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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200여 평양처녀들은 노예였다”

김태산.jpg

 

지난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에서 백주대낮에 암살된 김정남이 천하의 김정일의 아들이요, 뭐요 해도 대한민국에 들어 온 탈북민들만 못한 것이 있다. 작금의 탈북민들은 야만적 김정은 독재자에 항거하는 정신으로 남한에 왔고, 김정남은 그 독재자에게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했으니 말이다.

생전에 정체불명의 여인과 아이를 거느리고 세계를 일주하며 살았던 김정남을 포함한 김 씨 수령 가문은 2천만 인민들 몰래 호화생활을 마음껏 누린다. 거기에 드는 외화를 벌려고 피땀을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낯설고 물 설은 외국에서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힘든 노동을 강요당하는 북한근로자들이다.

1950년대 중반 소련(지금의 러시아) 벌목공 송출로 시작한 북한해외노동 역사는 자그마치 60여년이 된다. 그에 비하면 이제 10년 남짓의 북한해외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이 궁금하여 얼마 전 광화문 근처 모 커피숍에서 김태산 전 조선체코신발기술합작회사 사장을 만났다.

참고로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 살았던 중구역 외성동 아파트 옆에 북한 주재 체코대사관이 있었다. 과거 김태산 전 사장은 서성구역 하신동에서 살았고 우리는 같은 해외근로자 출신의 탈북민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다.

 

- 고향이 어딘가.

1952년 7월 자강도 임산노동자 가정에서 출생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강계351호공장(군수품업체, 고사총자동조정장치 생산)에서 선반공으로 일했다. 1976년 직장사로청위원장, 2년 뒤 공장사로청부위원장 직책을 맡았다. 1980년 평양에 있는 인민경제대학 무역반에 입학했다.

 

- 북한에서의 경력을 말해 달라.

4년 대학을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 생활을 거쳐 인민봉사위원회, 사회안전부(남한의 경찰청) 무역회사 등에서 일을 했다. 이후 경공업성 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겨 1995년부터 1년간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무역서기관으로 근무했다.

원래는 3년 기간이다. 도중에 외화벌이목표 계획미달로 소환되었는데 내막은 다르다. 평양에는 해외근무 나오려는 자들이 득실거린다. 모두 친척이 중앙당, 검찰, 보위부 등 힘센 기관에 근무하는 소위 토대(출신성분) 좋은 사람들이다. 우리 가문에서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니 결국은 재력 다툼에서 밀렸다.

 

- 소환되어 어떤 처벌을 받았나.

당에서 지시한 식량구입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사상투쟁과 비판을 받고 노동자로 강직되어 평양시 미산동에 있는 금수산태양궁전(김일성·김정일 시신 보존 건물) 수목원에서 관리공으로 2년간 일을 하였다. 이후 1998년에 지인의 도움으로 경공업위원회 대외사업부 책임지도원으로 복귀했다.

 

- 체코에는 언제 나갔나.

2000년 7월 체코정부와 무역협정으로 조선체코신발기술 합작회사가 만들어졌다. 사회주의시절 만해도 유럽에서의 신발을 잘 만드는 나라가 체코였다. 수도 프라하에서 70km 가량 떨어진 빠르트비치예시(市)에 있는 쌈 신발회사에 북한여성근로자 23명 데리고 사장(북측)으로 파견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전투경찰, 소방대원, 산악인 등이 사용하는 수출용 특수신발을 만들었다.

 

- 현지에서 북한여성들에 대한 인기는.

체코회사 관계자들은 우리를 보는 시선이 의아했다. 현장에 있는 우크라이나, 몽골 여성노동자들에 비해 북한노동자들은 왜소하고 볼 품 없었으니 말이다. 허나 한 달도 안 돼 기술을 숙지하고 능란한 솜씨로 일하니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체코의 여러 신발, 섬유, 가방공장들에서 저마다 조선근로자들을 쓰겠다며 계약을 요청해왔다. 하여 2000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수차례에 걸쳐 추가 인력으로 200여 명의 북한여성근로자들이 프라하로 왔다.

 

- 모두 김 사장이 했나.

물론이다. 어느 날 “독일, 이태리 등 잘 사는 나라의 회사와 업무를 체결하면 더 많은 외화를 벌수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했다. 하여 평양외국어대학 졸업하고 대성총국 근무경력이 있는 아내와 함께 그 일에 착수했다. 문제는 회사보위지도원(여성, 평양시 봉남동 보위원 출신)이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기 승인 없이 외국인과의 업무를 함부로 처리한다느니, 관료주의가 심하다느니 등으로 말이다.

