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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비행사 대우’의 비밀

통일인터뷰.jpeg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북한주민들이 일상에서 가볍고 애절하게 하는 표현 중에 ‘비행사 대우’라는 말도 있다. 이는 ‘최고의 물질적 대우’ 혹은 ‘풍족한 물질생활’을 뜻하는 표현으로 예나 지금이나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련한 추억이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평양의 일반주민들은 ‘초콜릿’을 ‘비행사 간식’으로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 즈음 지방의 공군부대에서 노무자로 근무하는 먼 친척의 집에서 난생처음 ‘초콜릿’을 먹어 본 필자였으니 말이다.

비행기 날개를 상징하는 군모와 계급표시, 하얀 머플러에 검은 가죽잠바와 바지를 입은 공군 비행사들의 모습은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샀다. 하늘을 나는 비행사 직업만큼이나 멋있는 직업도 흔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쉽게 든다.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폭정신으로 무장한 인민군 비행사들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이 많았다. 최근 북한공군부대 군관(장교) 근무경력이 있는 박희순 전 조선인민군 공군 지휘중대장을 강원도 춘천의 모처에서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74년 3월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4남매 중 둘째였고 아버지는 강원도 림업관리국 계획과장, 어머니는 OO악기공장 부기장이었다. 부모님이 인텔리 출신이어서 우리 집 가풍은 항상 정직하고 성실히 살자는 것이었다.

1990년 5월 원산산재여자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원래는 8월이 정기졸업인데 인민군대 초모가 4~5월에 진행되다보니 조기졸업을 한 것이다. 당시 인민군 입대는 봄·가을로 나누어 했는데 전체 입대자 중 70~80%가 봄에 했다.

 

- 인민군 공군에 입대했던데.

해마다 봄 초모시기에 우선 뽑는 특수병종은 호위사령부, 공군, 정찰부대 등이다. 장령(장군)이 참여한 공군입대 초모에 우리 학교에서는 250명 졸업생 중 나를 포함해 3명, 원산시에서는 100명이 선발되었다. 공군 입대자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철저히 보는 선별기준은 출신성분, 외모 및 체력, 도덕품성(인성) 순이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출신성분은 사돈의 8촌 안에 정치범은 물론, 경제범도 전혀 없어야 한다. 고등학교 학업성적은 낙제만 아니면 될 정도로 크게 중요치 않으나 전 기간의 학교생활 평정서는 우수해야 한다.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이 기본이다.

1990년 봄, 강원도 군사동원부에 최종 올라간 공군초모 합격자는 나를 포함 30명이었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공군군복을 입었다. 조선인민군 공군사령부 제3전단(지금은 사단)에서 6개월간 강도 높은 신병훈련을 받았다.

 

- 자대 배치는 어디에 받았는가.

공군사령부 3사단 통신결속소(대대급) 기록중대에 배치 받았다. 하늘의 모든 비행기는 관제 레이더가 따라 움직이며 그 상황을 관제소의 탐지기수가 즉시 송출해주면 통신결속소에서 기록수들이 군사용 암호나 숫자로 비밀일지에 기록해둔다. 참고로 통신결속소에는 타자수, 교환수, 기록수, 유선수, 무선수 등이 있다.

 

- 군관(장교)은 언제 되었는가.

전투기 기록수를 4년간 했고 이후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소재한 ‘조선인민군여성지휘관학교’(2년제)에 입학했다. 참고로 평양시 력포구역에는 ‘조선인민군여성정치군관학교’가 있는데 북한군에서 여성장교학교는 이 2개가 전부다.

1996년 3월에 군관학교를 졸업하며 소위계급을 받고 공군사령부 직속 80여단 기록중대 소대장으로 배치를 받았다. 1998년 조선인민군 제59추격비행연대(원산갈마비행장) 기록중대 부중대장으로, 2년 뒤 중대장으로 진급했다.

 

- 공군 부대에 3종류 식당은 무슨 소린가.

북한 공군부대에는 3종류 식당이 있다. 최고 식당은 ‘비행사식당’으로 전투기 조종사들만 출입한다. 일주일 내내 소, 돼지, 닭고기요리가 나온다. 다음은 종합식당인데 여기서 2개 방으로 나뉜다. 하나는 장령(간부)식당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군인식당이다. 비행사식당 수준이 100이면 장령은 70, 일반은 30정도이다.

 

- 기타 배급품은 어떤 것이 있었나.

비행사 가족이 받는 식료품은 모두 평양에서 특별히 내려오는 일명 8호제품이다. 이는 북한 전역에서 고급특산물로 생산하여 금수산의사당재정경리부(주석궁)에 진상품으로 올려 보낸 최고의 식료품이며 농토산물, 수산물 등이다.

해마다 김일성 생일(4월 15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 조선인민군창건일(4월 25일) 등 국가명절이면 평양에서 공산품이 선물로 내려온다. 주로 양복지, 남성속옷, 구두, 여성속옷, 화장품, 양말 등인데 대부분 중국산 제품이다.

 

- 비행사 대우가 높은 이유는 뭔가.

북한군 전투기 조종사 중에 러시아군사학교 유학생 출신이 많다. 이유는 북한군이 보유한 전투기 100%가 러시아제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중국산 전투기도 있었으나 월남전(베트남전쟁) 이후 모두 폐기되었다. 나랏돈으로 키운 인재이고 특별한 상황에서 위험한 존재들이기에 그에 대한 대우를 높이 해주는 것이다.

 

- 특별한 상황이라면.

