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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삶을 준 대한민국을 노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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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서서히 저문다. 올해는 중국에서 발생한 세계적 대전염병 코로나19로 인해 예년보다 적은 인원(상반기까지 147명)의 탈북민이 남한에 입국했다. 연평균 1.000명의 탈북민 대량 입국시대가 열려 20년 만에 낮은 숫자이다. 올해 초 북한은 중국당국이 되돌려 보내는 불법체류 탈북자 북송을 거절했다. 또한 지금껏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 확진자가 자국에서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언론을 당(수령)이 통제하는 정권의 발표는 신뢰가 어렵다. 북한과 중국의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이 기필코 남한으로 오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남조선은 그냥 다른 나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동족이 사는 38선 아래 따뜻한 남쪽지역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오는 탈북민들이다.

자유를 찾은 것도 감사하지만 자기의 소질과 능력에 맞게 직업을 선택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고마워하는 탈북민들이다. 최근 3만 5천 탈북민사회에서 ‘효녀가수’로 소문이 자자한 최금실 가수를 경기도 모처에서 만났다.

 

- 자신을 소개해준다면.

1975년 3월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4남매의 맏딸이었고 아버지는 해주OO대학 교원(교수), 어머니는 해주예술단 성악 가수였다. 유치원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와 악기연주에 소질과 취미가 많았던 나를 어머니가 음악신동으로 키우려고 무척 노력했다. 10살 때 우리 집은 청진으로 이사를 하였고 이후 ‘청진학생소년궁전’을 다니면서 바이올린 연주를 체계적으로 배웠고 노래연습도 함께 하였다.

 

- 고등학교 음악소조 활동을 하였나.

물론이다. 인민학교에서 음악부 활동을 했고, 고등중학교서는 전문 음악소조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였다. 오전에는 소속 학급에서 정상수업을 받고 오후에 5시간씩 바이올린 연주를 연습했다. 음악소조에 속하면 사회적 노동이나 농촌동원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니 그 시간만큼 악기와 노래연습을 하니 실력이 높아졌다.

 

- 사회 활동 경력을 말해 달라.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민군대에 입대, 조선인민군 OOO군부대 선전대에 소속되어 군인예술 활동을 하였다. 이후 2년제 군관학교를 졸업, 군관이 되어 사회안전부(남한의 경찰청) 협주단 성악조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사칭호는 중위.

안전부협주단은 사회안전부 정치국 직속 기관으로 대략 성원이 300명가량 된다. 평양시 서성구역 련못동에 전문 극장(봉화예술극장)을 갖고 있다. 만수대예술극장 다음 가는 최신식 극장이며 ‘4월의봄친선예술축전’도 진행된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일명 ‘안전부극장’으로 불리는 ‘봉화예술극장’은 1982년 7월에 개관했다. 연건평은 45.900㎡, 2천석 대극장과 800석 소극장, 조명조정실, 음향조정실이 있다. 부대시설로 창작실, 노래연습실, 분장실, 무용연습실, 사무실 등이 있다.

극장무대에는 10m의 이동식 회전무대를 비롯하여 악사승강무대, 방창단 이동무대, 수평이동무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대형 및 종합공연이 가능한 첨단 무대시설로 국가급 공연과 주요행사 및 국제예술축전이 여기서 진행된다.

 

- 공연 연습은 어떻게 하는가.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공연이 없을 때에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1인 종목(독창, 만담, 연주 등) 및 개별적 연습을 한다. 연습실은 나름 현대적인 시설로 갖추어졌기에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각 조별(중창조, 방창, 합주 등) 연습을 하고 이후 저녁 7시까지 전체적인 종합연습을 진행한다.

 

-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1990년대 초 조선인민군 및 경비대 군무자(군인)축전에서 내가 출연한 여성독창과 남성방창 ‘샘물터에서’가 1등의 영예를 안았다. 군무자축전은 ‘평양4.25문화회관에’서 주로 진행되었는데 가급적이면 김일성, 김정일이 참석했다. 군인축전에서 우승권에 들면 메달이나 상장, 손목시계 등을 선물로 받는다. 내가 주로 여러 경연장 무대에서 부른 노래가 ‘맑고 푸른 조국의 하늘’, ‘내 고향의 뻐꾹새’ 등이었다.

 

- 현지 공연은 보통 어디로 가나.

군인들이 동원된 국가의 주요대상물 건설현장이다. 1980~1990년대에 ‘혁명의 수도’ 평양시에 건설되는 주요 건축물 공사장에는 인민군 군인들이 많이 동원되었다. 공사규모에 따라 몇 개 대대, 연대 인원이 참여하는 것은 기본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펼치는 것은 일반 기동선전대 활동(10~20명의 예술인이 진행하는 30~40분간의 공연)이고 우리 협주단의 전문공연은 군인들 작업이 끝나고 잘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90분 정도 진행한다.

 

- 협주단 배우 대우는 어떤가.

매해 4월 15일(김일성 생일), 2월 16일(김정일 생일) 그리고 사회안전부 창립절(11월 19일)이면 중앙당에서 선물지함(박스)이 내려왔다. 그 안에는 보통 화장품, 속옷, 양말, 통조림, 술·담배, 사탕·과자, 열대과일 등이 들어있다. 협주단 배우들은 합숙생활을 하는데 하루 식량 800그램 백미에 고기는 3일에 한 번씩 나왔다.

 

- 언제 제대하였는가.

1997년 제대하여 고향인 황해도로 내려왔으며 해주시 예술선전대에 배치를 받았다. 선전대는 해주시 당위원회 선전부 산하로 나름 영예감은 있었으나 그래도 군대에서 멋진 군복입고 예술 활동을 하던 것과는 크게 대우가 떨어졌다.

