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평양의 도둑청년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통일인터뷰.jpeg

 

북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수도 평양의 시가지는 서울의 1/5 정도다. 허나 넓은 농촌면적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서울보다 3배나 크다. 유사한 점은 서울의 한복판으로 한강이 흐르듯이 평양의 한복판으로 대동강이 흐른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 평양시 인구는 대략 250만 명으로 추산한다. 굳이 남한의 도시와 비교하면 대구광역시만한 규모(시가지 면적)와 인구이다. 평양에는 지속적 인구조절로 인해 노동당에 충성하는 정수분자들만이 거주하고 있다.

북한에서 진행되는 모든 국제행사는 물론, 국가급 행사도 전부 평양에서 열린다. 그러니 거기에 강제로 동원되는 시민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평양시민에 대한 당국의 식량 및 생필품 공급은 지방주민보다 최우선적이다.

전시용 도시나 마찬가지인 평양에는 칠골교회, 봉수교회, 장충성당 등 종교시설이 3개 있으나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곳은 아니다. 서울 동작구 모처에서 ‘사도들의한국교회’ 조바울 협동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63년 2월 평양시 서성구역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2남 3녀의 넷째. 부친은 조선체육지도위원회 간부였다. 내가 13살 때인 1976년 평양에서 대규모의 ‘소개사업’(평양거주 일부 가족을 지방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있었다. 명분은 남조선으로부터 전쟁발발 위험이 있고 유사시 도시인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예하면 특정 단위에서 100명을 지방으로 내보내고 정세가 완화되었다며 30~40명은 다시 평양시 주변으로 끌어올린다. 나머지 60~70명은 성분(수령 충성심)이 나쁜 사람들이다. 이런 방법으로 꾸준히 평양시 인구를 관리했다.

 

- 평양시 인구관리? 무슨 소린가.

지방에서 높은 노동당 충성심으로 특출한 공적을 쌓은 사람은 평양으로 이주시킨다. 반대로 평양에서 불평불만이 있는 사람 등은 갖은 ‘교묘한 방법’을 써서 지방으로 추방시킨다. 1990년대에는 평양시민 유지를 특별한 방법으로 했다. 당에서 걱정하는 농사문제해결의 일환으로 평양의 기관·공장별로 직원들이 농촌으로 진출하자고 호소했다. 탄원은 모두가 하고 선별은 성분이 나쁜 사람만 골라하는 방식이다.

 

- 그러니 평양시민은 모범적이겠다.

당연히 그렇다. 평양에 사는 사람은 당국의 눈에 찍혀 지방에 내려가지 않으려면 항상 충성심을 높이며 살아야 하고 반대로 지방의 주민들은 꿈의 도시 평양에서 한번 살아보려면 죽기 살기로 당국에 충성하고 또 충성해야한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수령에 대한 충성경쟁은 자본주의사회 생존경쟁만큼이나 치열하다.

 

- ‘소개사업’에 걸려 지방으로 이주했나.

그랬다. 1976년 여름 당국의 조치에 의해 평안북도 동림으로 추방되었다. 평양 시내에서 살다가 하루아침에 산골오지로 왔으니 숨이 꽉 막혔다. 우리 가족이 평양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한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해방 후 목사였기 때문이다.

낮이나 밤이나 항상 평양으로 다시 올라갈 생각으로 고민 중이던 아버지는 해당 간부의 훈시대로 어머니와 이혼하면 다시 평양으로 갈 수 있다는 말에 합의이혼까지 하였다. 동림탄광 식모였던 어머니는 그 후 1년 뒤 병으로 사망했다.

 

- 학력과 경력을 말해 달라.

1980년 여름 평안북도 북청성동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0월 인민군대에 입대했다. 사회안전부(남한의 경찰청) 소속 공병국 5여단으로 국가 주요건축물 건설전문 부대이다. 장비는 대부분 일본제 건설용 장비이다. 내가 입대하여 군복을 입고 건설에 참여한 곳은 평양빙상관(실내 아이스하키 경기장), 청류관(대형 종합음식점), 용성구역에 위치한 1호 열차(수령전용 특별열차) 지하터널 공사장 등이다.

 

- 군복무 기간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노동당 입당을 위해 부대 정치지도원에게 뇌물(외화)을 상납할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문수거리에 위치한 ‘평양만년약국’에서 고객이 붐비는 틈을 이용하여 매장의 녹용(1kg)을 훔쳐 ‘대동강호텔외화상점’에 가서 팔려고 했다.

