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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안원(경찰)의 위력(威力)은 대단하다"

 

통일인터뷰.jpeg

 

북한의 도(道) 인민보안국은 굳이 남한으로 치면 도(道) 지방경찰청에 해당한다. 참고로 예전에 ‘정치보안국’ ‘사회안전부’ ‘내무성’ ‘인민보안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북한경찰기관의 명칭은 2020년부터 ‘사회안전성’으로 바뀌었다. 사회안전성은 “사회의 안전질서를 유지하고 국가와 인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반국가범죄 및 반당반혁명 행위를 적발·처벌한다. 아울러 전체 주민등록 보존, 경제부문 안전 감독, 비밀문서 보관 관리 등을 하고 있다.

김정은이 수장으로 있는 국무위원회 직속기관으로 국방성, 국가보위성과 같이 무력, 정보, 공안 특수기관이다. 북한사회가 절대적 수령(최고지도자) 충성체제인 만큼 사회안전성의 최고사명은 ‘수령보위, 제도옹위’라고 보면 될 것이다. 특수신분의 사회안전원들은 체제를 지탱하는 핵심계층이다. 말이 좋아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안전원”이지 실제는 “인민의 피땀을 짜내는 권력자”다. 인천시 모처에서 과거 양강도인민보안국 교환수였던 탈북여성 최정임 씨를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80년 5월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났고 언니가 있다. 아버지는 도(道) 안전국(경찰) 안전원, 어머니는 주부였다. 199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백수식료품공장’ 보위대원(실탄이 장전된 무기를 휴대하고 제복을 입은 경비원)으로 입대를 했다. 남한으로 치면 ‘사회복무요원’(예전의 공익근무요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양강도 소재지 혜산시 안에서 실탄5발, 공탄3발이 장전된 자동보총을 소지하고 경비근무를 서는 단위는 연유공급소, 양정사업소, 특수식료공장 등 3곳뿐이었다. 그만큼 국가적으로 볼 때 다소 중요한 부문이기 때문이다.

 

- ‘소백수식료품공장’이 왜 특수 단위인가.

일명 ‘시제품공장’ 이라고 불리는 ‘소백수식료품공장’에서는 딱 2가지 제품, 즉 술과 당면만 생산한다. 술 이름은 ‘양강주’ ‘백두산들쭉술’ ‘코냐크’ 등이 있고 당면은 ‘농마당면’, ‘녹두당면’이 있다. 최상급의 수준에서 생산된 제품의 80%는 평양의 주석궁과 중앙당으로 올려 보내진다. 이것을 일명 ‘8호’ ‘9호’ 제품이라고 부른다. 20%는 도(道)당위원회, 도안전부, 도검찰소, 도보위부 등 고위간부들이 소비한다.

 

- 안 좋은 추억은 무엇인가.

고난의 행군시기(1990년대 중 후반) 노동자들에게 식량배급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출근을 해야 하니 허기진 사람들은 산에 가서 민들레, 냉이, 쑥 등을 캐서 밀가루에 섞어 식량으로 대용했다. 당에서는 “인민들이 겪는 시련은 모두 미제와 남조선괴뢰들 때문” 이라고 강연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반복하여 주입시켜주었다.

 

- 공장은 제대로 운영이 되었나.

그렇다. 직원들에 대한 식량이나 후방물자 공급은 전혀 없었는데 평양진상품인 8호 9호 술을 생산하는데 식량(찹쌀·입쌀)은 꼬박꼬박 사용했다. 주민에게 배급할 감자는 없어도 8호 9호 당면생산용 감자는 중단 없이 공장에 들어왔다.

항상 배고픈 노동자들은 공장의 제품을 훔쳐 퇴근하기도 하며 보위대원은 그것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뇌물(술·담배)을 받는다. 간부들은 더 크게 ‘도둑질’ 한다. 일부 보위대원에게 다량의 제품을 몰래 유동시킬 것을 지시하기도 한다.

 

- ‘양강도인민보안국’에는 언제 입대했나.

