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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자유한국당 영입 청년인재 1호

지성호 교체.jpeg

 

지난 2012년 봄, 제19대 총선(국회의원선거) 당시 2만 4천명 탈북민사회가 깜짝 놀랐다. 근 60년 탈북역사에 최초로 탈북민 국회의원(조명철, 경제학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4번에 발표되었다. 거두절미하고 탈북민 국회의원은 소중한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과 2천만 북한주민의 대표이다. 지난 19대에 이어 올봄에 있을 21대 총선에서 과연 탈북2호 국회의원이 나올지가 3만 5천명 탈북민사회의 관심이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국회에서 새해 첫 영입인사를 발표했다. 그 주인공은 2018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의회연설에 초대받아 목발을 높이 치켜들었던 탈북민 출신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 나우(NAUH) 대표이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북한인권 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도이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모처에 위치한 북한인권단체인 나우(NAUH)를 찾아 지성호 대표를 만났다.

 

- 자유한국당 영입인재 축하드린다.

고맙다. 1월 8일 국회에서 있은 인재영입 인사 환영식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받은 지 닷새가 지났는데도 다소 실감이 안 난다. 생각지도 않았고 설마 했는데 공식발표 3일 전에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그래도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세상에 공표한 것이라고 본다.

 

- 영입 과정을 말해줄 수 있는가.

지난해 12월 초순 경, 자유한국당 염동열 의원(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 측에서 전화가 왔다. 일정을 조정하여 국회에서 염동열 의원을 만나 북한인권, 탈북민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이후 수차례 만났다.

그동안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12월 중순 경 “앞으로 국회에 들어와 일을 해보지 않겠나?”는 제안을 받았고 다소 놀랐다.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한 주간 정도 고민하던 끝에 “해보겠다!”는 답변을 드렸다.

 

- 어떤 고민을 하였나.

내가 그동안 NGO 활동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느낀 점은 제도권(정치권, 행정부처 등)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활동을 하면서도 간접적으로 체감했다. 특히 입법기관인 국회의 영향력인데 국회의원의 힘이 정말 세다. 나는 탈북민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고 시민단체(NGO) 대표이다.

 

- 또 다른 고민도 했을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지금껏 어느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을 정도로 정치를 잘 모른다. 이번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며 한쪽으로 치우쳐 북한인권을 말하게 되지 않을까 다소 걱정했다. 북한 김정은 독재자의 발굽아래 노예처럼 살아가는 2천만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일에 정치권의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본다.

- 한국당에서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현 정부의 참담하고 비굴한 대북정책, 특히 2천만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모른척하는 문재인 정권에 맞설 적임자로 나를 선택한 것 아닌가 한다. 김정은 독재정권 하에 비참한 삶을 사는 2천만 주민의 인권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30대 청년, 거기에 장애인(지체장애 2급) 이라는 특성도 점수에 반영된 걸로 본다. 20명 영입인재 중에 첫 번째로 탈북민인 나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자유한국당의 2천만 북한주민과 우리 탈북민들에 대한 신뢰로 본다.

 

- 당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오는 4월에 있을 총선을 준비하며 여당에는 ‘새터민특별위원회’가 있는 줄 아는데 그에 비해 자유한국당에는 없는 것 같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도 3만 탈북민들을 함께 껴안는 훈훈하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는데 동참하려고 한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마음이다.

 

- 만약 국회의원이 되면 무엇을 중점으로 일하겠나.

비록 오랜 경력은 아니지만 내가 북한인권운동가 출신이니 당연히 북한주민들의 인권개선운동에 중점을 두겠으며 개점휴업 중인 ‘북한인권재단’을 속히 가동시키는데 노력하겠다. 그리고 탈북민들의 정착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겠다.

아울러 나는 한국당에서 장애인, 청년 몫으로 인재영입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장애인과 청년문제도 내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예정이다. 요즘 청년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보면 정말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것뿐이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82년 4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2남 1녀 형제의 장남이고 부친은 탄광노동자, 모친은 주부였다. 부모님은 정말 고지식한 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족이 먹고 살기위해 석탄도둑에 나섰다. 달리는 화물열차에 올라 자루에 석탄을 담아 외부로 던지면 어머니와 동생이 그걸 날라다가 개인한데 팔았다.

 

- 장애는 어떻게 입었나.

1996년 3월 어느 날, 달리는 열차에서 내리다 발을 잘못 디뎌 철로에 떨어지며 왼쪽 팔과 왼쪽 다리 무릎 위까지 절단되는 비극을 맞았다. 회령시인민병원에 입원하여 부분마취를 하고 팔과 다리를 봉합했으며 2주 만에 퇴원했다.