어떤 외국인과 흥정을 하였으나 팔지 못했고 상시적으로 드나드는 사복 안전원(경찰)에게 꼬리가 밟혀 단속되었다. 군인 신분이라 소속부대 경무대(헌병)에 인계되었고 그로인해 1986년 봄에 생활제대(불명예제대)를 했다.

 

- 사회직장은 어디로 배치 받았나.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노동자로 배치를 받았다. 1993년에 결혼을 하여 아버지에게서 분가하여 살았다. 아기가 태어났고 당시 국가의 식량사정이 점점 악화되던 시기라 가족의 생활형편은 몹시 어려웠다. 직장에서 내가 사는 집까지의 거리는 약 12km이다. 비포장도로 30여리의 출퇴근길은 보통 1시간 반씩 걸어서 다니는데 간혹 지나가는 화물차라도 만나 불법 승차하면 정말 행운이다.

 

-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1994년 2월 중순 어느 날, 퇴근길에 달리는 10톤급 화물차에 불법으로 승차했다. 운전자의 승인 없이 막무가내로 달리는 차에 올라타는 것이다. 가림 막을 친 화물차 적재함에는 평소에 보기 드문 희한한 물건들이 가득 실렸다. 솔직히 말해 항시적으로 배고픔에 시달리니 본능적으로 훔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상자 크기 4배 만한 박스가 10여개 있었고, 물렁물렁한 뭔가 담긴 것 같은 큼직한 자루가 있었다. 박스는 내용물이 뭔지 몰라서 또한 무거워서 전혀 다치지 못했고 대신 자루를 밖으로 던지고 나도 차에서 뛰어 내렸다.

 

- 대체 그 안에 무엇이 있었나.

자루를 열어보니 18마리의 죽은 꿩이었고 그것을 가가호호 방문해 전부 팔았다. 시장에서 닭 한 마리 값이 300원 했는데 그 반값으로 처분했다. 그걸 산 사람들은 두 세배의 가격으로 시장에 내다 팔았다. 결국 안전부의 수사망이 좁혀왔고 도당에 근무하는 매부를 통해 그 꿩은 김정일이 사냥하여 함경북도당 간부 18명에게 보내는 선물임을 알았다. 죽을죄를 지었으니 살려면 도망치는 방법 밖에 없었다.

 

- 자세히 말해 달라.

어느 날 아버지를 몰래 만났다. 아버지는 “더 말하지 말고 살려면 이 나라를 떠나라. 이왕이면 소련이나 구라파 쪽으로 가라!”며 내 등을 떠미는 것이었다. 그때 ‘부모는 죄를 지은 자식도 용서하고 보살펴 준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젊어서 체육대표단 통역으로 해외를 수없이 드나들었던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 이후 어디로 이동하였는가.

한시가 급했다. 무작정 함경북도 청진시를 벗어나 중국과 국경지역인 무산군 방향으로 향했다. 1994년 2월 14일 깊은 밤,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넜다. 화룡, 용정을 거쳐 학강시에 가서 한 달 간 주택보수 등 이런저런 잡일을 하였다.

북한에서 ‘민족반역자’로 규정하는 탈북자의 신분이라 항상 불안했다. 이후 연길, 심양, 대련, 위해를 거쳐 천진 탕구항에서 정기적으로 한국의 인천항을 오가는 국제여객선 ‘천인호’에 불법승선하여 6월 30일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 사회생활을 어떻게 시작했나.

1995년 1월부터 기아자동차 부품납품업체, OO액자공장 등에서 일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언젠가 교회 목사님 소개로 6개월 과정의 예수전도단 합숙훈련을 받게 되었다. 나 같은 도둑출신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성경 에베소서 4장 28절 말씀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가 내 마음에 꽂혔다.

 

- 신학 경력을 말해 달라.

하나님이 구원해준 소중한 생명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각오를 하고 1997년 총신대학교에 입학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2년 뒤 휴학을 했고 대신신학교를 입학하여 4년 뒤인 2003년에 졸업했다. 이후 백석대학원(2년제)을 다녔다.

학교에서 배운 신학공부를 현실 생활에 접목하기 위해 부흥집회, 전도축제 등 현장에서 성경말씀 공부로 이어갔다. 2011년 성경말씀총회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평양의 도둑청년이 하나님을 만나 목사가 된 것이다.

