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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선율, 희망의 통일하모니 연습하다

통일인터뷰.jpeg

 

사회적 감정동물인 사람은 일상에서 노래와 춤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가락이나 무용에 담는 내용은 천태만상으로 자유자재하다. 북한의 음악과 예술장르 90%는 당·체제 선전선동, 특히 수령(대통령) 우상화에 활용되고 있다. 평양에서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수령(김일성·김정일) 우상화 노래창작은 30년이 지나 2010년대 최고절정에 올랐다. 예전 30년간 창작된 전임수령 우상화 노래보다 무려 3배가 훨씬 넘는 김정은 우상화 노래가 10년간 창작되었다. 이런 북한음악예술과 통일 후, 순수 민속의 전통을 이어가는 남한음악예술이 합쳐야 한다. 반세기가 넘은 어쩌면 100년도 지날 오랜 분단세월 만큼 달라진 남과 북의 예술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또 다른 고통 일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것도 꼭 넘어야 할 산이다. 그 험산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넘는 주인공들이 있다. 바로 탈북예술인들이다. 멋진 그들이야 말로 통일문화예술의 선구자들이다. 최근 서울 모처에서 평양설경예술단 권설경 단장을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82년 9월 함경북도 온성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오빠가 있다. 아버지는 청진OO공장 자동차운전수,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인민들에 대한 국가 식량배급이 제대로 안되어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장사에 나섰다. 운전수들과 짜고 주로 함경도-황해도를 자동차로 오가며 의류·생필·식품 등을 날랐다.

 

- 기타는 언제부터 배웠는가.

자식을 남보다 잘 키우려는 것은 어느 시대와 사회든 부모들의 똑같은 마음이다. 우리 어머니가 어린 나를 특별히 키우려고 ‘치맛바람’을 조금 날렸다(웃음). 내가 9살 때 어머니가 나를 황해남도 장연군에 있는 A과외선생에게 보냈다.

재일동포 출신의 A선생은 하반신마비 장애인으로 음악교육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그 선생에게서 과외를 받은 학생 100%가 해주예술대학에 입학했으니 말이다. 수강생도 10명 이하로 제한하여 그만큼 질적으로 잘 가르쳐주셨다.

 

-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수강기간은 짧으면 1년, 길면 4년이고 나는 1년 6개월간 받았다. 교습에 드는 비용은 숙식비까지 합쳐 월 북한돈 3.000원이다. 당시 우리 아버지 월급이 120원 정도 했으니 정말 큰돈이다. 연습 시간은 오전 9시부터 밤 8시까지이다.

북한에서 사교육은 엄밀히 불법인데 실지 해당기관 상급간부에게 뇌물을 주면 묵과가 된다. 또한 불법과외를 받으러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간부집 자식들이니 겉으로 통제를 하는 척 하지만 실제는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이다.

 

- 사교육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나.

1992년 여름, 해주예술대학 입학시험(이론·실기)에 합격했다. 그런데 대학 측에서 나에게 학교건물 관리에 쓸 통나무 한 차(2.5t) 분량과 고장 난 통학버스 수리를 은밀히 요구했다. 어머니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고 결국 대학입학이 최소 되었으며 나는 원래 다니던 청진추목인민학교로 돌아왔다.

 

- 계속 음악소조 활동을 하였는가.

청진학생소년궁전 기타 소조반에서 음악활동을 하였다. 오전에는 소속 인민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궁전에서 기타연주 기량교육을 받고 연습을 한다. 소조원은 모두 20명이었는데 전부 부모들이 ‘쟁쟁한’ 아이들이었다.

도당, 행정·경영위원회, 보위부, 검찰, 안전부, 외화벌이 사업소, 고급군관 가족 등의 자녀들로 아버지가 노동자인 것은 내가 유일했다. 부모의 권력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소조원들의 교육과 그 결과에도 은근한 영향을 미친다.

 

- 잘 사는 집 아이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선 질이 낮고 디자인도 한심한 단체복인 일반 학생교복을 잘 입지 않는다. 주로 일본이나 중국산 다양한 옷을 걸치고 다닌다. 등하교는 간혹 자기 아버지의 관용차를 이용하기도 하며 아이들의 가방에는 늘 초콜릿과 과일이 들어있다. 그들에게서 항상 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사는 일반학교 학생들은 딴 나라 풍경이다.

 

- 소년궁전에서의 활동은 어떠했나.

궁전 소조원들은 연중 김일성·김정일 생일 등 특별명절 공연에서 누가 기본무대에 많이 섰는가에 따라 추후 예술대학 입학에 가점이 적용된다. 기본무대에는 기량이 다소 없어도 힘센 간부집 자식들이 많이 선다. 궁전 선생님들은 자기에게 뇌물(보통 100달러 이상)을 자주 바치는 아이들에게 더 관심도 두고 잘 가르친다.

 

- 고등학교는 언제 졸업하였나.