 

- 다소 기분이 나빴겠다.

불같은 내 성격에 화가 치밀었다. 고작해서 한 개 동네 보위지도원(동장급)이 중앙기관 내각 책임지도원(국장급)한데 훈시하니 말이다. 그것도 여자가? 자존심이 상해 속으로 “내 이 여자를 꼭 골탕 먹이리라!”고 결심했다.

그 와중에 2002년 2월 평양에 들어가 정기 강습(회의)에 참가했다. 형식상으로 수령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교양학습 등을 하나 사실은 상급 간부들이 해외 체류자들을 불러들여 돈을 뜯어내자는데 목적이 있었다.

 

- 북한에 대한 환멸을 언제 느꼈나.

바로 이때다. 한 달 정도 평양에 머무르며 북한사회의 진 모습을 깨달았다. 태양궁전을 리모델링한다며, 인민군대 지원물자를 낸다며,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갈취하는 간부들의 눈에는 오직 돈독만 올랐다. 정말이지 “너 따위들이 나라의 일군이냐?” 하는 분노가 찼다. 그렇게 생각하니 평양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2002년 3월에 다시 프라하로 나왔고 그때 기분은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심정이었다.

 

- 현지 북한 여성노동자들의 생활은.

당시 체코의 5개 공장에 파견되어 일한 여성노동자는 200여 명이었다. 1인 당 지불할 돈이 150달러인데 여기서 절반은 북한당국에 바친다. 생활비에서 40달러는 숙박비용으로 건물주에게 바친다. 나머지 30달러, 즉 하루에 1달로 살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오전교대(새벽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 오후교대(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로 나누어 일을 하였다. 일과 후는 일체 외출이 금지되어 있으며 그냥 4인 1조의 호실에서 책이나 보고 수다 떠는 것이 고작이다.

 

- 형편없는 생활이겠다.

그 30달러를 아끼겠다고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쓰지도 못한다. 오죽하면 처녀들이 월경도 멎고 가슴이 다 들어가더라. 거기에 대사관에서 당충성자금, 인민군대지원금, 애국헌금 등 월 평균 한 사람에게서 3~4달러 차출해간다.

정말이지 북한정권은 날강도 집단이다. 자국민을 외국에 내보내 외화벌이에 혈안이 되어있지 그들의 인권이나 생활조건 같은 것은 관심도 없다. 나는 북한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아내와 딸을 설득시키는데 신경을 썼다.

 

- 탈출경로를 말해준다면.

2002년 9월 8일 회사에서 ‘9.9절 선서모임’(명절 때마다 북한주민들이 하는 충성선서행사)을 마치고 나는 프라하에 있는 대사관에 회의를 간다는 핑계로 아내와 딸을 승용차에 태우고 회사를 벗어났다. 프라하 시내에 들어와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나왔다. 거기서 독일로 가는 항공권을 끊고 바로 탑승했다. 독일에 도착한 후 40분간 기다린 후 한국행 항공권을 끊고 탑승했다.

 

- 북한여권 가지고 움직였나.

그랬다. 프라하와 독일에서 무사통과, 대한민국 인천공항까지 들어왔으니 이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 뭔가? 북한여권 갖고 북한사람이 입국해도 무사했으니 말이다. 국정원은 이해가 안 된다면서 나를 ‘위장간첩’으로 오인했다.

국정원 조사 기간 애를 먹었다. 조사를 마치고 사회로 나올 때 그 이유를 알았는데 내가 프라하를 떠난 다음날 평양에서 나를 체포하려 2명의 보위원이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서울에 와서 몇 년간은 막노동을 했다. 내 나이에 어디서 받아주는데도 없고 그냥 혈기는 조금 남아 있기에 막노동은 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가서 몇 개월 일해보기도 하였다. 또한 막내딸 영어공부 때문에 최근 몇 년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살았다. 나이 들어보니 제 나라 땅이 최고더라. 지금은 서울에 있는데 다행히 집사람이 자그마한 영어학원을 경영하기에 밥은 먹고 산다.

 

-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어떤 관계인가.

말레이시아는 대외무역 교류측면에서 북한과 작은 거래나 이익도 없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우호 관계인 것은 정치적 친미성향이 같기 때문이다. 세상에 북한만큼 미국에 큰소리치는 나라가 없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있은 북한 김정은의 맏형 김정남 암살사건도 흐지부지 되고 말았는데 나는 이미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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