 

- 목회 활동이 다소 특이하다.

목사안수를 받고 새 신자 전도사역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매해 2회씩 새 신자 초청집회를 진행하는데 서울 교회의 목사님들을 찾아가 제안한다. 어떤 교회는 장소만 제공하며 또 어떤 교회는 약간의 재정을 지원하는 등 다양하다. 1년에 한 차례씩 탈북민들을 위한 예수찬양집회를 개최하도록 수도권 중·소형 교회를 방문하여 부탁한다. 이 일도 목사안수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하는 사역 중에 하나다.

 

- 그동안 목회자로서의 보람은.

한국에 와서 시작한 신앙생활이고 주님의 종이 되어 목사안수를 받은 지 올해로 10년째이다. 나는 독신이다. 사실상 혼자 먹고 사는데 큰돈은 들지 않는다. 옷은 설교나 간증을 위해 강대상에 설 때 입는 정장 1벌이 전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근 10년 동안 탈북민 150여 명을 전도하여 교회로 이끌었다. 그들을 찾아가고 식사에 드는 돈은 내 사비로 썼다. 개인적으로 하는 작은 사업에서 버는 돈은 100% 탈북민사역비로 사용하고 있다.

 

- 궁금한데 어떤 일을 하는가.

남한에 와서 그동안 살던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2007년부터 충청북도 충주시로 이사해 산다. 월악산 자락의 모처에 거처하면서 약초채취를 하고 있다. 자연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약초로 건강식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그 일을 벌써 14년째 하고 있으니 단골손님도 제법 생겼으며 내게는 귀중한 자산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평양에서 도둑질하던 청년도 서울에 와서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크게 변하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변하는 것도 빠른 정착의 방법이다. 감사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국에서 동네 개만도 못했던 우리 탈북자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살아야 한다.

 

 

 

 

?

윤숙자(개성) 한식재단 이사장에 취임
  1.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조바울 사도들의한국교회 협동목사 -

    “평양의 도둑청년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북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수도 평양의 시가지는 서울의 1/5 정도다. 허나 넓은 농촌면적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서울보다 3배나 크다. 유사한 점은 서울의 한복판으로 한강이 흐르듯...
    Read More
  2.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박진혜 ‘홍익인간세상을위한모임’ 회장 -

    "탈북민들도 고향을 방문해야 한다" 정부(통일부)는 지난 1월 10일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비자를 발급한다면 그 자체가 신변안전 보장과 같은 것” 이라며 “(국민들이)북측의 초청장이 없더라도 북한 비자만으로 방북을 승인하는 방안을 검...
    Read More
  3.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지성호 나우(NAUH) 대표 -

    2020년 자유한국당 영입 청년인재 1호 지난 2012년 봄, 제19대 총선(국회의원선거) 당시 2만 4천명 탈북민사회가 깜짝 놀랐다. 근 60년 탈북역사에 최초로 탈북민 국회의원(조명철, 경제학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4번에 발...
    Read More
  4.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김신조 목사-

    "나 같은 비운의 군인이 더는 없기를” 꼭 50년 전 이맘때(1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중대사건이 터졌다. 1968년 1월 21일 북한군 특수부대원 31명이 남한의 심장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하였던 것...
    Read More
  5.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김충성 서울예수생명교회 담임목사 -

    “고 한성옥 모자(母子)의 명복을 빕니다” 2019년 탈북민 사회에서 핫이슈는 여름에 있은 아사(餓死) 한성옥 모자의 비극이다. 서울 봉천동 임대APT서 살던 탈북여성 한성옥(42) 씨와 아들 김동진(6) 군이 아사한지 두 달 넘어 7월 31일 발견, 2주 ...
    Read More
  6.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임예진 예사랑노인주야간보호센터 대표 -

    "대한민국의 고마움에 봉사로 보답해요" 북한당국은 “사회주의 제도에서 60청춘, 90환갑을 누리는 공화국 인민들” 이라고 선전한다. 참고로 그 ‘위대한 수령’ 김일성은 82세, 김정일은 69세에 사망했다. 당국이 정치적으로 애써 선전...
    Read More
  7.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박정순 늘푸른상담협회 대표 -