당시는 북한 최악의 경제난인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국가에서 공급하는 식량과 생필품은 전혀 없고 사람들은 뭐든 자체로 해결하며 살아야 했다. 수년 뒤, 지인에게 부탁하여 해주OO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였다.

 

- 탈북 동기와 경로를 말해 달라.

무역회사 일도 개인 할당량이 내려진다.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따리 장사까지 해야 한다. 사실 나는 예전에 당국으로부터 도강증(사사여권 : 친척방문증)을 받고 중국에 나와 본 경험이 있었다. 2005년 6월 탈북하여 중국 길림성 왕청지역으로 갔고 거기서 친척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 북에 남겨진 8명의 가족을 데려왔다는데.

언제든 공안에 단속될 수 있는 탈북자의 신분이지만 왕청에서 더 옮기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이리저리 떠돌아 다녀봤자 시간만 낭비되고 그만큼 돈도 적게 벌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그 곳에서 3년간 가정집 가사(집안 내 잡일)와 식당서빙, 농장축산 등을 하면서 그 돈으로 북한에 남겨진 자식, 어머니, 형제 등 8명을 데려 내왔다. 2008년 6월 나를 포함 9명의 온 가족이 태국을 거쳐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 순수 본인의 노력으로 8명을 데려왔나.

친척이 보태주는 돈도 조금 있었지만 절반 이상은 내가 온갖 굿은 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번 돈으로 브로커 비용을 충당했다. 사실 중국에서 3년간 살아보니 북한은 정말 사람 못살 곳이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다.

하여 이를 악물고 돈을 벌었고 탈북비용으로 아낌없이 썼다. 사람 생명을 살리는데 쓴 돈만큼 가치가 있는 돈은 없다고 본다. 힘들게 번 돈으로 한국에 온 우리 가족식구 모두 열심히 살고 있으니 그 이상 기쁨과 보람은 없다.

 

- 정말 지극한 ‘효녀’이다.

탈북민사회 대표적 작가인 림일 선생이 그렇게 불러주시니 영광이다. 나는 그냥 내가 먼저 깨우친 세상의 현실을 내 가족에게도 꼭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지옥에서 가족을 데려 내와야겠다는 생각이 컷 던 것이다. 내 노력도 조금 있었겠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본다.

 

- 남한 사회생활 초기 어떻게 보냈나.

전국의 요양원, 장애인복지관, 경로당, 지역사회 행사장, 축제장 등을 다니면서 무료로 공연(노래와 바이올린 연주)을 했는데 일종의 재능기부이다. 무명인의 설음이고 이름이 알려지려면 어쩔 수 없으며 이 분야에서는 보통 그렇다.

그러다보면 언제부터인가 행사에 불러주고 그때는 출연료를 받는다. 지역마다 그리고 행사마다 출연료는 천차만별이다. 노래 2곡을 부르고 연주 1곡을 하는데 적게는 20만원이고 많기는 50만원 가량이다. 딱 정해진 규정은 없다.

 

- 최금실!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12년 2월 5일에 방송된 KBS 가요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서울 강북구편)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탈북가수 최금실’ 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렸다. 이날 방송에서 ‘모르시나봐’(작사 이하영, 작곡 박성훈)를 열창했고 결과 발표에서 1등상인 ‘최우수상’의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사회자는 실향민출신 방송인 송해 선생이었다.

그해 12월 영예롭게도 첫 앨범을 냈다. 아마 탈북민으로 최초인줄 안다. ‘남자의 바람’(작사 정은이, 작곡 남국인), ‘내 사랑은 당신’(작사 정은이, 작곡 남국인), ‘할매꽃’(작사 정은이, 작곡 남국인) 등 나만의 대표곡을 발표하였다.

참고로 알려드리면 보통 앨범은 자기만의 노래 외에도 기존 가수가 부른 노래도 삽입할 수 있으나 이때는 반드시 저작권협회의 승인(저작권 지불)을 받고 해야 한다. 2018년 2집 앨범을 냈고 올해 12월에는 3집 앨범을 낼 예정이다.

 

- 그동안 어떤 상을 받았는가.

2012년 12월 최고영예패(동국대학교 표창), 이듬해 12월 신인가수상을 수상했다. 2015년 10월 제15회 대한민국최고연예대상 봉사대상을, 11월에는 한국가수위원회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2016년 12월 서울 강북구청장 표창을 받았으며 2019년 6월 대한민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부족한 나에게 준 모든 상은 그동안 잘했다고 주었다기보다 앞으로 더 잘하라고 주는 상이라고 본다.

 

- 남과 북의 노래는 어떻게 다른가.

북한의 노래는 대부분 당과 수령 칭송에 대한 내용이다. 모든 노래에 사회제도를 찬양하는 정치사상적 표현이 들어있다. 그러니 억지로는 부르는데 마음에는 깊이 와 닿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남한의 노래는 순수하게 인간과 사랑, 생활에 대한 애정, 감성, 이별에 대한 내용이다. 사람과 사랑을, 자연과 미래를 노래한다.

 

- 본인에게 노래는 뭔가.

나에게 노래는 생의 희열, 삶의 전부이다. 돌이켜보면 그 어려운 사회 북한에서도 그리고 위험한 사회 중국에서도 굳세게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무대에서 부르는 것만이 노래의 전부 아니가.

사람들이 일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 용기를 주는 노래를 부르면 정말 새 힘이 난다. 지난 35년을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듯이 앞으로 35년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살 것이다. 물론 찬송가는 기본이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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