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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도 고향을 방문해야 한다"

통일인터뷰.jpeg

 

정부(통일부)는 지난 1월 10일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비자를 발급한다면 그 자체가 신변안전 보장과 같은 것” 이라며 “(국민들이)북측의 초청장이 없더라도 북한 비자만으로 방북을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 중” 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1945년 분단 이후 한국(6·25)전쟁 휴전인 1953년까지 8년간 북에서 남으로 자유를 찾아 내려온 수백 만 실향민과 그 이산가족이 제3국 여행사를 통해 북한의 고향을 방문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다소 전망된다. 

실향민들의 뒤를 따라 1953년부터 현재도 계속 남하하는 북한주민들은 시대에 따라 ‘귀순자’ ‘탈북동포’ ‘북한이탈주민’ ‘새터민’ 등으로 불리는 통칭 ‘탈북민’이다. 2020년 현재 대략 3만 5천명에 달하는 탈북민이 대한민국에 있다.

이제 실향민들에 이어서 탈북민도 북한의 고향방문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지하게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민단체 ‘홍익인간세상을위한모임’에서이다. 최근 서울시 모처에서 이 단체 박진혜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74년 5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고 형제는 남동생이 있다. 부모님은 청진수성식료공장 노동자였다. 1990년 8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청진뜨락또르(트랙터) 부속품공장 기능공학교에서 2년간 공부했다. 이후 현장에 배치 받아 기계를 다루는 선반공으로 하루 평균 8~12시간 노동을 했다. 선반공 90%가 여자였다. 남자들은 군대 혹은 돌격대에 많이 차출되기에 공장에는 여자들이 많았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뭐나.

공장에서 일을 하며 간부들의 부정축재에 많이 놀랐다. 공장 간부들은 현장의 창고장이나 작업반장과 결탁하여 트랙터 부속품을 몰래 빼내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그런 풍조는 대략 1980년대 초반부터 일상화 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국가의 식량배급이 중단되니 노동자들은 생활전선(생계활동)에 나섰다. 공장의 트랙터 부속품을 노골적으로 훔쳐다가 시장(밀수꾼)에 팔거나 식량과 바꿔 먹었다. 간부들도 그 실태를 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 또 다른 추억이 있다면.

아침 출근 풍경인데 공장 노동자 600여 명 대부분이 걸어서 출근한다. 내 경우는 도보로 4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대략 7~8%의 직원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간혹 멀리서 오는 노동자들은 통근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소속 작업반에서 세포비서가 하는 ‘노동신문’ 독보시간에 참가한다. 대략 30분간 소요되는 이 시간에는 당의 정치선전 내용의 사설을 들어야 한다.

 

- 가장 안 좋았던 일은 무엇인가.

1994년부터 국가에서 주던 식량배급이 중단되니 사방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겼다. 거기에 콜레라, 파라티브스, 장티브스 등 온갖 전염병이 파다했다. 병원에는 약이 없으니 사람이 병에 걸렸다하면 그냥 죽는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 집은 감자나 밀가루 등 식량을 사기위해 팔수 있는 것은 전부 팔았다. 하루 풀죽 한 그릇도 없으니 성한 사람이 어떻게 살겠는가. 그러니 아버지는 1997년 3월에, 어머니는 4월에 굶어서 사망하였다. 내가 24살 때다.

 

- 그후 어떻게 생활하였나.

군대 나간 남동생에게 부모님 부고 소식을 알려주려 강원도 통천군까지 무임승차 기차를 타고 갔다. 영양실조에 걸린 남동생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후 양강도 대홍단군으로 가서 감자이삭 줍기를 했다. 1997년 10월 초 이삭줍기를 한 감자를 한 배낭 메고 청진으로 가려는데 안전원(경찰)에게 단속되어 몰수 되었다. 신분증이나 통행증명서가 없는 사람들은 안전원이 물건을 몰수해도 아무 말 못한다.

 

- 탈북 경위를 말해 달라.

어느 날 대홍단역전 주변에서 나를 낳은 부모님과 세상을 원망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떤 여인이 내 곁으로 와서 “처녀! 중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없어? 잘하면 시집도 갈 수 있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왜냐면 생전에 부모님은 나는 시집 못 갈 팔자라 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며칠 뒤 그 여인의 도움을 받아 두만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고 인신매매에 걸려 흑룡강성으로 갔다.

 

- 중국에서 어떻게 보냈는가.

중국에 온지 한 달도 안 돼 시집을 갔다. 남편은 흑룡강성 농촌지역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하였다. 북한에서라면 월남자가족, 부모님 비당원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시집도 못가고 처녀귀신으로 살지 모를 나였다. 그런데 외국에서라도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싫지는 않았다. 아기가 태어났고 남편은 마작(카드놀이)에 빠져 가정운영이 어려웠다. 4년 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광동성 심천시로 나왔다.

