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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순간 북한정권에 치가 떨렸다"

 

통일인터뷰-임혜진.jpeg

 

북한당국은 45세 미만의 남성들에 한에서 시장출입을 철저히 불허한다. 이유는 건실한 장년들이 시장에서 돈벌이 맛을 들이면 결국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사상(학습, 총화, 강연 등)통제로 유지되는 사회체제 안전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당국의 지침으로 남자들은 기계가 멎은 공장이라도 출근해서 사회노동(농촌·건설현장 동원, 주변정리 등)에 참여해야 한다. 여자는 좀 다르다. 결혼한 여자는 가족부양을 명분으로 사직할 수 있고 이 경우 주거지역서 조직생활을 한다.

국가의 식량배급은 1990년대에 완전히 멎었고 과반의 주민들이 시장에 의지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자연히 시장에 여자들이 많고 국경 주변의 주민들은 중국을 번번이 넘나드는 것도 현실이다. 탈북민 80%가 여성인 이유가 그래서다.

중국으로 불법 입국한 탈북여성들은 인신매매에 걸려 강제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운이 나쁘면 공안에 단속되어 강제북송 되기도 한다. 인천광역시 모처에서 ‘평양예루살렘교회’ 임혜진 담임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67년 3월 함북 명천 태생이다. 형제는 4남 1녀, 부친은 군인. 1982년 온성OO고등중학교 졸업, 조선인민경비대 제2912군부대 전화교환수(군인)로 근무했다. 부대의 사회명칭은 ‘12호 관리소’ 즉 정치범수용소, 국가보위부 소속이다.

사실 북한에는 ‘정치범’이란 말이 없다. 유사한 표현으로 ‘사상범’이란 말을 간혹 쓰기도 한다. 정확히 말해 ‘정치범수용소’ ‘정치범’ 이라는 표현은 남한에서 쓰는 용어이고 북한에서는 ‘이주구역’ ‘이주민’ 등으로 쓰고 부른다.

 

- 12호 관리소를 말해 달라.

함북 온성군의 5개 리(里)가 속했다. 한 개 리에 5.000~6.000명, 모두 25.000~30.000명의 이주민이 있다. 12호 관리소는 외곽에 철조망으로 담을 쳤고 그 밑에 깊은 구덩이와 70cm 죽창이 꽂혀있다. 수용소의 시설과 이주민을 관리·감시하는 군인과 사민(민간인)은 모두 700여 명으로 그중 간부들은 40명가량이다.

 

- 5개 동네의 면적이면 넓은 지역 아닌가.

그 안에는 농장, 벽돌공장, 탄광, 피복공장, 철도, 식료공장 등 많은 시설들이 있다. 거기서 생산되는 농축산물, 석탄, 피복(옷) 등은 모두 최상의 품질들이다. 대부분 평양에 올려가거나 일부는 관리자(군인) 가족들이 소비한다.

참고로 함경북도 온성군에는 12호 관리소의 성능과 규모가 비슷한 13호 관리소도 있다. 이 2개 관리소에서 생산하는 인민경제소비품(생활용품, 농수산물 등)은 온성군 전체 생산량의 2/3을 차지할 정도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 ‘이주민’(정치범)은 어떤 사람들인가.

일상에서 의도적이든 실수로든 당국의 정책을 직접 혹은 간접 비난한 사람들이다. 남조선 및 외국방송을 들은 사람, 종교를 설파한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다. 본인은 물론 그 가족까지 연좌제로 들어오니 인원이 많은 것이다.

이주민은 수용소에 입소할 때 공민증이 회수되기에 주거장소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걸 수 없고 옷에 김일성 배지도 달지 못하며 선거에도 참여할 수 없다. 관리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말하는 도구’ ‘말하는 돼지’라고 한다.

 

-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면.

1986년 가을, 특이한 사건이 터졌다. 남자형제 2가족 11명이 그 완벽한 수용소 철조망을 뚫고 탈출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 삼엄한 철조망과 함정을 어떻게 피해서 탈출했는지 정말 미스터리였다. 그들은 전원이 대략 20일 만에 중국에서 북송되어 왔는데 이주민 1만 5천 명이 모인 장소에서 공개총살 했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11명 중 2명의 아이를 빼고 어른 9명을 학교운동장 중앙에 세우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이 죄수 1인당 5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완전 숨이 멎은 죄수들의 앞을 지나며 이주민들이 돌팔매질을 했다. 물론 관리자들이 시켰다. 망자에게 증오심을 갖게 하고 본인도 각성하라는 취지이다. 시체는 완전 죽탕이 됐다.

 

- 다른 경력이 있다면.

22살에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1989년 가을, 24살에 제대하였으며 청진경제전문학교(2년제)를 1991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인민군 제대군인 출신의 청진공산대학(당일군 양성소) 학생과 결혼을 하여 아기를 낳았다.

