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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평양옥류관 냉면 맛 그대로이죠"

 

통일인터뷰.jpeg

 

2020년 가을이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이 계절 누구보다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은 가고파도 못가는 실향민과 탈북민들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있는 북녘 고향으로 가는 길이 철책선에 막혀 7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2년 전 4월 판문점서 남북의 두 정상이 포옹할 때 통일은 아니라도 고향방문이나 적어도 편지왕래는 있지 않을까하고 한껏 기대했던 이북출신의 사람들이다. 당시 판문점 4·27남북정상회담의 이색 장면은 ‘평양옥류관 냉면’ 만찬이었다.

참고로 1960년 8월에 개업한 ‘옥류관’은 평양의 한복판을 흐르는 대동강 옥류교 근처에 있고 면적이 6.000㎡에 2.000석 규모의 2층짜리 한옥양식 건물로 초대형 냉면전문점이다. 이후로 서울에서 전통 평양냉면 붐이 꾸준히 불고 있다.

이제는 제법 ‘민족의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평양냉면의 고유한 맛을 잘 보존하고 알리려는 이북출신 전문가도 많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서울·강서 마곡동의 전통 평양옥류관 냉면 <안영자 면옥>을 찾아 안영자 대표를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67년 6월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4남매의 셋째이고 외동딸이다. 부모님은 인텔리출신으로 아버지는 OO림산사업소 기사장(기술담당 간부), 어머니는 OO인민학교 교원(교사)이었다. 1983년 여름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에 입대하였다. 노동당원이 되어 ‘당의 참된 딸’이 되고 싶었다(웃음).

 

- 군 입대해서 간 곳은 어딘가.

빨간 연장의 군복을 입고 간곳은 인민무력부(한국의 국방부) 후방총국 산하 요리강습소다. 1980년대 중반 외국의 군사대표단, 무관들이 북한을 많이 방문했다. 인민무력부에서 운영하는 초대소(별장)와 특수부대 식당이 많았고 이런 곳에서 종사하는 요리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겠다는 제의서를 김정일에게 올려 방침을 받았다. 전국에서 선발된 예비입학생은 42명, 최종 합격자는 나를 포함해 26명이었다.

 

- 수업과 실습과정은 어떠했나.

정규 수업은 평양상업대학 교원(교수)들이 해주었다. 나름 상업봉사 부분에서 오랫동안 제자들을 실력자로 양성한 최고의 교육자들이다. 수령의 위대성 교육도 첨부된 이론교육에서는 한식을 위주로 양식과 일식도 다소 가르쳐주었다.

실기교육은 전체 교육시간의 절반이다. 현장실습으로 그 유명한 평양옥류관을 포함하여 시내 이름난 음식점, 호텔, 초대소 등으로 나갔다. 또한 조선민항총국(순안비행장)과 각 지방의 공군부대 비행사식당에도 파견실습을 나갔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1985년 여름, 3개월간 유효기간의 비자를 받고 중국으로 실습유학을 나왔다. 난생 처음 해외에서 실기를 포함한 요리를 배운다는 꿈같은 희망을 품고 나온 외국실습인데 종당에는 허탈했다. 3개월간 베이징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대사관 경내 식당에서 주방 일(설거지, 재료준비 등)만 하다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 이후 경력은 어떻게 되는가.

요리강습소에서 2년 6개월간 정규 교육을 마치고 ‘평양상업대학’ 졸업증을 받으며 1986년 10월에 졸업하였다. 이후 인민무력부 산하 별장인 함경북도 경성군 온포에 있는 705초대소 요리사로 배치를 받았다. 이때부터는 민간인이다.

조선인민군 705초대소에는 김일성 접견대상 외국군사대표단, 무관 등 귀빈들이 자주 왔다. 적을 때는 2~3명, 많을 때는 7~8명 정도였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일주일씩 머물다가 갔다. 주로 아프리카 나라 군사대표단이 많았다.

 

- 705초대소 현황을 알려 달라.

