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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꿈으로 빚는 ‘농태기’ 전통주

 

통일인터뷰.jpeg

 

평양과 서울에서 각각 25년 이상을 살아보니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만큼은 남이나 북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성인 3명 중 2명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시는 것으로 30개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술 소비량 1위이다. 우리네 일상에서 달고 쓴 술은 적당히 먹으면 보약이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과음하여 실수나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도 번번한데 술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17조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면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체제특성상 주민생활과 관련한 각 부문의 통계를 발표하지 않는다. 특히 살인, 행방불명, 강간, 동성연애, 방화, 음주사고, 절도 등 범죄가 그렇다. 대부분의 경제범죄 사건 사고는 음주과음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민족의 비극, 분단 80년을 가까이 하면서 남과 북의 문화가 골이 깊어지고 있다. 훗날 통일이 되면 이를 합치는 것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지난 6월 중순,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김성희 하나도가 대표를 만났다.

 

- 고향이 어디인가.

1974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있는 가족 때문에 상세한 소개는 어렵다. 형제는 3남 1녀였고 부친은 회령OO공장 노동자, 모친은 주부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농구, 태권도 등 운동을 좋아했다. 199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체육특기생으로 조선인민군 제OOO군부대에 입대하여 8년간 군사복무를 했다.

 

- 군 입대는 자의적인가.

남자와 달리 여자의 군 입대는 의무제가 아니다. 어머니가 “군대서 많은 걸 배우고 자신을 단련할 수 있다”며 적극 부추겨 군대에 나갔다. 그러니 나의 군 입대는 자의 반, 타의 반인 것이다. 제대 후 함경북도 OO병원 준의사로 배치 받았다. 참고로 북한에서 ‘준의사’와 ‘간호원’은 남한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이다.

 

- 북한의 병원체계는 어떻게 되나.

북한은 각 도, 시, 군(구역)에 종합(인민)병원이, 동(리)마다 진료소가 있다. 대신 개인병원이나 기업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은 전혀 없다. 모두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운영하는 병원뿐이니 경쟁력이나 발전력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 인민병원의 실태를 말해 달라.

우스갯소리로 “북한의 병원에는 의사만 있고 약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난 1980년대 후반 동구라파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로 제약공장들이 가동을 멈췄으니 병원에 약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졸업생 의사, 준의사(의학전문학교 졸업생)는 계속 생긴다. 환자는 병원으로 진단(처방)만 받으려고 오는 형국이다.

 

- 수술 및 입원환자는 어떻게 치료하나.

구급 외과환자가 수술을 받는 중 정전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전기용 발전기를 환자 측에서 제공하면 무난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수술 전과 후, 환자가 사용할 소독용품을 비롯한 의료 약품도 모두 본인이 준비해야 한다.

입원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정기간 병원에 입원해서 본인이 먹고 사용할 식품과 생활용품은 전부 자체로 마련해야 한다. 대부분 장마당(재래시장)에서 구입하는 중국산 약이며 의료용품이다. 장마당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면.

당시 내 월급이 2,000원 가량이었다. 물론 제대로 받아 본적은 없지만. 병원의 구급환자에게 절실한 항생제는 장마당에서 페니실린 1병(주사 한 번 분량)이 150원, 암페실린은 200원 정도 하였다. 환자가 사와야 하는 것이다. 소독약, 붕대, 마스크 등 심지어 환자 숙소용 청소도구까지 모두 입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간부들과 돈 있는 사람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병원을 이용하지만 돈 없는 노동자, 백성들은 병이 나도 병원에 못 오는 실정이다. 특히 농민들이 그렇다. 그 귀한 옥수수와 쌀을 팔아서 주사약 몇 대를 구입해오는 농민도 있었다.

 

- 의사들은 어떻게 사는가.

국가에서 월급은 물론, 식량배급도 전혀 못주는 형국이니 모든 사람들이 개인주의를 하면서 살아간다. 의사들은 힘(권력) 있고 돈 많은 전주(부자)들에게 붙어서 소위 주치의가 되는 것이다. 정성껏 하는 처방은 물론이고 완치 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산다. 그들에게서 받는 돈과 뇌물(생필품, 식량 등)이 만만치 않다.

 

- 준의사와 간호원들은 어떤 방법을 쓰나.

약 장사를 한다. 장마당서 중국산 약품을 도매가로 사서 입원 환자들에게 비싸게 판다. 간호원은 링거를 꽂고 주사를 놓거나 혈압을 재는 등의 일을 한다. 이것을 하면서 간단한 처방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준의사이다. 이 두 사람을 통솔하고 환자의 병명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진단을 내리는 사람은 바로 의사이다.

 

- 탈북 동기는 무엇인가.

OO병원 근무 4년째 결혼을 했고 2년 뒤 2살짜리 딸과 나를 두고 남편은 하늘나라로 갔다. 어느 날, 내가 담당한 환자가 자기네 가족은 더 이상 고향땅에 미련이 없어 탈북하기로 결심했다며 나도 동행하지 않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다음날, 고민 끝에 수락했다. 이유는 2살짜리 딸의 장래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34년 살아보았지만 고향에는 희망이 없다. 의사가 환자의 돈주머니를 진찰하고 환자의 뇌물로 살아가야 하는 빈곤한 나라에 어떤 미련도 없었다.

 

- 언제 한국으로 왔는가.

2008년 가을, 2살짜리 딸을 업고 두만강을 건넜다. 군인의 총구를 뒤로 했으니 공포도 컸지만 그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고향땅을 떠나야만 하는 그 슬픔이 더욱 컸다. 그것도 세상에 태어난 지 2년이 갓 넘은 아기와 함께 생사운명 길에 올랐으니 말이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이듬해 3월 서울에 왔다.

