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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북한정부를 세우는 것이 꿈이다

통일인터뷰.jpeg

 

수년 전,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서 열리는 국제행사 참가차 입국하는 미국의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솔티 여사를 마중하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어떤 중년 남성이 날보고 “림일 작가님 아니세요?” 하는데 어딘가 낯익었다.

“저는 영국에 있는 국제탈북민연대 김주일 사무총장입니다” 하는 그의 말에 “아! 탈북민 김주일 님이시군요” 하고 화답했다. 영국에 거주하는 탈북민이 서울에 있는 나를 먼저 알아보니 다소 놀랍고 감사한 마음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영국은 북한주민들과 남한 내 탈북민들에게 아주 특별한 나라이다. 북한이 1966년 여름 축구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영국에서 열린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에 출전하여 8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이변이었다.

2016년 8월에는 영국에서 근무하던 태영호 북한공사가 탈북민이 되어 서울로 왔다. 그는 75년 남북분단 역사에 남한으로 망명해온 북한 최고위 외교관이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을 어렵게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먼저 북한에 남은 가족과 지인들의 신변안전을 위해 일부경력을 자세히 소개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함경북도 OO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와 2년제 군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에 입대하여 최전방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병사생활 3년을 거쳐 OOO포병군관학교를 나온 뒤 군관(장교)이 되었다.

 

- 당시 전방부대 실태를 말해 달라.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의 최전방부대는 최악의 상태였다. 군부대에 식량과 부식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군관들이 중간에서 많이 갈취했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대략 한 개 중대의 인원은 100명인데 그중 30~40명이 영양실조에 결렸다. 영양실조는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있는데 중간인 3단계이면 누운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한다. 중대에 보통 7~8명의 탈영병이 생겼다.

 

- 어떤 대책을 세우나.

부대에서는 나 같은 총각 군관들에게 탈영병의 고향집에 가서 그들을 데려오는 임무를 준다. 평안남도에 있는 어느 조선인민군 OO군관학교 교수의 집으로 자식인 탈영병을 데리러 갔는데 멀건 옥수수죽으로 끼니를 에우더라.

또 다른 지방의 어느 집에 가니 탈영병 부모가 내게 “군관동지! 우리 아들을 나라를 지키는 인민군대에 내보냈는데 영양실조 걸렸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됩니까?” 하고 따지는데 그냥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더 미칠 정도였다.

 

- 그것이 탈북동기이겠다.

그랬다. 전방부대에서 복무하며 매일 듣던 남한의 대북방송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신념이 탈영병을 찾으러 북한전역을 다니면서 확 바뀌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영양실조에 걸렸으니 공화국(북한)은 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1999년 8월 현역군관 신분으로 함경북도 OO지역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밀입국했다. 길림시로 갔고 이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을 거쳐 2000년 10월 남한에 입국하였다.

 

- 학력과 경력을 소개해준다면.

2005년 서울예술대학 극작과를 졸업하고 혜화동 대학로 연극계에서 활동을 했다. 당시는 한류열풍이 세차던 시기였고 드라마 PD, 관광홍보물 제작자 등을 양성하는 아카데미 코스를 수료하고 프리랜서 PD(프로듀서)로 활동하였다.

2007년 케이블방송인 복지TV의 개국준비와 편성 PD를 맡아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북한주민들이 볼만한 인터넷 영상TV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탈북민인 내가 고향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은 사명이라고 판단했다.

 

- 자세히 말해 달라.

당시 탈북민들이 만든 대북인터넷 라디오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이 생긴지 3년째였고 나는 대북영상TV를 구상하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정보기관에서 “북한이 ‘자유북한방송’ 때문에 남북회담을 안하겠다고 하는데 당신이 인터넷 대북TV를 시작하면 곤란하다”는 내용의 전화가 왔다. 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 그래서 어떻게 대응했나.

탈북민인 내가 “고향사람들에게 자유로운 남조선의 진실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왜 잘못인가?” 하며 정보기관에 항의를 하였다. 거기에 돌아온 답변은 “이봐! 국가가 있어야 개인도 있어. 당신 정 그 일을 하고 싶으면 외국에 가서 하라!”였다. 혈압이 오를 정도로 화가 났지만 속으로 ‘에이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그래 내가 한국을 떠나서라도 기어이 이 일을 한다’는 비장한 결심을 품게 되었다.

 

- 영국으로 가게 된 이유가 그것인가.

그렇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내 고향 북한에서 수령 독재자의 발굽아래 짐승처럼 사는 2천만 인민들에게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인민들에게 세상은 모두 나쁘고 오직 수령과 노동당만이 좋다고 하는 해괴한 북한당국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딸이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남한사회에는 선진국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다소 있음을 생활의 여러 분야서 체험했다. 이왕이면 장애인에 대한 복지혜택이 좋은 나라를 찾다보니 영국을 선택하게 되었다.