어떤 비행기 조종사도 마음먹기에 따라 적국(남한)이나 제3국으로 얼마든지 쉽게 귀순할 수 있다. 그러면 비싼 비행기도 배행기이지만 그 보다는 적군에 아군의 비행군사정보와 시스템이 통째로 넘어가는 것이다. 엄청난 손해이다.

또한 전투기는 하늘을 나는 ‘무서운 포탄’으로 조종사가 사상이 바뀌면 노동당청사로 자폭공격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인민들에게 끼치는 영향과 독재정권이 입는 정치적 손해는 막심할 것이다. 비행사들은 2일 생활총화를 한다.

 

- 다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

1992년 12월 23일, 인민군 공군사령부 59추격비행연대(원산갈마비행장)에서 있은 일이다. 739호 전투기 길영조 조종사가 비행훈련 중 고장 난 비행기서 탈출하라는 관제소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행기와 함께 원산 앞바다에 추락해 전사했다. 만약 그가 탈출했다면 비행기는 원산의 김일성 동상에 추락했을 수도 있었다.

 

- 탈출명령을 거부한 것도 잘못 아닌가.

현실은 영화나 소설과 다르다. 만약 조종사가 탈출해 살고 비행기 추락으로 도시의 김일성 동상이나 혁명사적관이 파괴되었다면 이는 최고반역에 해당하는 특대형사고이다. 북한의 모든 기관(회사)과 가정에도 수령의 초상화가 있다.

비행기 사고에서 생존한 조종사는 경우에 따라 철직제대 혹은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진다. 대우도 최고, 처벌도 최고로 주는 것이다. 당국이 비행사에게 하는 자폭정신 강요는 추락하는 비행기와 함께 조종사도 죽으라는 소리이다.

 

- 전사한 조종사에 대한 예우는.

우선 공화국영웅 혹은 전사영예훈장1급이 수여된다. 아내가 정조를 지키고 재혼을 하지 않으면 자식들은 평양의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진다. 본인이 받던 100% 대우(식량 및 생필품)를 60%까지 가족이 종신토록 받는다. 만약 전사자가 미혼이면 그의 부모가 받는다. TV, 냉장고, 양복지, 식료품, 보약 등이 내려온다.

 

- 비행기 사고가 많은 이유는 뭔가.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전투기는 전부 10년 이상씩 사용한 중고품이다. 아마 새것을 사오려면 돈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정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고가 잦다. 비행기 관련분야의 설비도 모두 러시아 제품이다.

정기적으로 러시아에서 갓 수입해온 전투기 30~40대는 대략 10년간 평양상공 방어목적에 선차적으로 사용된다. 그만큼 북한군이 적군(남한)과 대치작전에서 항상 노동당정권 수뇌부가 있는 평양방어를 우선시 한다는 방증이다.

 

- 언제 제대하였는가.

2002년 7월에 제대했고 9월에 비행사와 결혼했다. 남편은 이듬해 12월 동기훈련기간 비행기 사고로 바다에 추락하며 전사했다. 이후 원산시상업관리소 2부취급원(출판물, 연구실 관리책임 등)으로 배치 받았다. 배급·월급도 없는 직장 일은 정말 싫었고 2005년부터 2년간 동사무소에 재적을 두고 천(옷감) 장사를 했다.

 

- 탈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혜산서 원산으로 천을 가져다가 팔던 여성이 어느 날 자기와 함께 중국에 가면 하루에 중국돈 100원도 벌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북한돈 10만원 해당하는 거금이다. 그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넌 것은 2007년 10월이었다.

중국 땅에 들어서자마자 인신매매 장사꾼들에게 붙잡혀 산동성 고미시로 갔다. 돈에 팔려 한족남자에게 갔고 2일 만에 도망쳐 산속에서 11일간 보냈다. 이후 은인의 도움으로 청도의 회사에서 일했고 2009년 7월 한국으로 왔다.

 

- 비행사 가족이었는데 남한생활은 만족했나.

강원도 원주로 주거지를 배정 받았다. 내가 아무리 북한에서 한동안 비행사의 아내로서 호강을 했다고 해도 여기 남한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북한에서 비행사 가족이 부러울 것 없이 잘 먹고 잘 입는다고 해도 엄연히 노동당에서 배급해주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 공급이 끊기면 일반주민들 즉 거지나 똑같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여기 남한에는 북한 비행사들이 매주, 매월 단위로 공급받는 식품이 동네슈퍼마다 차고 넘친다. 누구든 아무 때든 돈만 내고 자기가 원하는 식료품과 물건을 양껏 구입할 수 있다. 돼지, 소, 닭고기가 1년 내내 정육점에 넘쳐 있더라.

더 좋은 것은 바로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남한 땅 어디든지, 외국도 자기가 원할 때 아무 때든 여행으로 다녀올 수 있다. 일반 국민에게 차려진 이런 자유는 북한에서 비행사에게는 물론 인민무력상(국방장관)이나 총리에게도 없다.

 

-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

처음 3년간 자동차부품회사를 다녔다. 2013년 지인의 소개로 강원도토박이 남편을 만나 현재까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염소 500마리를 키우며 2.500평 밭에 300그루의 복숭아 농사를 한다. 벌써 9년째 이 일을 하는데 한번도 “싫다!”고 생각한 적 없으며 항상 즐겁다. 요즘 한 달 매출은 평균 700~800만원이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모름지기 탈북민 과반은 북한에서 농촌 태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는 정반대로 과반이 도시에서 산다. 북한에서 도시 태생인 내가 여기 남한에 와서 농촌생활을 하는 경우를 봐도 꼭 도시생활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정부에서 귀농정착금까지 지원해준다. 도시에서 얼마 안 되는 생계비에 연연하지 말고 건강한 사람은 과감하게 농촌으로 와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도 해볼 만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돈)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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