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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탈북민들의 '사랑방'을 소개합니다"

 

통일인터뷰.jpeg

 

탈북민들은 남한에서 다소 놀라는 것이 있다. 전체 국토면적을 영남(경상도), 호남(전라도), 충청권(충청도), 수도권(서울·인천·경기도)으로 나눠보는 ‘지역감정’으로 일상의 생활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선거철이 오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쩌면 생활문화의 한 부분이고 정치·사회적 편견으로 잘 거론되는 ‘지역감정’은 북한에 전혀 없다. 오로지 대대로 수령(김정은) 한 사람을 신 이상으로 추앙하며 따라야 하는 북한체제이기에 과거에도 없었지만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남한의 어느 지역출신에도 속하지 못하는 탈북민이다. 1953년 이후 지금까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탈북민은 대략 3만 5천명! 이중 수도권에 대략 절반 인원이, 나머지는 영·호남, 충청권 등 지방의 도처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한다. 고향이 38선 이북인 대한민국 국민, 탈북민도 분명 자기만의 출생지역 문화와 전통생활 정보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회인이다. 최근 인천지하철 소래포구역 근처에서 박봉선 ‘새터민들의쉼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고향과 입국시기를 알려 달라.

1978년 2월, 함북 새별군에서 태어났고 형제는 1남 3녀의 막내였다. 부친은 OO탄광 광부였고 모친은 주부였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부모님은 너무도 순진하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1995년 8월, OO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OO기능공전문학교(2년제)를 거쳐 OO탄광 배수기(물을 뽑아내는 기계) 운전공으로 배치 받았다. 수백만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이 절정에 달했던 1998년 10월 어느 날, 새벽3시 사전약속을 하고 친구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그는 과거 수차례 중국을 드나들었던 경력이 있고 안전한 통로가 어디라는 것쯤은 환히 꿰뚫고 있었다. 도강을 하여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광동성 광주지역이다. 여기서 한국인이 전문 경영하는 OOO완구공장에 취업하여 2년 6개월간 일했다. 이후 라오스, 곤명, 태국 등을 거쳐 2002년 7월에 꿈에도 오고 싶었던 남한으로 왔다.

 

- 탈북을 결심한 계기는 뭔가.

4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꼈다. 인민들에게 식량도 주지 않으면서 노동을 강요하는 당국의 처사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일부 노인들이 “일제 때도 굶어죽은 사람이 없었는데...” 하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생이 있었는데 그는 중국 친척에게 돈을 받아 풍족한 생활을 했다. 어느 날 그가 날보고 중국 가서 한두 달 일해 돈 벌어오자는 제안을 하였다. 중국에서 한 달 번 돈으로 북한에서 1년을 산다고 했다.

 

- 남한에서는 어떤 경력이 있나.

2004년 해당기관 관계자(현 00교회 목사)의 소개로 남한출신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아이 둘 낳고 육아하며 동시에 사이버이야기평생대학원을 다녀 사회복지사자격증, 보육교육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2011년까지 OO어린이집 보육교사로 근무했고 이후 아모레퍼시픽 인천논현지점에서 마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입사 1년 만에 신입왕, 개척왕, 판매왕 수상했다. 직원 100명 중 1년에 1명씩 뽑히는 치열한 경쟁에서 우승하였다. 내가 일하는 직업의 직급은 카운셀러, 팀장, 부장, 마스터, 수석마스터로 되어있다. 여러 명의 직원을 통솔하고 남들이 10년에도 오르기 힘든 마스터에 나는 5년 내 올랐으니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 ‘새터민들의쉼터’를 소개해 달라.

지난 2008년 5월, 경기도 안산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 20~30명이 친목형태로 남한사람 및 해외교포들과의 소통과 정착에 필요한 정보공유를 주목적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올해(2021년) 5월 신임대표로 선임되었으며 현재 ‘새터민들의쉼터’는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자원봉사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회원들이 쉽게 모바일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탈북민단체 최초로 구글플레어스토어앱 등록했고 어플을 다운받을 수 있다. 회원 수 80%가 탈북민이다. 여기서 1% 정도가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외국에 거주하는 탈북민이다. 전체 회원 수는 3만 6천명이고 탈북민, 남한사람 그리고 세계 각국의 한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 대표를 맡게 된 이유와 쉼터의 목적은.

나는 ‘새터민들의쉼터’가 생긴 2008년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활동을 했다. 오랜 경력도 다소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남보다 좀 더 열심히 했던 봉사활동이 아닐까 한다.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차근차근 정착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공유는 반드시 필수라고 본다. 탈북민들 상호간 및 남한사람들과의 소통, 정보공유를 기본으로 한다. 정착에 도움 되고 올바른 국가관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의식을 높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또한 불우이웃 돕기와 사회봉사활동 참여를 적극 장려한다. 우리 탈북민들이 남한정부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은 혜택을 작은 봉사활동으로 갚자는 것이다.

 

- 회원가입 조건은 어떤 것인가.

특별히 없다. 탈북민이면, 그리고 통일과 북한주민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는 세상 어디 사람이든 모두 회원이 될 수 있다. 단, 본 단체에 있는 이용약관 중 회원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사람에 한에서는 경고를 줄 수 있다.

