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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지하철의 숨겨진 비밀을 말하다

통일인터뷰.JPG

 

 

북한에는 지하철이 평양에만 있다. 250만 인구도시 평양은 북쪽서 남쪽으로 흐르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본평양, 동평양으로 나뉜다. 마치 서울이 동쪽서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 강남으로 나뉘듯이 말이다.

지난 1973년 9월에 개통된 평양지하철은 대동강 서쪽 본평양 지역에 모두 2개 노선, 22km의 구간에 17개의 역(정거장)이 있다. 지하 100m 아래에 있는데 평균 10~30m 깊이의 서울지하철에 비하면 무려 3배 이상 깊은 것이다.

노동당은 인민들에게 평양지하철을 ‘지하평양’, ‘지하궁전’으로 선전한다. 지하철역사(승강장)가 크지 않지만 다소 고급스럽고 꾸려진 것이 특징이다. 체제홍보 내용의 대형그림, 조각상, 샹들리에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눈길을 끈다.

평양지하철 기록은 다소 중요하다. 북한당국의 기록은 수령의 업적칭송 차원에서 만들어지고 보존되기에 진실성이 부족하다. 경기도 평택에서 평양지하철 건설근무 경력을 가진 최태선 전 조선인민경비대 군관(장교)을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52년 2월 자강도 송원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화풍광산(연·아연 생산전문) 노동자, 모친은 주부였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17살 때, 1969년 9월 사회안전부(남한의 경찰청) 공병국에 입대하였다.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위치한 부대에서 3개월간 신병훈련을 받고 공병국 5려단(조선인민경비대 6607군부대) 공무동력대에 배치 받았다. 3년간 소대병영 보초를 섰고 이후 용접, 선반, 설비관리 등의 기술을 배웠다.

 

- 이후 지하철 건설에 투입되었나.

그렇다. 천리마선(봉화역-붉은별역, 6개 역) 구간 공사에 참여했다. 천리마선은 형식상 1단계지만 이보다 앞서 진짜 ‘1단계’는 1962년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구간은 서포기지창-광명역(지상에 현재 금수산태양궁전이 있음, 당시는 김일성 집무실)까지다. 목적은 유사시 김일성이 지하로 내려와 비밀통로를 이용 평양시 교외지역인 서포로 빠지기 위해서다. 천리마선은 2단계로 봐야 정확하다.

 

- 그러면 ‘3단계’가 혁신선인가.

당연하다. 1978년에 완공한 혁신선(낙원역-광복역, 8개 역)이 엄연히 평양지하철 ‘3단계’이다. 낙원역은 대성산혁명열사릉, 중앙동물·식물원, 대성산유원지 등의 근처에 있으며 광복역은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평양지하철 건설 ‘4단계’는 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1989년)을 계기로 1986년에 광복역-만경대유희장까지 구간을 확정하고 시작했으나 2년 뒤 중단했다.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한계를 느끼고 당국이 조용히 포기하고 말았다.

 

- 진짜 ‘1단계’와 ‘광명역’에 말해 달라.

세상 사람들이 알 듯 평양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로 150m 내려가야 승강장이 있다. 수직으로 100m 깊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1단계는 그 보다 150m 더 내려가야 있다. 유사시 수령 전용 ‘지하도로’라고 보면 정확하다. 갱도의 높이는 어른 키 2배 정도이고 너비는 대형승용차 한 대가 넉넉히 지나갈 정도의 규모이다.

광명역은 낙원역과 삼흥역 사이에 있는 역으로 무정차 역이다. 유사시 수령이 지상에서 내려와 전용도로를 이용하여 서포역으로 이동한다. 거기에는 수령 전용열차가 대기하고 있으며 언제든 북쪽으로 출발준비를 하고 있다.

 

- 중앙당청사 아래도 터널이 있다고 하던데.

