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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해 배우자! 그리고 나누자!

 

통일인터뷰.jpeg

 

시간은 쉼 없이 흐르네 / 그러니 돌아보지 마시고 / 금같이 귀중한 분초를 / 아껴갑시다 / 배우자 배우자 내 나라를 위해 / 배우자 배우자 앞날을 위해 / 우리의 식으로 낙원 꾸리자.

경쾌한 리듬의 북한가요 ‘배우자’의 가사 일부다. 아는 게 보배고 힘이니 열정을 다 바쳐 과학과 기술을 꽃펴가기 위해 배우자는 내용이다.

북이나 남이나 체제특성은 크게 다르나 사람생활 모습은 다소 유사하다.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분명 사람이며 많이 배워야 함은 틀림없다. 6·25전쟁 휴전 이후 올해까지 대한민국에 들어 온 3만 5천 탈북민은 통일 후 교육과 문화를 포함한 북한재건에 크게 기여할 존재이다. 남한에서 누구보다 많이 배워야 할 사람들이다.

탈북민 교육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다음세대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분단으로 인해 갈라졌던 동포가 우리와 똑같은 이웃이고 친구였음을 생동하게 알려주는 실효성이 있다.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에 소재한 기숙형방과후 생활시설인 ‘위너스교육원’을 찾아 이하니 원장을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1974년 12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6남매 중 다섯째였고 아버지는 35호화학공장 건설자재관리 담당자, 어머니는 부양(주부)이었다. 1990년 8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다니는 공장의 ‘기술기능공학교’에 1년간 다녔다. 이후 금제련직장에서 4년간 일을 하였는데 금생산은 사이나(일본제 고체연료)를 물에 풀어 그 물로 광석을 대형기계로 갈아 거기서 금을 채취하는 형식으로 한다.

 

- 당시 직장의 풍경은 어떠했나.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이나를 만지는 손을 대충 씻고 점심을 먹는 것도 보통이다. 원칙적으로 마스크는 물론 위생장갑과 보호안경까지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노동자들의 생명보호, 시설안전 관리가 규정에는 있지만 다른 나라 법이나 마찬가지다.

최악의 경제난인 고난의 행군시기(1996~1999) 공장의 기계가 멈추었고 대신 노동자들은 사회적 과제물요구에 시달렸다. 빗자루, 장갑·수건, 싸리나무가지 등을 갖다 바치라는 요구가 어느 한 달도 없는 경우가 없을 정도였다.

-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고난의 행군시기 어머니와 함께 국수장사를 3개월간 했다. 이후 개인장사 목적으로 담배 20보루를 갖고 무임승차 열차를 타고 평안도 지방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절반은 도둑을 맞혔고 가서 3일간 머무르며 소름끼칠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10~14세 되는 아이들 5명이 굶어죽는 모습을 내 곁에서 보았으니 말이다.

 

- 그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처음 외지에서 굶어죽은 시체를 봤으니 겁이 덜커덕 났다. 그것도 전날까지 나와 얘기를 나눴던 아이가 말이다. 나도 여기에 있다가는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장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고향으로 황급히 돌아왔다. 이후 집에서 수예품(천에 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가 파는 일을 했다.

그래도 밥을 먹기 힘들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들판의 풀은 전부 옥수수가루와 섞어 음식으로 먹어봤다. 이후 아버지가 연로보장을 받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소토지(비법개인농사)를 하면서부터 옥수수밥이라도 겨우 먹었다.

 

- 가족에 다른 시련도 있었다던데.

고모가 6·25전쟁 때 남조선(한국)으로 내려갔기에 우리 가족은 월남자가족으로 취급받았다. 그로해서 아버지는 노동당에 입당을 못했고 내 위의 오빠는 ‘함흥건설건재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공장에서 승인하지 않아 가지 못했고 훗날 간암으로 사망했다. 큰오빠는 자동차운전수였는데 공장 일을 하다가 순직했다. 정말이지 우리 집안은 노동당에 절대 복종하고 무조건 순종한 그야말로 ‘충성의 가정’이었다.

 

- 월남자가족의 부당 대우를 말해 달라

직계4촌 안에 월남자가 있으면 ‘월남자가족’으로 규정한다. 월남자가족의 자식은 군대도 나갈 수 없으며 공부를 잘해도 대학추천을 받기 힘들다. 군수품공장 등 주요 시설에는 입직할 수 없으며 그야말로 색안경 끼고 관찰 받는 대상이다. 주변에 무슨 사고만 발생해도 제일 먼저 의심의 눈길을 받아야 하는 월남자가족이다.

 

- 탈북 경위는 어떻게 되는가.

어느 날 시장에서 만난 어떤 여인(탈북브로커)이 내게 “중국에 가서 돈 벌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하며 며칠 후 만나 답변을 달라고 했다. 사실 내 어머니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때 나온 분이어서 중국에는 외삼촌과 이모가 있었다.

부모님이 하루 벌어 겨우 먹고 힘들게 사는 실정이니 어떻게라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들었으며 며칠 뒤 그녀를 만나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이후 그 여자가 준비한 계획대로 2007년 5월 어느 날, 새벽 1시경 두만강을 건넜다.