    탈북민들이 말하는 ‘우리 어머니!’ 내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을 거느리고 / 귀밑머리 어느덧 희여졌건만 / 지금도 아이적 목소리로 때없이 찾는 / 어머니 어머니가 내게 있어라. // 기쁠 때도 어머니 괴로울 때도 어머니 / 반기여도 꾸짖어도 달려...
    Read More
  8.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송철남 쌍용자동차 시흥목감영업소 과장 -

    ‘금수산태양궁전’에 바친 인민의 피땀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북한의 건국자 김일성이 급사했다. 원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 평양에서 김일성은 5천년 민족사에서 가장 애국적이며 세계와 인류사의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런 위인도 죽으니 ...
    Read More
  9.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임영선 이북9도민정착위원장 -

    ‘이북5도민’과 ‘이북9도민’ 이름이 맞다 남한 사회에는 3만 탈북민을 지칭하는 이름이 ‘귀순자’ ‘자유민’ ‘새터민’ ‘통일인’ ‘하나인’ 등 10여 개도 남아 있다. 이에 대...
    Read More
  10.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한용수 서울지하철공사 과장 -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탈북했다” 북한의 2천만 인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간부든, 노동자든, 군인이든, 학생이든, 주부든 똑같이 수령사상 학습 및 정치 조직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매주 각자 소속 조직에서 하는 생활...
    Read More
  11.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임강진 전 조선인민군 포병연대장 -

    “말해주리 병사의 고향과 인민 사랑을” “병사가 인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풍요한 들판과 마을에 물어보라/ 그러면 말해주리 농장을 도와 가꿔준 이삭들이/ 등에 업혀 물 건너간 유치원 아이들이...” 1980년대 많이 불린 북한가요 &l...
    Read More
  12.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유정은 의정부은혜하나교회 담임목사 -

    북한주민들이 평소 타는 철도열차를 말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간혹 전용기도 타지만 선대수령들인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해외방문에 주로 열차를 이용했다. 김일성은 1984년 봄 전용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하여 소련(현 러시아) ...
    Read More
  13.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박명호 탈북1호 선주 겸 잠수부 -

    "이삿짐까지 배에 싣고 탈북한 가족" 3년간의 한국전쟁 휴전(1953년 7월) 이후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탈북(북한영토에서 벗어나 남한영토로 들어오는 것)이다. 탈남(탈북의 반대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탈북이 훨씬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
    Read More
  14.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김화순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대의원 -

    "어머니 조국, 대한민국에 고맙습니다" 북한은 3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선거(남한의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였다. 이번에 당선된 대의원은 687명.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당선자 명단에 없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선거 역사상 ...
    Read More
  15.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전철우 (주)고향에프에스 대표이사

    “고향에 가면 서울음식 이야기 하겠다”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서 눈길을 끈 것 중의 하나가 ‘옥류관 냉면’이었다. 평양의 초대형 냉면전문점 ‘옥류관’ 수석요리사가 통일각서 만든 냉면이 38선을 넘어 남측지역 ...
    Read More
  16.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

    "김정은을 배신한 나는 탈북민 태영호다" 지난 2017년 12월 어느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인권포럼과 아시아인권의원연맹의 주최로 <2017 올해의 인권상> 시상식이 있었다. 그 영광의 수상자는 탈북외교관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
    Read More
  17.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김영순 정치범생존자모임 대표 -

    "나는 김정일 부인 성혜림의 친구였다"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특정기관에서 신분조사를 받을 때 “당신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놀랍지만 거의 모든 탈북민들이 “인권이 뭡니까?&...
    Read More
  18.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정 남 (주)글로브 대표이사 -

    "남한에는 분명 근로의 대가가 있다" 북한에서는 모든 고교졸업생, 인민군 제대군인의 직장배치를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남한의 도·시·군청에 해당) 노동행정과에서 취급한다. 또한 대학졸업생, 인민군 제대군관(장교)은 도&mid...
    Read More
  19.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 -

    "남북의 정상이 자주 만나다 보면..." 2018년 9월 18~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지난 2000년 6월 시작하여 남북정상이 만나 회담하기는 통상 5번째이고 문재인 정권에서는 3번째이다. 그만큼 남북의 평화유지가 중차대한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
    Read More
  20. [림일 작가의 통일인터뷰] -차경숙 통일교육전문강사-

    “나는 ‘혁명의 수도’ 평양의 인민반장이었다”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서 볼 때 북한은 신비로운 사회가 분명하다. 수령인 최고지도자의 지시 한마디에 2천만 주민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민·관·군 할 것 없이, 평양에...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