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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출신 탈북의원은 北 인민에게 희망을 준다

 

통일-선거.jpeg

 

21대 총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탈북민사회서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생긴 탈북1호 국회의원(조명철)에 뒤이어 2호 탈북의원이 나올지가 다소 관심이다. 이번 총선에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보수정당(미래통합당)의 공천을 받아 탈북민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지역구의원 선거에 출마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목발 탈북자’ 지성호 나우 대표가 보수정당의 비례대표 12번을 받은 상태이다. 두 후보의 당선결과는 선거당일 개표종료 후 투표함을 열어봐야 한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실시되는 이번 총선에는 많은 탈북민이 군소정당 비례후보로 출마한 상태이다. 대략 6~8명의 후보가 있다.

지난 3월 초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탈북민들이 만든 정당인 ‘남북통일당’이 탄생했다. 안찬일·김성민 공동대표, 김흥광 사무총장, 11인의 최고위원, 지도부체제이며 공식정당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을 마쳤다. 서울 강서구 모처에서 ‘남북통일당’ 비례대표 1순위 한미옥 후보를 만나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72년 1월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6남매 중 넷째이다. 아버지는 조선인민군 OOO군부대 노무자(군무자)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군부대 이동으로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함경남도 북청군, 리원군 등에서 살았다.

내가 16살 때 아버지는 불치병으로 사망했다. 언니와 오빠는 학교졸업 후 독립(사회합숙)해 살았다. 또 다른 오빠는 장애인이었기에 사실상 내가 가장(세대주)이나 다름없었다. 고등중학교 3학년 때 중퇴하고 농장에 취업하였다.

 

- 농장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

농산반에 소속되어 일을 하였다. 이른 봄 냉상모판에서 벼 모를 키워 논에 심고 김매기... 밭에서는 옥수수를 심고 거름주기, 수확 등 늦은 가을까지 정말 힘든 일이 바로 농사일이다. 북한의 농촌에서는 수작업(손노동)으로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설령 낡은 농기계가 있어도 전기나 원유사정으로 못쓰기 때문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힘든 일은.

농촌의 각 가정은 당국의 지시로 매해 50kg이상의 돼지를 군부대에 상납해야 한다. 못 바치면 당년 농사분배에서 400kg의 식량을 공제한다. 1년 내내 농장 일을 하고도 400kg의 식량을 못 받으니 죽도 배불리 못 먹고 살았다.

그러나 농장 간부들(분조장 이상 관리위원장까지)은 다르다. 상급기관(군당) 사업용 명목으로 통계원과 의합을 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양곡을 농장창고에 쌓아두고 저들끼리 야금야금 나눠가진다. 그들은 세끼 배불리 먹고 산다.

 

- 다른 경력은 무엇이 있나.

리원군에서 8년간 농사일을 마치고 23살 때 지인의 중매로 량강도 백암군으로 시집을 갔다. 남편은 림산사업소 노동자였는데 배급이 끊기니 내가 나서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1995~96년까지 주로 도읍지 혜산에 가서 장사했다. 당시 역전과 버스정류장 등 공공장소에서 굶어죽은 아이들이 비일비재 하였다.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살기 위해서다. 국가에서 인민들에게 식량배급을 안주니 어떻게 하겠는가. 당시 혜산시내에 떠도는 말로 중국에서 하루 일하면 일당 40위안(대략 북한돈 800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때 북한노동자 평균월급이 120원이었으니 자연히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가족을 살리려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 언제 어디로 국경을 넘었나.

1996년 5월 중순, 혜산 지역서 압록강을 넘었다. 첫 탈북이고 연길에서 4개월 별장관리 일을 했다. 이후 도시에서 식당일을 했고 2004년 4월 공안단속에 걸려 북송되었다. 도문, 온성보위부, 단련대(강제노역장), 청진직결소를 거쳤다.

2004년 9월에 대홍단 지역에서 두 번째 탈북, 2년 뒤 중국공안에 의해 체포 및 북송되었다. 2007년 2월 무산에서 다시 탈북했으나 7월에 세 번째로 북송되었다. 이때는 재판에서 3년 징역형을 받고 함흥9교화소에 수감되었다.

 

- 교화소 안의 인권유린 행위는.

계호원(간수)은 수감자를 “이간나, 개간나, 쌍간나”라고 부른다. 수감자는 간수와 2m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대화를 해야 한다. 거기에 자기 기분이 나쁘면 수감자를 음지로 불러내서 폭행하는 간수들이 적지 않다.

교화소 안에서 간수들의 수감자 폭행은 2008년까지 노골적으로 있었는데 이듬해부터 완전 없어졌다. 당시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기 때문에 북한교정당국이 의식하지 않았을까 한다.

 

- 또 다른 풍경이 있다면.