 

- 중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어머니한데 알은 전화번호를 갖고 길림성 룡정시에서 검찰원 과장으로 근무하는 외삼촌의 집을 찾아갔다. 외삼촌에게 “돈을 벌려고 왔다”고 하자 “중국에서 돈 버는 것은 좋은데 조선(북한)에는 돌아가지 말라. 그곳에서 나온 사람들(탈북자)의 말을 들으니 살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고들 하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집밖에 얼씬도 하지 말고 우선 중국말과 글을 배우라고 하여 1년 가까이 그렇게 했다.

 

- 이후 어떤 생활을 하였는가.

외삼촌이 지인을 통해 만들어준 중국신분증과 어린이집 조교사증을 갖고 연길시로 갔으며 거기서 OOO어린이집 조교사 생활을 3년간 하였다. 200명의 어린이들이 있는 유치원인데 나는 30여 명의 7세 어린이 담당 조교사이었다.

아이들에게 개인교습으로 스케치(그림)를 가르치는데 기본 교육비 외에 30원을 더 받았으니 중국에서 조용히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학부모들의 관심과 인사를 받으며 살았으니 다소 출세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웃음).

 

- 북한과 비교하면 어떤 생각이 들던가.

참 묘한 생각이 들더라. 고향 조선에서는 배고픈 유치원 아이들에게 김일성, 김정일 수령 사상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키는데 중국 아이들은 배부르게 먹고 살면서도 모택동, 호금도 수령에 대한 사상교육을 전혀 안 받으니 말이다.

똑같은 사회주의국가라는 조선과 중국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랐다. 연길시내의 상점이나 시장에 가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온갖 생필품이며 다양한 의류, 수백 가지 식품과 맛있는 음식들이 차고 넘치더라. 이것이 바로 ‘인민의 지상낙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국에 비하면 조선은 ‘인민의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 언제 한국으로 왔는가.

중국에서 돈도 제법 잘 벌었고 또 고향에 계시는 부모형제에게 인편으로 돈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짜 신분은 중국공안이 항시 단속하는 탈북자이기에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불안했다. 또 주변에서 여러 탈북여성들이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온몸이 오싹했다. 이후 여러 통로로 어렵사리 한국행 브로커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고 2010년 6월, 태국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에 입국했다.

 

- 사회생활 초기 무엇을 했나.

봉건노예 사회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내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 고모가 6·25전쟁 때 월남했다고, 그것 때문에 가족성분이 안 좋아 대학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마음에 맺힌 한이 되어 공부를 실컷 하겠다는 결심이 굴뚝같았다.

2013년 2월 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평택대학교 대학원을 2016년 2월에 졸업하면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앞으로 꼭 박사과정까지 공부하려고 한다. 사람이 배우는 것만큼은 나이나 환경, 체면 같은 것이 전혀 없어야 한다.

 

- 위너스교육원을 소개해 달라.

2018년 10월에 설립한 ‘위너스교육원’의 어린이·초·중고 학과별 재적학생 30명 모두 저소득층과 맞벌이가정의 자녀들이다. 가정식통합교육을 지향하는 기숙형 방과후공부 및 생활시설인 우리 ‘위너스교육원’은 아이들을 미래의 당당한 주인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나를 포함해 4명의 교사가 재직하고 있다.

 

-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우리 교육원은 아이들이 스스로 다양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을 치유하여 정규학교의 교육과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전문훈련을 시킨다. 오전에는 자기 거주 지역의 일반 학교에서 정규적인 수업을 받고 오후에 여기 교육원으로 와서 방과후 프로그램 수업 및 보충교육을 받으면서 합숙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피아노, 논술, 독서 등이 있다.

 

-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2019년 11월, 우리 교육원 아이들이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100원, 500원씩 모아진 성금 10만원을 모 시민단체의 연탄봉사 활동에 후원하였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마음을 어린 아이들에게 잘 심어주고 키워주기 위해서이다.

올해 5월, 지역 환경미화 작업에 봉사활동으로 참가했다. 쓰레기 줍기, 빗자루 질 등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노동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거리와 마을이 항상 깨끗해야 사회도 더욱 환해지며 사람들의 마음도 밝아진다고 가르쳐주었다.

 

- 이 원장의 우선 교육관은 뭔가.

인성교육이다. 아이들에게 도덕성을 특별히 강조한다. 학교에서 공부는 조금 못해 뒤처지고 또 열심히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아이들끼리 혹은 선생님한데 작은 거짓말도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입시키는 편이다.

사람에게서 교육 기간은 어릴 때일수록 중요하다. 10대 시절까지 받은 교육이나 생활습관이 나이가 많아도 오래도록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열 살 때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소리가 틀린 말이 아니다(웃음).

 

- 고마운 분은 누구인가.

천안OO교회 이용운 담임목사님이다. 신앙이 없던 나에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세심하게 이끌어주시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어려울 때마다 항상 기꺼이 상담해주시고 좋은 말씀, 지혜, 방법 등을 가르쳐주신다. 지금 운영하는 이 교육원도 설립 당시 모르는 것이 많아 좌왕우왕 할 때 하나하나 알려주셨고 도와주신 분이다. 늘 친정아버님 같은 심정으로 저를 딸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에는 사람들의 눈에 쉽게 보이는 사각지대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눈에 잘 안 보이는 사각지대도 많다. 영세하고 어두운 사각지대를 찾아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을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세대인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이 바로 키우는가, 못 키우는가, 함은 분명히 미래사회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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