 

- 사회생활 초기 무엇을 했나.

식당 주방보조 일을 3개월간 하였다. 이후 충청북도 음성군에 소재한 OO자동차부품제조회사에서 현장검사원으로 근무했다. 월급도 많았고 나름 적성에 맞았으니 8년간 단 하루의 결근도 없이 모범적으로 근무했고 표창도 몇 번 받았다.

회사 일을 하면서 세종사이버대학교(4년제)에서 경영학,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으로 졸업했다. 또한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운영하는 2년제 교육과정을 매주 2일간 씩 참여하여 수료했다. 밤 10시에 끝나면 운전하고 음성까지 내려왔다.

 

-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어느 날, 초등학생인 딸이 “엄마! 난 꼭 화가가 되고 싶어! 학원에 다니면 안 될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남한에 와서 열심히 사는 이유가 딸을 잘 키우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결국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딸을 학원은 물론 대학까지 보내려면 내가 받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직장생활을 접고 사업을 하게 되었다. 생애 첫 사업이니 이것도 어쩌면 새로운 인생의 도전이고 시험장이었다.

 

- 왜 양조업종을 선택하였는가.

경주 최 씨 외갓집의 제주(조상 제사상에 올리는 술)는 대대로 전해오는 가문의 내림주로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도 제주를 빚을 쌀만큼은 꼭 두었다가 술을 빚는 가풍이 있었다. 거기에 술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 우리 집은 가양주인 농태기(밀주)를 만들어 옥수수와 바꾸고 옥수수를 분쇄하여 옥수수밥을 지어 양식을 마련하였다.

밥 짓는 과정에 나오는 쌀앙금을 모아 다시 술 빚고 찌꺼기로 돼지를 키워 육류를 팔아 돈을 마련해 자녀들을 키웠다. 어머니를 도와 술 빚는 일을 자주했다. 참고로 ‘농태기’는 북한말로 서민층인 농민들이 먹는 저렴한 술이란 뜻이다.

 

- 하나도가는 언제 설립하였나.

2018년 11월, 충북 음성에서 설립했다. 여러 탈북선배 사업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통일전통주 제조업소 ‘하나도가’ 이름의 뜻은 북한의 가양주 제조기술과 남한의 풍부한 재료의 만남으로 작은 병속에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아내는 통일 전통주제조업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판매는 2019년 10월부터 하였다.

 

- 어떤 제품이 있는가.

대표적으로 경주 최씨 가문의 내림주인 태좌주(전통주), 북한의 대표 서민주이며 순곡주인 증류식소주 농태기(가양주), 함경도식 막걸리인 함경도감주가 있다. 태좌주는 음성군의 쌀과 맑은 물, 고추씨까지 더한 명주 중에 명주이다.

‘농태기’는 내가 한국에서 최초로 상표등록을 했고 한국문화기록에 남겼으니 어쩌면 통일에 기여한 셈이다(웃음). 또한 천년초를 이용한 유산균엿, 분말, 국수 등을 생산하며 앞으로 종목을 더 늘릴 계획이다.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이면 통일명주인 농태기 세트, 천년초 국수와 엿이 들은 선물세트 등이 출시되고 있다.

 

- 함경도 감주는 뭔가.

내 고향 북한 회령지역의 술 제조방식 그대로 100% 우리 쌀과 직접 재배한 천년초 열매를 첨가해서 수작업으로 빚은 막걸리이다. 참고로 북한서는 막걸리를 ‘탁주’ 혹은 ‘감주’라고 한다. 천년초는 선인장의 일종으로 칼슘과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항산화 작용과 항암효과가 큰 약초식물이다. 조만간 과실주도 출시한다.

 

- 남과 북의 음주문화가 다르지 않나.

당연히 다르다. 북한서는 술자리를 한 번에 끝내는 것이 기본이다. 보통 식당에서 보다는 가정집에서 술자리가 있는데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남자들이 밖에서 실수(음주사고)를 덜 하는 것이고 단점은 술상 차리는 여자들의 고생이다.

아직도 가부장적인 음주문화가 만연한 북한서는 여성들은 술상을 차리는 사람이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한 번의 술자리에서 끝내는 북한의 음주문화도 장점일 수 있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 본인의 술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남한에 먼저 온 통일인(탈북민)인 내가 북한의 전통주를 여기서 제조하고 있다. 꿈같은 일이다. 술도 음식이며 희로애락을 담은 인생의 윤활유라고 본다. 입맛을 우선하는 남한의 음식문화와 원재료의 맛을 우선하는 내 고향의 음식문화를 깊이 알고 그 특성을 살려 더 건강한 음식, 더 건강한 술을 빚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농태기’에 통일의 꿈과 희망을 담았다. 어쩌면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이 없는 술일 수 있고 촌스러운 술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촌스러움을 사랑하고 좋아해주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다소 놀랐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 마음까지 담은 술이기에 나는 고객들에게 알아서 구입하라고 한다(웃음).

 

-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인민들에게 국가가 강제적으로 직업을 배치해주는 사회주의 사회, 북한과 달리 남한은 대부분 본인이 알아서 취업하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탈북민들이 중년 나이 30~40대에 남한에 와서 취업하기는 여기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어렵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고 취업을 하면 최소한 5년, 10년 이상은 일해야 그 분야 전문가가 된다. 여기 저기, 이일 저일 등 잦은 이직은 남한정착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가급적 꾸준히 한 우물 파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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