부모가 평범한 노동자인 나는 더 이상 궁전소조생활을 하지 못했다. 힘이 없으니 자연히 밀린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음악소조에 소속되어 활동을 했다. 주로 거리와 근로현장에서 정치선동의 노래와 연주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5학년 때 함경북도에서 3.000명이 응시한 조선인민군 예술학원생 초모에 원서를 냈으나 가족성분이 좋지 않아 탈락했다. 2000년 8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온성군기동선전대에 배치를 받아 기타연주자로 활동하였다.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2007년 6월, 동료들 회식자리서 술김에 남조선노래 ‘사랑의 트위스트’(설운도)를 불렀다. 다음날 누군가의 고발에 의해 안전부(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고 반성문을 썼으며 ‘노동단련대’(강제노역장)에 갈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황당함은 물론 소름이 끼쳤다. 유흥자리에서 기분이 좋아 흥겨운 노래를 불렀지 당과 수령을 반대하는 행동은 아닌데 말이다. 법적 처벌이 두려웠고 며칠 고민을 하다가 7월 어느 날, 깊은 밤 동료여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 언제 남한에 입국하였나.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한국에 가면 탈북루트안내 비용으로 700만원을 준다는 각서까지 썼고 태국으로 밀입국하였다. 방콕 이민수용소는 탈북민을 한 달에 10명씩 한국으로 보내니 수용소에서 탈북민들이 항의로 단식투쟁을 했다. 그것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한 달에 50명씩 한국으로 보냈다. 2008년 3월 서울로 왔다.

 

- 사회생활 시작 때 뭐가 좋던가.

정치와 무관하게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남한에서는 예술인이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기량과 재능만 있으면 어떤 무대에도 설 수 있다. 한동안 여러 팀에 소속되어 또한 프리랜서로 공연활동을 많이 했다. 2014년 명지대학교 공연예술학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음악공부를 했고 2018년에 졸업했다.

 

- 평양설경예술단을 소개해준다면.

탈북민 절반, 남한사람 절반, 나를 포함해 모두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예술단원들은 경력자들과 KBS, MBC 등 여러 TV에 출연하여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는 방송인들, 전문교육을 받은 우수한 통일안보 강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유한 우리민족의 전통 민요와 민속무용을 현시대의 대중문화와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하고 이채로운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큰 특징이다. 예술단 사무실과 연습실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으며 설립은 2016년 봄에 하였다.

 

- 공연종목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북한노래 ‘반갑습니다’로 막을 올리는 우리 예술단 공연은 남북의 음악·무용을 골고루 합친 것이 장점이다. 민요독창 ‘신고산타령’, 여성4중창 ‘아리랑낭랑’, 3인무 ‘사당춤’, 소해금독주 ‘옹해야’로 이어진다. 관중이 가장 열광하는 종목은 마술무용 ‘사계절춤’이며 북한노래 ‘다시 만납시다’로 마친다. 공연시간은 60~90분.

 

- 그동안 어떤 공연을 하였는가.

2015년 9월, 경기도 연천 정곡읍 승격 30주년 기념 한마음축제에서 특별초대 공연을 했다. 2016년 4월에는 전남 구례군 제28회 군민노래자랑, 2017년 9월에는 전북 김제시 제27회 용지면민의 날 회합한마당 축제에 참가하였다.

서울과 전국(지방)으로 활동하는 우리 ‘평양설경예술단’은 1년에 보통 100회 정도의 무대공연을 펼친다. 관람자는 적으면 100여명, 많으면 1.000명이며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다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이 든다.

 

- 특별한 공연은 어떤 것이었나.

2018년 4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라남도 함평군협의회의 주최로 함평 나비대축제 엑스포공원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축하기념 평화음악회”이다. 그해 10월, 제주도 한라산 자비도량 정방사에서 열린 “화합과 서귀포시민 안녕기원 제9회 산사음악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에 남는 공연 중 하나이다.

 

- 남과 북의 예술 차이는 어떻게 보나.

자본주의사회 남한에서는 서구문화 예술이 많이 혼용되어 있다. 물론 국제무대에 나가서 외국과 경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북한의 예술은 노동당의 사상이 짙게 배어 정치선동 형식에 많이 빠져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개인적으로 악기연주 기량은 북한예술인들이 더 높다고 본다.

 

- 자원봉사 공연 활동도 하던데.

주로 장애인시설, 양로원, 노인회관 등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자원봉사 공연을 나간다. 한 달에 보통 2~3회 개인공연을 소화한다. 특히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면 떠나온 고향생각에 나도 몰래 울컥할 때가 많다.

내가 자원봉사 공연을 하는 것은 탈북민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감사의 징표이기도 하다. 북한에서 노동자가족 출신이어서 하고픈 예술 활동도 크게 못했으니 말이다. 남한에서 10여년 꾸준히 해온 봉사공연을 영예롭게 자부한다.

 

-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북의 군인들을 관객으로 통일음악회를 하고 싶다. 70년간 총부리를 마주한 남과 북의 군인들이 잠시 총을 내려놓고 손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부르는 공연에서 사회를 보고 기타연주를 하고 싶다. 어렵겠지만 그러한 노력과 시간이 쌓여야 통일로 갈수 있다는 확신을 희망으로 간직하고 싶다.

 

- 통일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나.

내가 자라고 유년시절 학생소년궁전에서 기타연주를 열심히 배웠던 청진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음악예술 활동을 하고 싶다. 서울에서 배운 음악이론과 고향의 향토예술을 접목하여 통일된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황홀하고 열정적인 우리의 선율을 마음껏 노래하겠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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