우선 귀 초대소는 물, 공기는 기본이고 주변 경치가 좋은 곳에 있다. 일반인민들 거주지역과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밀유지 때문이다. 초대소 안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검증된 신분인 소장(군인), 세포비서, 통역원, 요리사, 접대원(서빙), 이발·안마사, 운전수, 건물관리원 등 15명이 있었다. 초대소 내부일은 전부 비밀이다. 초대소정문과 주변은 무장한 군인들이 24시간 보초를 선다.

 

- 초대소 내부의 시설은 어떠한가.

모든 시설은 호텔수준급의 고급 설비로 갖추어졌다. 가구와 소파는 이탈리아제이고 TV와 냉장고, 에어컨 등은 일본제이다. 외국대표단이나 무관들이 타고 오는 차는 독일제 벤츠였다. 귀빈들에게는 삼시세끼 최상의 요리가 제공되었다. 소갈비찜, 약밥, 닭요리, 버섯구이, 빵, 소시지, 각종 해산물요리가 식탁에 올랐다.

 

- 가정에 시련이 왜 왔나.

1980년대 아버지는 평양의 내각 대외경제위원회 계획부장 직무를 거쳐 해외무역대표로 자주 근무했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졸도까지 했을 정도로 수령에게 충실한 사람이었다.

언제인가 막냇동생이 녹화기로 성인물을 봤는데 운이 없게도 보위부에 걸렸다. 그것이 우리가정에 화근이 되었다. 일단 해외근무 중인 부모님의 강제귀국소환이 있었는데 두 분이 평양에 도착해서야 ‘가정의 불길한 소식’을 알았다.

 

- 좀 더 자세히 말해 준다면.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소식으로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시다가 끝내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호위총국(한국의 청와대 경호처)에서 소좌(소령)계급을 달고 근무하던 큰오빠는 강제 철직제대를 맞았다. 나 또한 705초대소에서 강제로 퇴직되었다. 철없는 막냇동생의 아차 실수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니 허망하였다.

 

- 그것이 탈북을 한 이유였겠다.

꼭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민군 산하 초대소에서 강제퇴직 되었으니 주변에 의문의 눈초리로 보는 시선도 분명 있었다. 하여 큰오빠가 사는 혜산으로 갔다. 거기서 며칠 머물면서 ‘도강’(강을 건너다는 소리), ‘밀수’(몰래하는 개인 무역)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밑돈이 드는 ‘밀수’보다 다소 위험하지만 ‘도강’을 해서 중국에 가면 큰돈을 벌수 있는 일거리가 많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였다.

 

- 언제 탈북을 하였는가.

2005년 여름 사전에 브로커와 충분한 연계를 갖고 단독으로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 연길에 있는 친척집으로 갔고 거기서 수개월간 머물며 식당일을 하였다. 그러나 엄연히 탈북자의 신분이니 아무래도 공안의 단속에 항상 두려웠다.

실제로 주변에서 북한으로 잡혀나가는 몇몇 탈북자들을 보니 가슴이 섬뜩했다. 이후 8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며칠간 사막을 걸었고 국경철조망을 넘어 몽골로 갔다. 2006년 9월, 울란바토르 주재 한국대사관을 거쳐 서울로 왔다.

 

- 사회로 나와서 무엇을 했나.

평양에서 있은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2000. 6) 이후로 서울에서는 꾸준히 북한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다. 그 중에서도 평양방문 기간 김대중 대통령이 대동강변의 식당을 찾아 드셨던 옥류관냉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내가 ‘평양옥류관’ 주방현장 경험을 가진 유일한 탈북민이니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왔다. 요리학원과 음식협회, 호텔식당 등에서 경험발표 및 강연요청이 쇄도하였다.

 

- 평양옥류관 냉면의 특성은 뭔가.