있다. 2단계 구간에 있는 ‘승리역’인데 개통 당시 지상역사는 러시아대사관 정문에서 150m 지점에 있었다. 여기서 중앙당본부청사(현재 김정은 집무실)와 거리는 불과 수십 미터이다. ‘승리역’은 김정일이 정권을 잡으면서 중앙당 특별위수구역으로 편입, 일반 주민들이 드나드는 ‘승리역’ 입구는 제1백화점 앞에 따로 개설했다.

 

- 평양지하철은 수령 대피목적이 우선인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지하철 건설 당시 공식적으로 불리던 이름도 ‘평양시반항공지하구조물’이었다. 말로는 유사시 평양시민 대피용도로 지은 지하철이지만 그보다 더 안전하게 그것도 먼저 건설된 것이 바로 수령 전용지하차도이다.

김일성 주석궁(현재 금수산태양궁전), 중앙당 청사(현재 노동당본부청사) 등 수령 일가가 사용하는 특수시설에는 반드시 지하로 연결이 되어있다. 이 외에도 지방에 있는 수령 전용별장으로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수두룩하다.

 

- 왜 그렇다고 보나.

김일성 수령의 자손은 대대로 엄연한 독재자이다. 인민에게 지은 죄가 하도 커서 전쟁 때는 적군(미군, 한국군)을 두려워하겠지만 평상시는 만에 하나라도 반정부 폭동이나 쿠데타가 있을지도 모르니 아군(인민군)을 더 무서워한다. 북한에서 외부의 침공으로 시작되는 전쟁이나 인민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김 씨 수령은 뭐든지 제 생각대로 제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왕’이기에 가능하다.

 

- 건설 작업의 실태를 말해준다면.

당에서 공사기간을 최종 및 분기별로 지정해준다. 그 시기(월)마다 계획과제를 수행하자니 군인들이 24시간 2교대로 투입해 진행하였다. 공사 중 수맥(땅속에 흐르는 지하수 줄기)이 발견되어 한 개 소대가 몰살된 경우도 있었다.

일부 구간 공사장에서는 기계가 없거나 부족하여 군인들이 곡괭이로 돌과 흙을 파고 삼태기로 담아 등짐으로 퍼 날랐다. 동발목이 붕괴되어 수십 명이 깔려 죽기도 하고 여기저기 안전부주의로 부상을 당하는 군인이 많았다.

 

- 왜 동평양지역에는 지하철이 없는가.

평양지하철이 땅속 100m 아래에 있는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수맥 때문이다. 평양의 지하에는 유난히 수맥이 많다. ‘2계단’ 공사 때 대동강 아래로 본평양과 동평양을 잇는 건설시공을 수차례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서울의 한강보다 작은 대동강이 깊은 것은 아닌데 방수시설 분야에서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 공병국의 특수성은 뭔가.

평양지하철보다 먼저 안전하게 완벽히 건설된 김일성 지하도로 건설에 동원될 만큼 출신성분이나 가정 토대(이력)에서 만큼은 호위국보다 더 높은 비중으로 본다. 김일성 별장시설 건설 진행은 1차는 중앙당8국, 2차는 호위국 건설대, 3차(마감공사)는 공병국 1려단이 맡는다. 전문부대이면서도 최고의 안전차원에서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인민들이 무력부 군인보다 공병국 군인을 낮춰보는 경우가 있는데 당에서 보는 비중은 그렇지 않다. 무력부(조선인민군) 군인은 유사시 전선에서 적과 싸우지만 공병국(조선인민경비대) 군인은 후방에서 반당, 반혁명분자들과 싸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은 동서고금의 현실이고 진리이다. 참고로 외삼촌이 전쟁 때 치안대 경력이 있는 사람도 무력부에서는 군관(장교)이 될 수 있지만 공병국에서는 어림도 없다. 4돈에 8촌까지 깨끗해야 한다.

 

- 공병군관의 예우 중 특이한 것은.

공병국은 사회안전부(조선인민내무군)와 동일한 계열이다. 만기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사회로 나온 공병국 출신 군관이 지역사회 사회안전부에서 근무할 능력이 있다면 동급으로 입대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제대하면 민간인 신분이 되는 무력부나 호위국 출신 제대군관들에게 있어서 꿈도 꾸지 못할 특권이다.