70명 수감 방에서 감방장을 했다. 월평균 8~10명의 시신이 생긴다. 허면 그걸 비닐자루에 넣어 작업공구창고에 모아둔다. 위에서 화장장으로 가져오라는 지시가 있으면 가져가고 안 그러면 인근 산에 올라가 묻어버린다. 시체는 너무 말라서 본체구의 절반도 안 되며 그걸 땅에 흔적 없이 묻는 것을 ‘직파’라고 한다.

 

- 언제 출소했고 최종 탈북은.

2010년 9월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맞아 대사령(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냥 살려고 세 번이나 북한을 떠난 것이 운도 나빠서 세 번이나 체포 및 북송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3년 가까이 짐승처럼 노역을 했다.

첫 탈북 후 중국서 8년간 살며 기독교를 믿었다. 그때 가졌던 신앙으로 교화소에서 견뎠다. 2011년 1월 무산에서 국경을 넘어 연길로 또 갔다. 거기서 3년간 숨어서 살다가 태국을 거쳐 2013년 11월 마침내 대한민국으로 왔다.

 

- 사회생활 초기 무슨 일을 하였나.

하나원(탈북민 정착교육기관)을 나와서 보험, 건강식품 판매 등을 하였고 이후 결혼, 출산, 육아 등 보통 주부로 살았다. 남편도 탈북민이다. 이 살벌한 자본주의사회에서 탈북민 부부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소 실감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작년 8월에 발생한 탈북여성 고 한성옥 모자 아사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 당시 심정을 말해 준다면.

고 한성옥 모자 아사사건은 사각지대 탈북민을 방치한 정부의 책임도 분명 있다고 본다. 언젠가 또 생길 수 있을 거라 판단해 사후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청와대와 통일부 앞에서 수차례 진행했다. 탈북민 1세대인 우리는 물론, 2세대의 권익과 이익을 위해 어린 딸에게도 자유와 행복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 남북통일당을 소개해 달라.

2월 18일 서울·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탈북민 등 200명 발기인들의 참여로 ‘남북통일당’ 창당발기인대회가 진행되었다. ‘남북통일당’은 전국 5개 지부가 꾸려졌으며 당위원장이 임명되었다. 나는 부족하지만 인천지역 당위원장이다.

남북통일당 5.000명의 당원은 모두 탈북민이다. 3월 6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역사적인 ‘남북통일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사상 첫 탈북정당 ‘남북통일당’은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의 ‘조선노동당’을 반대하는 전위대로 준비한다.

 

- ‘남북통일당’ 창당준비는 언제부터 했나.

올해 1월 초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의 주동으로 여러 탈북단체장들이 한 자리에 마주 앉아 정치참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했다. 2월까지 서울에서 있은 1~4차 준비모임에 참석한 탈북민 단체장은 대략 20명 안팎이다. 여기서 ‘남북통일당’ 창당 발기취지문이 나왔고 중앙당 및 지역당 구성안 등이 토의되었다.

 

- 남북통일당의 의미는 뭔가.

누가 뭐라고 해도 3만 5천의 탈북민은 2천만 북한인민의 대표이다. 북한주민들은 당국의 탄압이 무서워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탈북자를 영웅으로 본다. 당과 수령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도망간 탈북자들이 정당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북한정권에는 기절초풍할 소식이다.

 

- 본인이 비례대표 1번에 발탁된 이유는.

탈북자인 나는 세 번이나 북송되어 북한감옥(노동단련대, 교화소 등)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았다. 중국에서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 진리와 같은 당연한 소리를 나의 온 몸으로 체험했다.

그래서 뒤 늦게 북한인권운동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새겨 담고 탈북민단체인 ‘북한인민해방전선’에서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보다 조금 더 열심히 행사에 참가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한 것이 점수가 된 것 같다. 부끄럽다.

 

- 당선되면 어떤 법안을 내겠는가.

우선 중국 내 탈북민강제북송을 금지하는 법을 발의하겠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우리 정부가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노력하면 충분이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와 협력해서 중국정부를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

다음으로 탈북민 여성들의 출산격려 법안을 내고 싶다. 남한여성들은 보통 결혼해서 기껏 1명의 아기를 낳지만 탈북여성들은 보통 2~3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보다 더 애국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들에게 격려자금을 줘야 한다.

 

- 그건 맞는 소리인 것 같다.

앞으로 제2, 제3의 한성옥 모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 못한다. 많은 탈북여성이 중국에서 원치 않게 낳은 아이들과 남한에 와서 한부모가족으로 어렵게 산다. 사각지대에 놓은 그들을 정부와 시민단체 및 종교단체가 일원적으로 지원하고 돕는 방법을 깊이 연구하여 그에 대한 국회법안 발의도 준비하고 싶다.

 

- 북한 인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기 남조선(한국)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인민의 손으로 투표·선출하며 그 대통령을 매일 비판해도 감옥에 가지 않는 나라이다. 나처럼 북한에서 평범한 농민이고 주부였던 여성도 당당한 국민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진짜 인민의 나라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북조선독재 정권에서 뛰쳐나와 여기 남조선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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