우선 사이트 안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과격한 논쟁을 조성해 다른 이용자에게 불쾌감을 주면 안 된다.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을 어기는 행위, 국가안전을 위협하거나 범죄와 결부되는 행위는 금지이다.

 

- 본 사이트의 특성이 있다면.

탈북민들은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들 때문에 죄의식이 있는데 꼭 극복해야 할 정신문제다. 우리 사이트는 탈북민들의 고향사랑방이다. 우리만의 구수한 고향사투리도 여기서는 정겹게 들리고 달라지는 고향의 풍경도 사진으로 본다.

사이트에는 또한 다양한 북한영화, 드라마, 음악 등 최근 영상물이 많다. 우리가 고향에서 누렸던 문화생활의 한 부분으로 정감이 깊은 것들이다. 참고로 북한영상물은 향수적 감정에서 보되 다소 비판적 시각으로 접하는 것이 좋다.

 

- 그동안 어떤 봉사활동을 하였나.

우리 단체서는 회원 간의 정보소통 못지않게 특별히 많이 하는 것이 봉사활동이다. 2012년 12월 이웃과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 2013년 9월 을왕리해변 환경정리, 2017년 5월 인천장수촌 모내기 돕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해마다 양로원 어르신들을 찾아가 목욕봉사, 사물함 정리 등을 해준다. “나이 먹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르신들은 손잡고 말동무를 해주면 그렇게 좋아하는데 머지않아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최근의 봉사활동으로는 올해 삼복(초·중·말복)을 맞아 인천지역 탈북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 취약계층 어르신 50명을 초대하여 맛있는 삼계탕을 대접해드렸다. 20여명의 회원들이 행사당일 새벽부터 시장서 장을 보고 열심히 준비하여 어르신들께 대접해드렸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 봉사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 또 다른 일과 계획이 있다면.

1+1운동지정 자원봉사 활동으로 인천지하철 소래포구역 주변서 회원들이 바닥에 널려진 음료수캔, 휴지, 담배꽁초, 오물 등을 주어서 쓰레기봉투에 담는 환경정화봉사, 생활편의지원관리 자원 봉사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곧 명절이 온다. 다가오는 추석은 고향을 못가는 탈북민들에게 정말 서러운 명절이다. 한부모다자녀가정, 소년소녀가장가정, 장애인가정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추석명절 후원금전달 및 물품나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어떤 때가 제일 기쁜가.

미지의 사회, 북한에는 남한 사회처럼 헤어진 가족이나 사람을 광고로 찾는 방법이나 환경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고난의 행군시기(1995~99년)에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통계는 없지만 대략 수십만 가정으로 추정을 한다.

아주 놀랍게도 북에서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남한에 와서, 그것도 우리 ‘새터민들의쉼터’를 통해서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로가 감격하여 부둥켜안고 우는 것을 볼 때는 마치도 내 부모를 만난 것만큼이나 기쁘고 보람이 있다.

 

- 앞으로 단체를 어떻게 이끌겠는가.

부족하지만 대표로 취임하면서 본 단체를 통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최대 탈북민커뮤니티로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남북을 모두 경험한 존재인 우리 탈북민들은 통일의 소중한 공로자들이다. 탈북민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다양한 민주사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남한에서 잘 정착해야 통일이 그만큼 빠를 수 있다.

 

- 유년시절 꿈이 있었다면.

어머니가 처녀시절 평양에서 유치원선생을 하셨다. 어머니처럼 유치원 선생이 되려고 청진교원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5년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작시기이다. 식량배급 중단 등 경제적 어려움이 도래했다.

내 위의 언니와는 8년 차이로 어머니가 43세에 나를 늦둥이로 낳으셨다. 내가 직장생활 2년 만에 연로보장자(정년퇴직자)인 부친은 돌아가셨다. 오빠 언니들은 모두 출가해 나와 어머니만 살았고 내가 세대주가 되었다.

 

- 사회의 빈부격차는 어디서 느꼈나.

고등학교시절 방학 때면 평양에 있는 외할머니 집, 외삼촌 집에서 몇 주일씩 살기도 하였다.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 외삼촌 집과 우리 집 생활수준은 하늘 땅 차이였다. 외삼촌이 부지런하고 우리 어머니가 게을렀다면 말도 안하겠지만 말이다. 열심히 일해도 힘든 지방이고 대충 해도 잘 사는 평양이다.

 

- 고마운 분은 누구인가.

주식회사 아모레퍼시픽의 이병연 수석지부장이다. 이 분을 통해서 내가 아모레퍼시픽을 알게 되었고 오늘은 한 개 지점의 마스터까지 되었다. 나의 사회생활에서 모르는 것 있으면 마치 친딸에게 알려주듯 하나하나 가르쳐주신다. 해마다 명절이면 고향에 계시는 친정어머니로 생각하고 온 식구가 함께 가서 즐겁게 보낸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3만 탈북민들이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의 그날까지 우리 ‘새터민들의쉼터’에서 서로 소통하고 배우며 문화차이를 극복하고 이 사회에 잘 정착하시길 바란다. ‘새터민들의쉼터’가 제2의 고향집이 되고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북한과 중국, 3국의 탈북과정에서 생이별하고 안타깝게 살아가는 탈북민 가족들이 하루속히 만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다. 이것은 분명 통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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