공병국 제대군관들의 사회 배치는 본인 고향에 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것도 타 군종 제대군관들이 은근히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주로 중앙(혹은 지방) 급 기관이나 사회적 물질혜택이 많은 특수한 부분에 배치되는 사례가 많다.

 

- 다른 경력은 뭐가 있나.

상사계급으로 만기 복무를 마칠 무렵 우연히 특별한 기회가 왔다. 1려단장의 아들에게 과외로 바이올린을 배워줬는데 그 덕분에 조선인민경비대 77호 병원(공병국병원) 주방에 배치를 받았다. 3개월 뒤 소위계급을 받고 경리장이 되었다. 이후 평양상업대학을 통신(남한의 방송통신과 비슷함)으로 다녔고 4급 조리사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경리지도원, 양식과장을 거치면서 소좌(남한의 소령) 계급까지 올랐다.

 

- 언제 제대하였는가.

1995년 7월 제대하여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강구역 종합식당 창고장(식재료 관리담당자)으로 배치를 받았다. 북한에서는 상점, 상품공급소, 식당, 외화벌이회사 등 인민생활관련 부분에 종사하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인기이다.

4년간 나름대로 좋은 직장에서 근무했으나 속으로 실망을 느꼈다. 당시 ‘고난의 행군시기’인데 국가식량배급을 주지 않아 아사자가 많았다. 그래서 러시아에 돈 벌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1999년 12월 러시아로 벌목을 갔다.

 

- 러시아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극동지방 아무르 주 띤다로 갔다. 바이칼 호수 인접지역에 위치한 인구 5만 명 쯤 되는 도시이다. 러시아 상주 북한사업소에서도 일감이 크게 없어 개인별로 청부(개별노동)를 해서 사업소에 운영자금(당자금)을 내라고 한다. 주로 개인사택이나 시설물 공사장에서 불법적으로 일을 하는데 3일 정도 해서 200달러를 받았다. 청부는 혼자하기 보다 2~3명이 조를 짜서 동업 형식으로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 신변이 불안하지 않던가.

크게 그러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 인원점검 차로 내려오는 사업소 보위지도원(비밀안전원, 남한의 국정원 직원 격)에게 몰래 100달러를 찔러주면 눈감아준다.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탈북자가 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경찰이 단속을 하지 않는다. 중국은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수시로 국경일대를 순찰하여 탈북자를 찾아서 강제 북송시킨다. 그것은 김정은이 시진핑과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 남한에는 언제 왔는가.

러시아에서 2016년까지 17년간 살면서도 남한에 오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어느 날, ‘자유아시아방송’을 들으면서 탈북여성들이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을 거쳐 남조선으로 간다는 내용을 들으면서 긴가민가하였고 깊이 고민을 했다.

그러던 중 옛 동료한데 자기는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증을 받고 행복하게 산다”는 전화가 왔다. “아! 내가 지금까지 헛살았구나. 나도 한국으로 간다”고 결심을 하고 모스크바 UN난민사무실의 도움으로 2016년 8월 한국에 왔다.

 

-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

나이 65세에 한국에 왔으니 속절없이 흘러간 젊은 시절이 크게 후회되었다. 2017년 1월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로 나와 경비교육을 받고 1년 6개월간 아파트 3군데 경비를 섰다. 다행히 체력이 건강하니 일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작년 12월부터 평택포승지구 국가산업단지 내 ‘이디야드림팩토리’서 경비원으로 근무한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27년간 평양에서 살아보았는데 중앙당간부들도 자가용승용차가 없고 식·생필품은 국가에서 주는 것만 받고 살더라. 나는 남한에 와서 자가용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내가 사는 동네의 슈퍼에는 1년 내내 식품과 생필품이 가득 넘쳐난다.

그러면 내가 평양의 중앙당간부보다 100배는 낫다. 인생말년에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살게 해준 대한민국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또한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게 해준 ‘이디야드림팩토리’에도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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