다.

 

- 재입북 경력도 있던데.

2003년 5월 신앙을 갖고 북한에 갔다. 엄밀히 재입북이다. 중국에서 나를 파견한 선교사의 당부대로 혜산 모처서 가정예배를 봤다. 이후 함흥에서 모친에게 복음을 전하고 보위부 미행이 있음을 알고 같은 해 6월 재 탈북했다. 2004년 7월 중국, 베트남을 거쳐 서울로 왔다. 탈북민 460명을 태운 한국전세기 속에 있었다.

 

- 서울에서 경력은 어떻게 되나.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 연극 ‘더 라스트 월 비긴즈’에 배우로 출연했고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가수로 활동한다. 2015년 대신대학교대학원 졸업, 목사안수를 받았다. 2017년 미국 LA예수인신학대학원(2년제) 졸업, 2018년 “한국교회와 북한선교의 방향”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담임하는 서울예수생명교회는 올해 10월에 설립, 교인은 20명이며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섞여있다.

 

- 고 한성옥 모자 이야기 좀 해보자.

한성옥 씨는 2012년 중국에서 만난 남편을 한국으로 초청했고, 임신한 기간 남편의 폭행으로 뇌전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둘째아들 동진이다. 2017년 실직한 남편따리 중국으로 갔고 이듬해 남편과 이혼, 동진이를 데리고 서울로 왔다.

일자리도 없는 한성옥 씨가 의지했던 생명 줄은 동사무소에서 받던 아동수당 10만원과 양육수당 10만원, 총 20만원이다. 올해 1월 한 씨는 협의이혼 서류를 동사무소에 제출했으나 구체적이며 만족한 행정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 망자의 잘 못도 있지 않는가.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생전에 한성옥 씨는 엄마로써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해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하게 된 사회적 환경을 생각하면 이것은 분명 정부의 책임이라고 본다. “사람이 먼저다”는 현 정권의 복지정책의 허를 찌른 것이며 관련부처의 책임 떠밀기 식 탁상행정의 실패가 결국 복지 사각지대의 한성옥 모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본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7월 31일 한성옥 모자가 살던 봉천동 임대APT에 누수 현상이 있어 관계자가 아파트를 찾았다가 원인모를 악취가 발단이 되어 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수도요금 장기연체에 따른 단수조치로 식수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관리비가 수개월 연체된 한 씨 거주 임대APT는 보증금 547만원, 월세 9만원의 13평이다. 시신발견 당시 방안에 음식이 전혀 없이 냉장고에 고춧가루만 남았다. 5월 13일 은행통장에서 3.858원이 인출됐고 잔액은 0원이다.

 

- 탈북민들의 정부에 요구사항은 뭔가.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발생한 초유의 탈북민 아사 사건이다. 그것도 1년에 15조 원어치의 음식물 쓰레기가 버려진다는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말이다. 개도 배터지게 먹어서 다이어트 하는 이 나라에서 사람이, 그것도 ‘먼저 온 통일’ 이라는 탈북민이 굶어 죽었으면 정부의 책임도 분명하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 한성고 모자 아사에 조문을 하고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사퇴해야 한다.

 

- 정부(통일부) 측의 반응은 무엇인가.

지난 8월 14일, 탈북민들이 주축이 되어 광화문광장 주변에 설치한 ‘아사 탈북모자 추모 분향소’는 탈북민사회 대표성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통일부 및 남북하나재단)가 주도하여 탈북민단체와 합동으로 분향소가 세워져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를 다수 방문해 탈북민들의 의사를 전달했으나 통하지 않는다.

 

- 9월 21일, 청와대 앞 집회서 방송연설 했다.

그날 처음 광화문 분향소를 찾았다. 정오 즈음 분향소에서 청와대 앞을 향해 출발한 운구행렬 앞에 스피커가 달린 방송차가 보였고 직업 버릇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고 즉흥 연설을 시작했다.

탈북민에게 무관심한 이 사회에 우리의 존재감을 부디 알리고 싶었고 더구나 언론에서 별로 보도하지 않는 ‘고 한성옥 모자 아사’를 세상에 소리 높이 외쳤다. ‘사람이 먼저’고 ‘인권이 먼저’라는 현 정권의 책임이라 성토했다.

 

- 탈북민들 청와대 앞 집회는 역사적이었다.

9월 21일 토요일, 오후 2시~7시까지 청와대 주변서 있은 대통령 규탄 집회에 대략 50~60명의 탈북민이 참여했다. 몇몇 단체장이 번갈아 마이크를 잡고 현 정권에 대한 성토를 아끼지 않았다. 성난 탈북민들은 그날 이후에도 청와대 주변 2회, 통일부청사 앞 3회 집회를 했다. 10월 3일 청와대 주변 집회에서 경찰 저지선을 넘었다고 일부 탈북민이 몇 개 경찰서로 연행되어 갔으나 다음날 풀려났다.

 

- 매일 분향소 기도회를 인도하던데.

어쩌면 목회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매일 저녁 광화문광장 주변 분향소에서 8시 30분부터 9시까지 기도회를 갖는다. 여기서 고 한성옥 모자의 죽음이 3만 탈북민들이 단합되는 계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또한 북한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2.500만 동포들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살펴달라고 기도한다. 주일에는 11시 예배를 드리고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정도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탈북민 사회를 알리는 시민토크쇼를 진행한다.

 

- 목사가 보는 한성옥 모자 죽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생명체이다. 대한민국 국민과 탈북자는 인격적으로 조금도 다른 점이 없다. 오죽했으면 이번에 탈북민들이 혈서까지 쓰면서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는 구호를 연호했겠는가.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희생된 군인들이나, 자연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이나, 아사한 탈북민 고 한성옥 모자의 목숨이나 모두 귀중한 생명이다.

 

◆ 2019년 11월 28일 오후, 3일간의 애도기간을 거쳐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고 한성옥 모자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통일부(장관 김연철) 산하 탈북민지원기관인 ‘남북하나재단’과 서울 관악구청 직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유골은 무연고 사망 탈북민 전용 납골당인 ‘예원추모의 집’에 영구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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