 

- 이민? 정확히 말해 탈남이 아닌가.

애매모호하다. 2007년 10월 가족이 함께 인천국제공항에서 런던 행 비행기에 탔다. 영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로 이민 심사에서 본적(출생한 나라)을 증시한다. 나는 북한서 왔다고 했고 2주 뒤 체류허가증을 받았다. 참고로 영국은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한 추방하지 않으며 5년 뒤 심사를 보고 영주권을 준다.

 

- 남한 당국에서 뭐라 하지 않던가.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민이 제3국으로 거주목적을 갖고 나가는 것을 불법이라고 하는데 조금 코미디 같은 소리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되어있다.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이 불법인가.

참고로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며 남한 내 탈북민들이 미국으로 난민입국이 쉬워진 걸로 착각하고 굉장한 ‘탈남 바람’이 불었다. 그해와 이듬해 수백 명의 탈북민이 남한을 빠져나갔고 미국 당국은 한국정부의 협조요청을 수락하여 “남한 거주 탈북민은 난민 인정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 그 이후에도 탈남 바람이 계속 되었다.

미국에서 탈남 탈북민들의 입국을 거부하자 유럽으로 몰렸다. 이민정책이 다소 느슨한 영국으로 많은 탈북민들이 들어왔다. 이후 영국에서도 미국과 같은 조치가 취하자 탈북민들이 캐나다, 일본, 독일, 호주 등으로 발길을 돌렸다. 영국에는 현재 대략 800여명, 유럽 전역에는 1.300여명의 탈북민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 국제탈북민연대를 소개해 달라.

2013년 10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탈북민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북한인권운동이다. 내가 그걸 위해서 한국까지 떠났으니 해외에서 김정은 북한독재정권 반대투쟁만큼은 정말 마음껏 하고 싶었다.

현재 우리 단체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있는 탈북민단체와 업무공조 체제를 구축했다. 북한정권의 희생자인 탈북민은 세계 어디에 살던 평양의 수령체제를 무너뜨리고 2천만 인민을 독재폭압에서 해방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 예전에 몇 개 단체를 만들지 않았나.

영국에 입국한 다음해인 2008년 5월에 만든 단체가 ‘재영조선인협회’이다. 물론 탈북민단체이며 이듬해 6월에는 ‘재유럽조선인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두 단체에 모두 ‘조선’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북한주민들을 의식해서다. ‘한인’ ‘한국인’ 등의 이름은 북한주민들에게 생소하며 따라서 거부감이 많다. 우리는 분명 ‘조선’(북한)에서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나와 영국에 거주하는 예전의 ‘조선인’들이다.

 

- 프리엔케이 신문은 어떤 것인가.

2011년 여름에 내가 영국에서 창간한 격주간지이다. 탈북민들이 함께 만드는 신문인만큼 당연히 21세기 가장 참혹한 인권유린국가인 북한정권의 민낯을 과감하게 폭로하는 내용이 많다. 그 신문은 한국교민들은 물론이고 유럽 내에 거주하는 북한주민(외교관, 출장자, 유학생 등)들에게도 보여주자는 목적이 있다.

 

-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한 줄 안다.

국제엠네스티인터내셔널, 세계기독연대CSW, 국제사면위원회 등 NGO들과 연합하여 북한인권 문제를 유럽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방문해 탈북민들의 증언을 전달했다.

유럽북한자유주간을 2014년부터 매해 한 차례씩 모두 4차례 진행했다. 유럽의회가 있는 벨기에, 유럽서 큰 북한대사관이 있는 독일 등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를 사진전시회, 기자회견, 세미나 등의 방법으로 세상에 알렸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11년 3월 28일, 영국 정부의 주선으로 런던을 방문한 북한최고인민회의(남한의 국회) 최태복 의장을 영국국회 의사당에서 만났다. 당시 나이 81세인 그는 3박4일 일정으로 머나먼 영국까지 식량(옥수수)지원 요청을 왔던 것이다.

내가 그에게 북한요덕정치범수용소 명단을 전달하며 “이 안에 있는 254명의 생사여부라도 알려 달라”고 했다. 무심히 서류를 받았던 그가 내가 탈북민이라는 것을 알고는 무척 놀라운 표정을 짓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더라.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김정은 독재정권을 압박하는 여러 방법 중에는 해외에 망명북한정부를 설립하는 것도 있다. 지난 일제 강점기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서 이승만 김구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조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같이 말이다.

탈북민들 주축으로 해외에 망명북한정부를 세우고 통일운동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북한도 한국영토로 되었기에 남한에 망명정부가 들어설 수 없다. 해외 망명북한정부 수립은 우리 ‘국제탈북민연대’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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