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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유치원생들 수령우상화에 동심 파괴

통일인터뷰.jpeg

 

"경애하는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 북한의 모든 유치원 건물시설에 상시적으로 걸려있는 빨간색 구호판의 글귀이다. 문장에서 ‘아버지’와 ‘원수님’ 사이에 수령의 이름이 들어가는데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서는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으며 지금은 ‘김정은’이 꼭 들어간다. 구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유치원에서 온종일 부르는 노래와 율동에도 ‘아버지’ 수령에게 하늘만큼 고맙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 정규 교육시간에도 미국과 남조선(한국), 일본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의미의 공부가 많이 있다. 이런 괴상한 환경에서 자라는 북한의 아이들은 이후 의무적으로 중·고등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서도 수령우상화 학습·강연, 토론회 등 조직생활을 한다. 폐쇄사회 북한에서 살아 숨 쉬는 동안 정치학습은 전체 인민들의 절대 의무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독재정권이 장장 70여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북한유치원 생활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모처에서 과거 북한 유치원 교양원(교사)을 했던 김가영 씨를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91년 8월, 양강도 혜산에서 아버지가 양강도당위원회 간부였고 어머니가 혜산OO사업소 지배인으로 있던 집 안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나를 중학교 1학년 때 “사회에서 발전(좋은 직장에 가거나 입당하는 것) 하려면 예술적 재능이 있고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면서 과외로 피아노 수업을 받게 해주셨다.

 

- 음악공부는 어디서 하였는가.

6개월간 준비하고 엄격한 시험을 보고 합격해 입학한 곳이 ‘혜산예술전문학교’ 성악반이다. 양강도에서 최고의 예술전문학교로 음악인 전문양성기관이다. 성악반 외에 무용반, 피아노반, 손풍금반, 바이올린반, 현악 및 관현악반 등이 있다. 재적학생 50% 정도의 부모님들이 도·시·군당위원회, 인민위원회, 안전부, 보위부, 검찰 등 권력기관에서 근무한다. 40%의 부모님들은 외화벌이사업소, 상업관리소 등에서 일하거나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10%는 노동자, 사무원 등이다.

 

- 어려운 환경은 뭐가 있었나.

기악반 학생들이 사용하는 손풍금, 바이올린, 기타, 하모니카 등은 본인이 마련하고 타악기, 피아노 등은 여러 학생이 돈을 모아 구입한다. 학교의 악기는 재질이 낮아 관상용이나 같다. 학교를 꾸리고 관리하는 비용과 물자는 학생에게 할당제로 부담되는데 시멘트, 목재, 건축자재, 연료 등이다. 선생(교사)님의 가정에 필요한 쌀, 부식물도 학생들이 보장하는데 이러한 부담 때문에 자진 중퇴하는 학생도 있다.

 

- 가정에 불행한 일이 있었다던데.

내가 13살 때, 어머니는 갑자기 중앙당(호위사령부) 검열을 받았다. 그로인해 병을 만나 40일간 평양에 올라가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며 무죄판명도 받았다. 어머니는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급성 후두염으로 사망했다. 그로 인한 충격이 크셨는지 아버지는 매일과 같이 한숨을 쉬면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한 달 뒤 신경성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렇게 되어 나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으며 이후 이모네 집에서 5년간, 그 후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 이후 학력은 어떻게 되는가.

2007년부터 2년간 혜산교원대학 교양원과를 다녔다. 대학 안에는 3개 학과가 있는데 교양원과는 유치원 선생을, 교원과는 인민학교 선생을, 체육과는 인민학교 체육선생을 양성한다. 여기에도 간부, 잘사는 집 자녀들이 상당수이다. 학교관리에 필요한 물품과 돈을 바쳐야 하는 것은 신통히도 예술전문학교와 똑같다.

 

- 특별히 기억되는 일은 무엇인가.

장마당에서 남몰래 유통되는 씨디알(CD)을 구입하여 보았던 일이다. 내용물은 남조선 드라마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 ‘유리구두’ 등이다. 그걸 보면서 “아하! 남조선이 못사는 나라가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당에서는 “남조선을 나쁘다고 할까?” 라는 의문은 마음속에 생겼다. 그렇다고 그것을 누구에게 대놓고 물어볼 것도 아니다. 북한사회는 주민이 정치적 발언을 잘못하면 하룻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무서운 곳이다.

 

- 유치원 교양원을 언제 하였는가.

교원대학 졸업 후 혜산OO유치원 교양원(교사)으로 배치를 받아 낮은 X반을 담임했다. 유치원에는 낮은반 4개, 높은반 5개로 형성되었고 한 반의 인원은 보통 30~35명 안팎이다. 전체 유치원생은 280~300명 정도 있었다. 최고책임자인 원장을 포함하여 교양원(교사), 식모(영양사), 경리원, 청소원 등을 합쳐 모두 15명의 교직원이 있었다. 재적 유치원생 대부분은 노동자, 사무원, 기술자, 주부 등의 자녀들이다.

 

- 유치원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가.

오전 9시 아이들이 줄지어 등원을 하면 각 반 선생님의 통솔 하에 마당에서 아침점검을 하고 간단한 위생검열 및 체조가 이어진다. 정규 교육(수업)으로는 우리말, 셈세기, 그림그리기, 노래와 춤, 종이접기, 운동시간 등이 있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오침시간이며 오후 5시 이후에는 모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 아이들 교육에서 특별한 점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원수님 따라 배우는 시간’,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원수님 따라 배우는 시간’, ‘존경하는 김정숙 어머님 따라 배우는 시간’ 등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김정일의 생모)을 배우는 우상화 교육과목이다. 세 사람에 대해 배우는 방은 <교양실> 이라는 명패 하에 각각 따로 있다. 그 안에는 해당 사람의 생존 당시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한 도록해설판(벽걸이 사진, 글)으로 기록해 놓았다. 가운데는 해당 사람의 고향집 모형사판이 있다.