1997년 여름, 김정일의 방침으로 각 도(道)안전국에 교통지휘대가 생겼다. 평양서 1950년대 생긴 교통지휘대가 지방은 이때 생겼으니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40년 이상이다. 신입직원 채용은 간부들의 조용한 입소문으로 퍼져 이뤄진다. 안전원 가족이었으니 쉽게 입대했으나 기준 키에 0.5cm 미달되어 교환소대로 갔다.

 

- 교환수의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간부들과 많이 접촉하는 직무이어서 당연히 인물심사와 신체검사는 기본이다. 내가 입대 당시 양강도인민보안국에는 13명의 교환수가 있었는데 모두 부모가 도(道)급 기관(도당위원회, 안전부, 검찰, 보위부 등)의 간부집 딸들이었다.

교환수는 목소리가 또렷하고 정확해야 한다. 매일 아침 진행하는 30분간의 음성훈련은 교환수 1:1로 표준어(평양 말씨) 대화 연습이다. 예하면 “여보세요. 여기는 혜산입니다. 평양입니까?”를 완전한 표준어로 구사해야 한다. 지방사투리를 없애고 표준 말씨로 소리를 변성시켜 한다고 해서 일명 ‘가성훈련’ 이라고 한다.

 

- 교환수 업무를 소개해 달라.

교환실에는 간부석, 평양석, 일반석 등이 있다. 3명이 2시간씩 다른 조와 교대로 바꿔가며 근무를 선다. 간부석 코드는 도급기관 간부들 전용이다. 평양석은 성, 중앙기관, 타 도(道), 시(市) 전문 코드이고 일반석은 각 사무실용이다.

도당위원회, 도검찰, 도행정위원회, 도보위부 등 도급기관 중에서 전화와 교환수가 가장 많은 기관은 바로 도인민보안국(안전국)이다. 그러니 타 기관 간부들이 가끔 사적인 전화사용을 도안전국 교환수에게 몰래 의뢰하기도 한다. 간혹 사회의 일반사람들(지인)도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장거리전화 사용을 부탁하기도 한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입대 1년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 간부석에서 도당조직부 책임지도원의 전화를 타 지역과 연결해주었다. 그런데 공적인 전화가 아니고 개인적인 내용이어서 도중에 연결을 해제시켰다. 원칙상 공무용으로 사적인 전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얼마 뒤 화가 난 도당 책임지도원이 조직부장 차를 타고 도안전국에 와서 행패를 부렸다. 온갖 폭언, 쌍욕을 퍼부었는데 그래도 나는 “원칙을 지켰을 뿐이다”고 항변했다.

 

- 간부들의 전화 내용을 듣는가?

100% 엿듣는다. 대화 속의 업무적인 내용은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도 말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간부(인사) 업무와 관련된 승진 및 이동청탁 문제 등이다. 퇴근 후에 혹은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면 그 자리에서는 영락없이 큼직한 뇌물(가전제품, 외화 등)이 오고 간다. 너무나 보편적이고 예사로운 일이다.

간부들은 언제나 교환수들을 조금은 경계한다. 그들(책임비서, 조직비서, 선전비서, 간부부장 등)은 저마다 특정 교환수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한다. 일종의 정보원으로 활용하며 이는 곧 교환수들의 기를 눌러놓는 것이나 같다.

 

- 근무 중 고달픈 순간은 언제인가.

양강도에는 백두산, 삼지연 등 수령과 연관된 혁명교양 사적지가 많다. 생전에 김일성은 여름 한 철을 백두산 지역 별장에서 보냈다고 한다. ‘백두산이 고향’인 김정일이 양강도에 현지지도 내려오면 도급기관 전체가 비상이 걸린다. 합숙생활을 하는 우리 교환수들은 일체 외출 등이 절대 불허되며 특별근무에 돌입한다.

 

- 안전원(경찰)의 특권은 어떤 것인가.

일반 사회간부들이 친인척 비리 및 범죄문제에 관해 경감·면책을 요구할 때 우리를 통해서 도안전국 간부들과 접근·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술·담배를 뇌물로 받는데 그에 따라 중범죄자도 경범죄자로 되고, 교화소(감옥)에 갈 것도 단련대(무보수 노동현장)로 가는 경우가 있다. 유죄가 무죄로도 되고, 5년형이 2년으로 줄기도 한다. 뇌물수수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되어 있고 받지 않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이다.