의수나 의족은 할 엄두조차 못 냈다. 당시 함흥에 ‘교정기구병원’이 있었는데 전문 의수·의족을 해주는 곳이다. 영예군인이나 돈 있는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의수·의족을 만드는데 나 같은 탄광노동자의 자식은 어려운 일이다.

 

- 이후 생활은 어떻게 하였는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회보장자(장애인)가 되었으며 소속 직장은 없었고 그냥 주거지에서만 생활하였다. 여전히 당국은 인민들에게 식량배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가만 앉아있으면 굶어 죽겠는데 그럴 수 없어 다시 지팡이를 잡고 석탄도둑에 나섰다. 그렇게 5년이나 생활하며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았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준다면.

2000년 여름, 식량구입 목적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인들이 팔다리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 쌀이며 옷을 잔뜩 주었다. 가져올 방법이 없어 쌀 5Kg만 가져왔는데 그것이 발각되어 분주(파출)소에 불려가 안전원한데 문초를 당했다.

그는 나를 마구 때리며 “너 같은 병신 놈이 중국에 갔으면 남조선 정보기관의 카메라에 찍혀 공화국의 망신을 시킨 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존함으로 빛나는 공화국에 먹칠을 한 너 같은 놈은 뒈져야 한다”고 했다.

 

- 그때 심정이 어떠했는가.

하늘이 무너지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왜 병신이 되었는데? 당국에서 정상적 식량배급을 주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때야 비로써 “이 놈의 김 수령 정권은 2천만 백성의 등뼈를 깎는 폭정국가”라고 느껴졌고 악에 찬 분노가 치밀었다. 이후 동생과 조심스럽게 마음을 합쳐 탈북결심을 굳혔다.

 

- 언제 탈북하고 한국에 왔나.

2006년 4월 남동생과 두만강을 건넜다. 그 후 2주간 라오스, 미얀마 등을 거쳐 태국에 도착했고 7월 말 경에 한국으로 왔다. 사회생활 초기 돈을 벌려고 포장마차를 했는데 나의 지체장애를 보는 손님들의 측은한 눈빛에서 다소 부담을 느꼈다. 고민 끝에 모종의 결심을 품고 2009년 동국대학교 법학대학에 입학했다.

 

- 나우(NAUH)는 어떤 단체인가.

지난 2010년 4월 남북한청년학생들로 조직된 북한인권단체 NAUH(Now Action & Unity for Human Rights)는 이름 그대로 ‘지금 행동하는’ 단체이다. 우리 단체는 특정한 시기마다 북한인권 행사를 주동적으로 과감히 전개한다.

또한 북한주민들이 들으면 솔깃할 대북라디오 방송내용을 제작하며 수년간 중국과 동남아에서 위험에 처한 수백 명의 탈북자를 구출하였다. 현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남한청년, 탈북민청년 반반 정도가 섞여 있다.

 

- 미국 대통령 연두교서에 언급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첫 연두교서(대통령의 국정연설)이다. 2018년 1월 30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 미의회에서 진행된 연두교서 발표를 한 트럼프 대통령이 2시간 연설 말미에 뜻밖에도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는 “북한정권의 불길한 본성을 목격한 또 한 명의 증인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며 “그는 1996년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렸던 소년이었다. 그는 식량과 바꾸기 위해 석탄을 훔치려다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나.

말로 다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 감격적이어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미국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내 고향의 불쌍한 2천만 북한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상황을 지적해준 존경하는 트럼프 대통령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마음에서 목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참석자들의 기립박수가 있었다.

 

- 백악관은 언제 방문했는가.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연두교서가 있은 나흘 뒤 2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으로 나를 포함한 탈북민 8명이 백악관을 공식 방문하였다. 트럼프 대통령 옆 자리에 앉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 자리는 외국정상이 앉는 자리였다.

12월 18일(현지시각)에는 백악관 성탄절 연회에 초대받았다. 연회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외에 정관계 고위인사들과 기업인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렇게 2018년 한 해에만 미국 대통령을 세 번 만났다.

- 언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지난 2018년 9월 17일, 오후 2시에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내가 북한에서 갖고 온 목발을 집고 1인 시위 및 기자회견을 하였다. 다음날(9월 18일)부터 평양에서 진행되는 ‘3차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김정은에게 북한주민들의 참혹한 인권문제를 상정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요청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북한인권 행사 차 해외를 다녀보면 많은 기자들과 관계자로부터 “왜 한국 대통령은 북한인권에 무관심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한국인임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 독재자의 구둣발에 짓밟힌 100% 주민들의 인권유린과 굶주리는 60% 주민들, 기아선상에 있는 40%의 어린이들을 왜 문재인 대통령은 모르는 척하는지 정말 안타깝다. 그들은 동포이기 전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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