 

-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달라.

모형사판 둘레에 놓인 의자에 앉은 아이들은 도록해설판을 가리키며 하는 선생님의 해설을 듣는다. “아버지 김정일 원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총명한 예지를 지니시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나라를 대를 빛내어 나갈 결심을 다졌습니다. 원수님께서는 학교에서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모범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는 내용이다.

 

- 아이들의 집중도는 어느 정도인가.

각 반의 방에서 진행하는 일반 교육시간과 달리 ‘아버지’ 수령을 강의·해설, 영상시청 등의 형식으로 배우는 <교양실>에서의 ‘교양시간’(40분) 만큼은 정중하고 엄숙한 자세를 갖는 아이들이다.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친다. 수령을 따라 배우는 ‘교양시간’은 일주일에 1~2회 정도 있으나 <교양실>에는 한 번 정도 들어간다. 이유는 먼지 한 점 없이 깨끗이 관리되는 <교양실>이 아이들의 잦은 출입으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다소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 또 다른 특이함이 있다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노래와 춤을 배워도 전부 수령우상화, 체제찬양의 내용이 들어간 것이다. 이를테면 ‘인민의 어버이’ 수령이 만들어준 사회주의 지상낙원에서 세상에 부럼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자화자찬한다. 그 영광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꼭 어른이 되어서도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다지는 것이다.

 

- 운동시간에는 어떤 종목을 하나.

미끄럼놀이, 보물찾기, 달리기, 그네타기 등을 한다. 특이한 것은 ‘미국 놈 때려 부수기 놀이’이다. 볏짚(혹은 나무)으로 만든 미군모형이 마당 가운데 세워져있다. 아이들은 “승냥이 날강도 미국 놈을 쳐 부스자요!” 라는 선생님의 엄한 구령에 따라 순번대로 나가서 완구 총이나 검으로 미군모형을 쏘거나 찌른다. 6~7살 어린 아이들에게 이때부터 반미 증오사상을 당국에서 철저하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 안 좋은 추억 같은 것도 있는가.

유치원에서 점심시간에 나오는 무시래기소금국은 맛이 없어서 아이들이 먹지 않는다. 아이들이 점심 때 각자 도시락을 펴놓으면 선생님은 도시락 절반을 덜어서 큰 그릇에 담는다. 선생님과 원장, 경리, 식모, 청소원 등 직원들의 몫이다. 이런 식으로 각 반에서 모여진 음식과 반찬은 원장실에 모여 선생과 직원들이 나눠먹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다. 학부모들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유치원 선생님이 제 자식을 잘 키워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무 말도 못한다.

 

- 자괴감 같은 것은 안 들었는가.

전혀 안 들었다. 유치원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대학), 병원, 상점, 행정위원회 등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 일종의 권력을 악용한 주민갈취 방법이다. 오히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한다. 당국에서 인민들에게 가르치는 사회주의 도덕성과 현실에서 사람들의 도덕성은 전혀 다른 것이다.

 

- 한국에는 언제 왔는가.

혜산교원대학 졸업 후 유치원 교양원 생활을 하면서 북한사회가 빈익빈, 부익부의 차이가 너무 크며 무엇보다 일상에서 인민들이 말을 잘못하면 무섭게 처벌하는 것을 알았다. 그 사회에서 더 살아보았자 아무런 희망이 없을 듯하였다. 2010년 외할머니가 사망했고 이후 평양서 살던 이모가 북한사회에 더 미련이 없다며 위험해도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2012년 겨울 이모, 사촌언니와 압록강을 건너 탈북을 했고 라오스, 태국을 거쳐 2013년 3월 서울로 왔다.

 

- 사회생활 초기 무엇을 하였나.

음식점, 카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니 한국은 대학졸업생들의 사회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마냥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북한은 국가에서 본인들의 적성과 의향에 상관없이 강제로 직업을 배치하니 일단 대학졸업생들의 일자리 걱정은 전혀 없다(웃음). 이후 의료제조회사에 취업하여 2년간 일을 하였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종편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방송인으로 활동 중에 있다.

 

- 탈북방송인의 사명감은 뭐라고 보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청자의 시청률을 의식하는 예능방송이라 해도 그 안에는 진실이 존재해야 한다. 종편방송에서 예능을 포함하여 뉴스, 시사, 기획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북한을 많이 조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북한의 매체는 독재자 수령을 선전하지만 남한의 탈북민은 종편방송에서 북한주민을 대변한다.

 

- 유튜브 ‘김가영의 내로남불’을 운영하던데.

작년 11월에 개설하였다. 내가 한국에 온지도 벌써 10년이 되어온다. 탈북민은 계속 내려올 것이다. 선배로써 후배들에게 정착에서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등 남한생활 과정에 생기는 심리(우울증) 상담을 하려는 목적에서 운영한다. 북한에는 ‘우울증’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굳이 비슷하게 표현하면 ‘정신병’으로 생각한다. 탈북민들은 대부분 탈북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심각한 트라우마(정신감정충격)를 겪었기에 누구보다 심리상담을 하고 치유를 받아야 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요즘 남한의 젊은이들 속에 ‘헬조선’ 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 어려운 한국사회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살았던 북한을 너무 모르는 남한의 청년들이다. 그들에게 “자유가 있고 최소한 굶어죽지 않는 이 땅에서 태어나 사는 것을 감사히 여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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