남편은 결혼 전에 감추었던 결핵으로 시름시름 앓았고 그 와중에 5살 난 아들이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1997년 7월에 죽었다. 그해 12월에는 남편도 눈을 감았다. 한 해에 남편 아들 모두 하늘나라 보내니 정신이 절반 나가더라.

 

- 언제 탈북하였는가.

남편과 아들을 잃고 절망 속에 자살하려고 뚜보찡(결핵약) 20알을 먹었다. 숨은 멎지 않고 한동안 실어증(사람을 보면 눈물만 나오고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병)에 걸렸었다. 1998년 5월 말 두만강을 건넜다. 연길에 가서 2년 동안 약재장사를 하다가 꼭 2년 만인 2000년 4월 공안에 단속되어 무산으로 북송되었다.

 

-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중국에서 있었던 상황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상세하게 종이에 써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종교 접촉 사실이 있으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장이다. 간수들이 그런 여자들에게 분노의 폭력을 가한다. 죽어도 간수 책임은 전혀 없다.

아침 5시에 기상하여 밤 10시까지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 멀건 죽물이 전부인 식사도 생리적인 용변도 전부 앉은 자리(요강)에서 해결한다. 그렇게 1~2개월 지나 해당 지역 보안원이 와서 여성들을 호송(인계)해 간다.

 

- 감옥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중국에서 임신한 23살의 여성이 아기를 낳았다. 여간수의 지시로 아기는 허접한 비닐에 싸서 방 한구석에 방치해놓았다. 아기는 젖을 달라고 3일 동안 우는데 그걸 보며 산모와 7~8명의 여성들은 환각상태에 빠질 정도로 반정신이 나갔다.

3일 뒤, 산모는 석방되어 나가는데 여간수가 물이 채워진 바켓스(물받이통)를 갖고 오더니 “나도 상급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하며 아기를 물통에 거꾸로 집어넣었다. 모든 여성들이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겠다.

그 순간, 내가 태어나 살았던 이 나라(북한)가 과연 사람 사는 세상이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어떻게 살아있는 갓 난 생명을 그것도 인민을 위한다는 군인(여간수)이 살해한단 말인가. 이건 국가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북한은 인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고 인민을 죽이는 야만집단이고 사회이다. 정말 저주스러웠다.

 

- 한국에는 언제 왔는가.

2000년 여름, 무산서 청진 농포동의 도(道)집결소(감옥)로 이송도중 기회를 보아 탈출했다. 한 명의 보안원이 8명의 여성을 호송하는 허술한 틈이 있었다. 이후 두만강 유역 국경 지역에서 숨어 살다가 수개월 후 다시 탈북하여 중국 연길에 갔으나 불안한 심정은 여전했다. 2002년 5월 베트남, 태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 정착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보험설계사 10년간 하였다. 남들이 교회로 가자고 하면 “그 시간이면 돈이나 벌겠다”며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방 치더라(웃음). 남한생활 꼭 10년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장이 파열될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이때부터 바른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2012년부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이듬해부터 OO신학대학교 용인분교를 다녔다. 작년 6월 “남북통일전망과 탈북민들의 신앙생활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평양예루살렘교회를 소개해준다면.

지난 2018년 9월 목사 안수를 받으며 인천 논현동에 설립했다. 교인은 모두 25명인데 아이들이 10명이다. 100% 탈북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남한에 탈북민 사역자들이 담임하는 교회는 여러 개 있어도 목사부터 신도까지 100%가 탈북민인 교회는 우리 교회가 유일한 것으로 안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 탈북민 교인들의 특성이 있나.

꼭 우리 교인이 아니라도 여러 탈북민 교인들을 상담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교회에 등록하고 안 나가면 교회서 전화오고 교인들이 찾아오는데 그게 싫다는 것이다. 좋으면 나오란 말 안 해도 꾸준히 나가겠는데 말이다 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도 그 분야를 꾸준히 연구했는데 탈북민들은 신앙을 갖는데서 다소 시간이 걸린다. 일단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이든, 교인들이 마음에 들면 열성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탈북민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 임 목사의 탈북민 선교관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고 봉사다. 탈북민 개개인에서 탈북상황의 간증을 들어보면 정말 하나님의 역사가 그대로 씌어있음을 분명히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주신 제2생명을 주님 위해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탈북민도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생활이고 봉사라고 확신한다.

 

- 고마운 분은 누구인가.

미국에 거주하는 목사님이신 유당렬 남가주노회장이다. 내가 어려운 환경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7년간 매해 한국 돈 천만 원씩 후원해주셨다. 실향민 2세인 유당렬 목사님의 재정후원이 없었다면 내가 신학공부를 못했을 것이다.

또한 박상문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 교수님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박상문 교수님은 우리 탈북민들이 직업교육을 받는데서 어려운 문제들을 찾아 자기 일처럼 해결해주시는 정말 친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분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탈북민들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통일천사이다. 통일이 되었을 때 남한 사람들보다는 탈북민 출신 목사님과 전도사님들이 북한의 고향으로 가서 전도하는 것이 100배나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탈북민 사역자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한국의 교회들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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