옥류관의 냉면은 메밀면이다. 주재료인 메밀가루와 밀가루, 감자전분과 느릅나무 가루를 일정량의 비율로 잘 섞어 짙은 황록색의 빛깔을 띤다. 4가지 가루를 어떤 비율로 섞는가에 따라 반죽의 색상은 물론 면발의 강도도 다소 다르다.

냉면의 핵심은 육수이다. 옥류관냉면 육수는 꿩, 돼지, 소, 닭고기를 7시간 이상 푹 삶아 우려낸다. 한창 끓을 때 육수 위에 뜨는 지방(기름)을 잘 걸러내야 한다. 그렇게 만든 육수와 동치미를 일정 비율로 잘 썩어 냉면육수를 만든다.

 

- 서울에 평양냉면집이 다소 있던데.

사실이다. 현재 서울시내 여러 곳에 실향민과 그 후손(2세·3세)들이 만드는 이북식냉면집이 다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평양옥류관은 1960년에 생겼으니 서울의 이북식냉면은 옥류관냉면이 아니다. 평양옥류관에서 실습경험을 가진 내가 만드는 냉면이 유일하게 서울에서 ‘옥류관냉면’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남북한의 음식이 어떻데 다른가.

북한음식은 고유한 식재료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을 적게 쓴다. 꼭 필요한 조미료도 아주 극소량만 쓰니 음식 맛이 연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어떤 음식에든 조미료를 지나치게 넣으면 음식 본래의 맛도 없어지고 건강에도 해롭다.

거기에 비하면 남한음식은 맵고 짜고 단맛이 기준인 것 같으며 자극적인 측면이 너무나 강한 편이다. 남한음식은 여러 부재료를 많이 섞어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당연히 음식 식재료 본연의 맛이 온갖 양념에 묻히기 마련이다.

 

- <안영자 면옥>을 소개해 달라.

지난 8월에 오픈했다. 도로변 1층에 30평 규모로 좌석은 60석이다. 기본메뉴는 평양옥류관냉면, 비빔냉면, 평양온반, 녹두지짐, 평양초계탕, 소갈비낙지전골, 평양육개장, 아바이순대, 평양만두 등이다. 100% 평양옥류관 메뉴의 음식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서울지하철 5호선 마곡역 6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마곡신도시 한복판에 있다. 주소는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4로 22 이다. 전화번호는 02-6338-6686 이다.

 

- 본 가게의 ‘옥류관냉면’은 뭐가 다른가.

우선 면발이 굵지도 얇지도 않고 쫀득쫀득하면서도 아주 부드럽다. 기존에 잘 끊어지는 식감대신 메밀과 감자전분의 일정한 배합으로 순하고 감칠맛 나는 것이 특징이다. 면발의 생명은 숙성된 가루반죽과 면을 끓는 물에 삶는 시간, 찬물에 씻는 방법 등에 있다. 냉면사리는 물론이고 그 위에 올리는 꾸미(소고기, 계란, 무, 오이, 잣, 지단 등)와 육수도 전부 내가 평양옥류관에서 실습한 방법으로 고집한다.

 

- 손님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지난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있은 남북정상회담 관계자로 참석했던 어느 고객이 인터넷을 통해 우리 식당에 와서 ‘옥류관냉면’을 드셔보고는 “판문점에서 먹었던 평양옥류관 냉면 맛이 신통이 이 맛과 똑같다”면서 자주 오고 있다.

단골로 냉면마니아들이 많이 오는데 서울 장안에 있는 여러 이북식냉면집 냉면을 다 먹어보았어도 “안영자 면옥의 평양옥류관 냉면이 가장 입에 잘 맛는다”고 입소문을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그 덕분에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통일은 식탁서부터 해야 맛있다. 국민들이 애써 북한음식을 접하며 북녘동포에 대한 사랑을 가지면 그게 통일의 양념이다. 여담이지만 북한서 주민들은 보통 생일에 국수(냉면)를 먹는다. 국수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다. 많은 국민들이 <안연자 면옥>에서 평양옥류관 냉면을 드시고 통일의 날까지 오래 사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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