 

- 또 다른 풍경이 있다면.

도안전국에는 ‘경제감찰처’ 부서가 있다. 사회의 공장·기업소 노동자들의 출근 및 재직 현황을 조사하는 업무를 전담한다. 현장의 실태조사는 도당에 보고되고 결함이 있는 단위책임자들은 도당에 불려가 비판이나 처벌을 받는다. 공장 간부들은 ‘경제감찰처’ 안전원들이 검열을 나오며 뇌물을 주며 눈감아 달라고 부탁한다.

또한 도안전국에는 800명 안팎의 인원이 있는 ‘기동대’(전투경찰)가 있다. 장마당, 공공장소에 긴급 출동하여 인민들을 통제하는 안전원들이다. 이들은 저녁에 화물자동차 한 차 분량의 회수물자(공산품, 식품 등)를 갖고 들어온다.

 

- 이후 경력은 어떻게 되나.

도안전국 교환수생활 3년 지나 양강도재정전문학교(1년제)에 위탁생으로 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가정주부로 생활했다. 안전국생활과 달리 사회생활은 주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하여 중국과 광석, 통나무 등의 종목으로 밀수(개인 비밀 무역거래)를 하게 되었다.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중국과 혜산을 한 집안 아래 윗방 드나들 듯하며 밀수를 시작한 2006년 7월, 약물성 중독으로 간복수가 왔다. 중국에서 20일간 머물며 치료를 했었고 2010년에는 공안에 단속, 북송되어 양강도안전국 구류장에 1년간 갇혀 있었다.

그나마 옛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지 안 그랬으면 보위부로 이송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2014년 간복수가 재발되었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중국이나 남조선으로 꼭 가야겠구나!”하고 탈북결심을 했고 이듬해 9월 재탈북했다.

 

- 남한에는 언제 왔는가.

‘밀수꾼’으로 중국에 체류하는 것과 ‘탈북자’로 대륙에 숨어있는 차이점은 분명히 있더라. 살벌한 중국공안의 단속을 피해 제3국으로 이동을 해야 했으며 라오스에서 3개월 체류하고 2015년 12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으로 왔다. 이듬해 5월 탈북민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수료하고 사회로 나와서 곧바로 OO컴퓨터전문학원을 다녔다. 이후 서울에 있는 모 탈북민단체 총무로 3년간 재직했다.

 

- 탈북민단체의 특성은 뭐라고 보나.

탈북민 개개인을 보면 모두 영웅이고 훌륭한데 어떤 조직체에 소속되면 그렇지 못하더라. 협동 및 단합심이 크게 부족하다고 본다.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혹은 어느 단체가 좀 잘 나간다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폄하하지 못해 안달아 한다. 이것은 분명 누워서 천장에 대고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현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삼성건설주식회사 현장사무소와 인천OO반도체조립회사 등에서 근무하면서 이북에 두고 온 아들(당시 14살)에게 돈을 보내주었다. 지금은 20살이 되었는데 다행히 제 밥벌이는 하면서 살고 있다. 언젠가 꼭 내 곁으로 오리라 확신한다.

현재는 로고스문화예술교육원(4년제) 청소년심리학과에 2년째 재학 중이다. 열심히 학업을 마치고 사회복지 특히 청소년복지 분야에서 전문 일을 하려고 한다. 탈북청소년들의 문제도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의 한 곳이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는 남한에 사는 중국 조선족들이 형성한 ‘차이나타운’ 지역이 있다. 여기서는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 관광, 요식업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조선족들이 마치도 자기네 고향마을처럼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에 가면 한국인들이 밀집해 있는 ‘코리아타운’ 지역이 있다.

우리 탈북민들도 서울이나 인천 같은 대도시에 일명 ‘탈북민마을’을 형성하고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남한사람들이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하듯이 우리 3만 탈북민에게도 분명히 ‘이북사람’ 이라는 지역감정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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