 

-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심천시는 중국에서 베이징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여기에는 한국 기업도 많고 한국교민, 관광객도 많다. 그들을 보면서 죽으나 사나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굳게 섰다. 일단 한국으로 가는 비용을 벌고 방법을 알아야 했다.

식당서빙, 통역, 가정부 등을 하며 컴퓨터를 배웠다. 이어 한국에 있는 인터넷사이트 ‘탈북자동지회’에 접속해 탈북민출신 브로커를 찾았다. 이후 1.0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9살짜리 아들과 함께 2007년 6월 한국으로 왔다.

 

- 사회생활 초기 무슨 일을 했는가.

북한에 두고 온 유일한 혈육 남동생 생각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를 데려오려면 또 돈이 필요했다. 1년 동안 스포츠마사지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어 1.000만원을 들여 북한군에서 제대한 남동생을 2010년 한국으로 데려왔다. 남동생은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해서 4자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 잉꼬부부로 살고 있다. 경기도에서 직원 수백 명을 통솔하는 건설현장소장 일을 하는 내 남동생이 너무 자랑스럽다.

 

- ‘홍세모’(홍익인간세상을위한모임)를 소개해 달라.

지난 2018년 11월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발족했다. 단체의 사명은 남한에 입국한 3만여 탈북민들의 고향방문 실현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 부회장은 김철웅 탈북피아니스트이고 이사진은 6명, 절반은 남한 사람이다.

우리 단체 가입회원은 160명이고 90%가 탈북민들이다. 나머지 10%는 탈북민들의 고향방문과 통일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진 남한 분들이다. 단체 감사와 고문은 남한 분이며 통일부에 사단법인체로 등록할 예정이다.

 

- 탈북민 사회에서 초유의 일이다.

처음에 탈북민들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북한이 우리를 배신자라며 증오하는데...” 라며 화를 버럭 냈다. 심지어 “박진혜가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하며 온갖 폭언이 난무했다. 내가 그들에게 “고향에서 부모님이 굶어죽었는데 나만큼 북한정권에 원망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며 설득시켰다. 시간이 지나서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도 고향이 그리운 실향민이 아닌가?” 라며 미소를 짓더라.

 

- ‘홍세모’를 만들 생각을 한 계기가 있다면.

TV에서 남북이산가족상봉 소식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13년 동안 헤어졌던 남동생을 그리워한 마음에 비하면 평생토록 북의 가족을 보고 싶은 실향민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동변상련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

우리 탈북민들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로 분명히 이산가족이다. 3만 탈북민들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우리도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든 북에 있는 가족을 찾고 만나야 한다.

 

- 북한이 탈북민들의 고향방문 받아들일까.

우선 대한민국 국회에서 탈북민들의 안전한 고향방문을 위해 관련한 여러 가지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탈북민은 합법적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북한당국이 이해를 하도록 말이다. 다음으로 국제사회의 협력이다. 유엔이 인정하고 안전문제를 담보하는 ‘탈북민 고향방문사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국제사회가 담보하는 특별한 프로젝트라면 북한도 쉽게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 설득력이 있고 다소 이해가 간다.

북한당국이 우리 탈북민들을 ‘변절자’ ‘도망자’ 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정권이 수립된 1948년 9월 이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수백 만 명의 실향민도 모두 ‘변절자’ ‘도망자’이다. 그들과 탈북민은 동일한 실향민이다.

이제 20년 후면 이 땅의 실향민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 그들의 뒤를 이어 탈북민 이산가족 상봉이 생겨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그 준비와 시작을 지금부터 하는 것이 ‘홍세모’의 활동이라고 보면 된다.

 

- 북한이 변할 것이라고 보는가.

당연히 그렇다. 북한은 반드시 변해야만 한다. 자국(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한국, 그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까지 모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정상국가이다. 자기 혼자만 외톨이로 불량국가로 살기 힘들다. 우리는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탈북민 고향방문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정상적인 문제를 외면하면 그 만큼 북한이 비정상국가로 되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작년 10월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을 두 번 다녀왔다. 가서 미국의회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탈북민들의 고향방문 정당성을 서술한 편지를 전달했고 향후 협력을 약속했다. 이 업무만큼은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정상국가로 거듭나려면 주변국 및 외국과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본다. 올해에도 미국과 유럽 등 북한과 우호적 관계인 나라들을 찾아 본격적인 협력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탈북민들이 고향에 남겨두고 온 부모형제는 2천만 인민이며 동포인 그들을 반드시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수십 년간 반목과 질시로 대립한 감정이 풀릴 수 있다. 지난 70여 년간 남한과 북한은 불구대천의 원수로 살았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후대들에게 부끄러운 오늘의 우리다. 이제 남북은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 이런 것보다는 서로를 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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